김민호, 마해영, 그리고 이대호까지….
20년 동안 롯데의 중심타자는 변화해왔지만, 롯데구단버스 운전대를 잡은 손만큼은 한결
같았다. 이제 손경구씨는 2군에 있는 아들이 오랫동안 이 버스를 지켜주길 바란다. 물론, 운전석이 아니라 주요 승객으로서 말이다.
처음 동생같던 선수들이 이젠 아들뻘
대부분 야간운전…거리 60만km 훌쩍
아들 손용석 군복무 마치고 롯데 2군
희망? 내년엔 우승컵 품고 밟아야죠
1992년 롯데 전 구단 직원들은 가족을 동반해 한국시리즈 우승기념 야유회를 떠났다. 엄마, 아빠 손잡고 함께한 아이들을 위한 장기자랑 시간, 1등 상품은 선수용 글러브였다. 노래하는 아이, 춤을 추는 꼬마까지 모두 흥겨웠다. 그리고 구단 버스를 운전하는 손경구 씨의 아들 용석이의 차례가 왔다. 용석이는 갑자기 타격 자세를 취했다. 그러더니 박정태의 한 손 잡기, 김민호의 방망이 내렸다 올렸다 준비자세까지,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 1번부터 9번까지의 타격폼을 똑같이 흉내 냈다. 너무나 똑같아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선수와 코치들은 여섯 살 아이가 어떻게 프로 선수들의 타격폼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까 놀라워했다.
지금도 생생한 그날 아들의 모습. 18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는 오늘도 선수들의 안전을 책임지며 구단버스를 지키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버스에 오를 그 날을 위해 롯데의 상동 2군 연습장에서 지금도 구슬땀을 쏟고 있다.
“벌써 정년이 지났다 아닙니까. 고맙게도 구단이 배려를 해줘서 아직 하고 있는데…. 이제 그 놈 아가 더 열심히 해가 나 대신 이 버스 오래도록 타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는교.”
롯데 손경구(56) 주임은 1990년 처음 롯데 구단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버스 뒷자리에 앉았던 박정태는 2군 감독이고 공필성은 코치가 됐다. 처음에는 동생 같았던 선수들이 대부분 아들 또래가 됐다. 처음 운전대를 잡던 그날이나 지금까지 마음가짐은 똑같다. 안전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최대한 편안하게 그들의 발이 되는 것이다.
“20년 동안 버스가 7번 바뀌었어요. 처음에야 뭐 말도 못했죠. 시내버스랑 비슷한 크기에 36인승이니까 참 비좁았죠. 길도 뭐 말도 못했죠. 경부고속도로 하나 있었다 아닙니까. 그래도 부산서 서울까지는 5시간 반, 인천은 6시간에 꼭 댔습니다.” 옛 추억을 더듬던 손 씨가 갑자기 활짝 웃으며 버스 좌석에 앉아 보라고 한다. “여기 와서 발 한번 쭉 벋어 보이소. 지금은 참 편해요. 최고로 좋은 버스를 개조 해 가 25인승으로 바꿨어요. 선수들이 편하니까 저도 덩달아 운전할 때 기분이 좋습니다.”
부산이 홈인 롯데는 이동거리가 가장 긴 팀이다. 한 시즌을 마치면 평균 3만km 정도 고속도로를 달렸다. 20년 동안 그가 달린 거리는 약 60만km. 지구 둘레가 39만960km이니까 손 씨는 그동안 지구 한 바퀴 반을 더 달렸다. 대부분 야간 운전. 손 씨는 20년 동안 혹시 졸음운전이라도 할까봐 일부러 밤과 낮을 뒤바꿔 살았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밤과 낮을 바꿔놔요. 일 처음 시작할 때는 점심 때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하니까 이웃사람들이 아이 엄마한테 물어보더래요.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기에 지금 나가요?’ 지금은 서로 다 알고, 롯데가 야구 잘 하니까 모두 운전 잘하라고 응원도 해줍니다. 하하하.”
손 씨의 아들 손용석은 2006년 롯데에 1차 지명을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뿌듯했다. “사실 야구시킬 형편이 안됐죠. 롯데 선수 출신들이 참 많이 도와줬습니다. 야구장 놀러 올 때마다 코치들이 공을 쳐보라고 한 뒤 ‘재능 있다, 시켜보자’고 했고 아들놈도 야구가 좋다고 해서 시켰어요.”
손용석은 2007년 왼손투수 전문 대타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롯데팬들은 구대성 등 당대 최고의 좌완 투수가 마운드에 오를 때면 “손용석!”을 외쳤다. “관중들이 아들 이름을 부르는데, 그 때 기분이야 뭐 말도 못하죠. 아들이 올해 초 군복무 마치고 2군으로 돌아왔어요. 수비는 좀 약해도 치는 재능은 있다고 해요.”
손 씨가 운전하는 롯데 1호버스는 감독과 주전 선수들, 베테랑이 주로 타기 때문에 함께 동승할 기회는 없었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원정을 함께 다니며 짧은 시간 애틋한 부정을 나눴다.
“이제 얼마나 더 일할지 몰라요. 마지막 바람이요? 내년엔 우리 롯데가 우승한 다음 선수들 태워서 부산가고 싶죠. 하하하, 음…, 그리고 우리 아들놈 이 버스 오래 타야 할 텐데요. 그리만 된다면 여한이 없습니다.”
잠실|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