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을 강조해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여가 생활을 위해 존재하는 문화 콘텐츠이다. 때문에 게임 개발자는 게임을 개발할 때 재미를 최우선 적으로 추구하며, 재미를 위해 상상 속의 일을 그려내거나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을 과장되게 표현하고는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라면 허무맹랑하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게임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하지만 모든 게임들이 과장되고 허무맹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보다 현실적인 모습과 장면을 연출하는 게임을 바라는 게이머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기술의 발전은 이런 게이머들의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현실적인 게임들이 등장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군사 훈련을 위해 현실 상황을 게임으로 구현한 것에서부터 발전해 온 장르였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그럴싸한 상황을 설정하고, 실존하는 사물을 게임에 등장시키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사실적인 모습을 보인다. 얼핏 봐서는 현실과 구별이 안될 정도의 뛰어난 그래픽, 하나의 상황이 발생 했을 때 주변에 미치는 영향까지 사실-물리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제 ‘극사실주의’ 장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출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현실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플레이스테이션3(이하 PS3) 전용 레이싱 게임인 ‘그란투리스모 5’를 꼽을 수 있다. ‘그란투리스모’ 시리즈는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차량과 서킷을 외형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차량의 성능과 노면 상태에 따른 차량의 움직임까지 게임에 적용했다. 이 시리즈로 연습을 해 실제 프로 레이서로 데뷔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그란투리스모의 현실성은 검증받고 있는 상황이다.
게임의 컨셉 역시 여타 레이싱 게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존의 레이싱 게임들이 경쟁을 통해 상대를 추월하고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에 목표를 뒀다면, 그란투리스모 5는 실제로 존재하는 명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는 느낌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장인집단’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빼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는 개발사 폴리포니는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들의 장점을 극대화 해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레이싱 게임을 선보일 기세다.
1080p의 해상도로 표현되는 그래픽과 이런 그래픽을 시종일관 60프레임으로 움직이도록 하겠다는 이들의 발언은 최근 공개된 게임의 플레이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레이스를 펼치는 중에 날씨가 변하거나, 차창에 튄 빗방울에 차의 진행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흐트러지는 모습, 오프로드 레이싱에서는 차체에 먼지가 묻는 효과까지 사실적으로 구현하고 있어 폴리포니가 이번 작품을 위해 얼마나 세심한 부분까지 공을 들였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그래픽 뿐만 아니라 차량 주행의 느낌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 것도 게임의 특징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시리즈 최초로 관성이나 충돌에 의해 차량이 전복되는 효과까지 구현하고 있으며, 차량끼리 충돌할 경우에도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그란투리스모’가 현실성을 기반으로 하는 레이싱 게임이라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현실성을 기반으로 하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대체적으로 현실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그 중에서도 현실성을 유난히 강조한 게임으로 꼽힌다. 1982년 첫 시리즈가 등장한 이후로 2006년 발매된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X'까지 이 게임은 당대에 실존하는 대부분의 비행기와 전 세계의 모든 공항 정보를 수록하고 있으며, 각각의 비행기마다의 특성을 전부 구현하고 있어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이 게임은 전세계 각 지역의 실제 지형은 물론 각 지역의 특징적인 날씨까지 구현하고 있어 비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부분의 요소를 구현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실제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게임으로 풀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성 덕분에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미국 연방 항공국의 정식 비행 프로그램에 채택되기도 했다. 게임의 현실성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마저 인정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미국 국방성이 게임의 제작에 참여해 화제를 일으킨 밀리터리 FPS 온라인게임인 ‘AA온라인’ 역시 극사실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게임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때 국내에서 정식으로 서비스 되기도 했던 ‘AA온라인’은 거리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하는 조준점, 호흡까지 조절해서 사격을 해야 하는 저격 시스템, 사격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명중률은 물론 사격 중 총알이 걸려, 노리쇠 후퇴, 전진을 반복해야 하는 요소까지 게임에 구현해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현재 ‘AA온라인’의 개발사인 아미 게임 스튜디오는 미 항공우주국 NASA와 함께 달 착륙을 소재로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인 ‘문베이스 알파’를 제작 중에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사실주의 게임은 매니아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가 최근 일반인으로 까지 인기 구도가 확장되고 있으며, 게임 개발사들 또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거 초빙하는 등 더욱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현실성을 강화하는 게임에 대해 업계의 한 전문가는 “3D 영상기술, 체감형 기술, 뇌파 기술 등과 맞물려 극 사실주의 게임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며 “아직은 멀지만 향 후 ‘아바타’나 ‘메트릭스’ 같은 일들도 현실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고 관련 분야에 대해 진단했다.
김한준 게임동아 기자 (endoflife81@gamedong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