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없는 편지] 최기문 “울지마라 민호…넌 국가대표 포수다”

입력 2010-10-06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롯데 최기문.

■ 최기문이 강민호에게


롯데 주전 포수 강민호(25)는 프로 5년차이던 2008년 태극마크를 달고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 된 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최기문(사진)이라는 큰 산이 내 앞에 있어, 더 분발할 수 있었고 더 노력했다. 기문 선배의 조언이 큰 힘이 됐고, 나는 선배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서 연구했다. 그것이 지금 내가 이 위치에 설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한 때 롯데 안방마님 최기문(37)은 ‘띠동갑 후배’에게 이런 존재다. 주전과 백업의 임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바뀌었고, 선배를 뛰어넘은 후배는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작년까지 백업으로 뛰었던 최기문은 올시즌 중반 허리 수술을 받은 뒤 현재 재활에 몰두하고 있다. 최기문이 5차전에 패해 마음 아파할 후배 강민호에게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


민호야! 수고했다. 다들 열심히 했는데, 내 응원이 부족했나 보다. 그래도 멋졌어. 너 뿐만 아니라 우리 후배들 모두. 운이 따르지 않아 졌지만, 오늘 아픔이 내년 시즌 더 큰 보람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민호야, 넌 처음 봤을 때부터 다른 후배들과 달랐지. 나이차가 많은 형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장난꾸러기였어. 성격도 무척 좋았고. 선배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동생이었지. 그리고 누구보다 좋은 신체 조건을 갖고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항상 공부하고, 무엇인가 준비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롯데의, 아니 한국의 대표 포수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언제였던가, 내가 이런 말 했던 거 기억나니? ‘내가 실패했던 경험을 얘기해줄테니, 네 공부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던 것. 잘 따라줘 정말 고맙다.

넌 이미 훌륭한 선수고, 포수야. 올해 (이)재곤이나 (김)수완이처럼 어린 투수들이 팀에 큰 힘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난 다 네 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민호야, 한 순간이라도 잊지 마라. 넌 더 좋아질 수 있는, 앞으로 더 커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 말이야. 이미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더 많은 날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나도 마스크를 써 봐서 알지만, 포수들은 방망이가 잘 풀리면 수비도 더 잘 되잖아. 근데 다른 선수들과 달리 투수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포수는 누구보다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자기 방망이가 안 맞아도 말이야. 그라운드에 나가면, 투수는 물론이고 모든 야수들이 포수 눈빛을 보고 플레이를 하잖아. 특히 넌 빼어난 공격형 포수야. 그래도 방망이는 매번 잘 맞을 수 있는 게 아닌 거고.

마스크를 쓰는 포수는 언제나 ‘주연이 아닌 조연’이다. 너로 인해 투수가 빛날 수도, 빛을 잃을 수도 있어. 좋지 못한 투수들도, 네 능력으로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는 거, 잘 알지? 그럼 우리 내년 시즌 더 멋진 모습을 기약하자.

사진출처|최기문 미니홈피

정리|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