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KBS의 신경전으로 ‘출연정지’ ‘중도하차’의 수난을 당할 만큼 80년대 인기가 높았던 원미경. 스포츠동아DB
원미경은 드라마 방송 6개월 전 ‘개인 신상에 관한 문제’란 애매한 이유로 주인공을 맡고 있던 KBS 2TV 주말극 ‘순애’에서 도중하차했다. KBS가 그녀에게 내린 ‘출연정지’ 조치 때문. 대타로 박준금이 나섰지만 시청자는 갑자기 드라마 주인공이 바뀐 상황에 어리둥절해했고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을 했다.
1978년 TBC 20기 탤런트 및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서 미스 롯데로 뽑힌 원미경은 영화계에서 ‘트로이카’ 정윤희·유지인·장미희의 위상을 위협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1979년 영화 ‘청춘의 덫’으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받았고, 1982년 한 영화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트로이카’에 이어 인기 배우 4위를 차지했다.
‘여인열전-황진이’ 제작진은 캐릭터에 맞고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연기자라며 그녀의 캐스팅을 강력히 추진해 전격적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그러자 KBS는 ‘자사가 출연 정지시킨 연기자를 경쟁사가 캐스팅했다’며 반발했다.
방송사간의 신경전 탓이었는지 원미경은 방송 초반부터 ‘도중하차설’에 시달리다 한 달여 만인 8회를 끝으로 드라마에서 빠졌다. MBC는 당초부터 예정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방송사의 횡포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미 불이익을 당한 만큼 방송사의 또다른 제재는 온당치 않다는 것이었다.
의욕적으로 안방극장에 진출했다가 구설수에 시달린 원미경은 꿋꿋하게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그 해 5편의 영화에 출연한 원미경은 마침내 1984년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의 주연을 맡아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그 시절 영화 ‘반노’의 이영실 감독은 한 신문 기고에서, 링거 투혼을 발휘하며 촬영장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을 꽃피운 원미경을 소개하며 “존경할 만하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별 일 아니었을 일로 고달픈 한 해를 보낸 원미경은 2년이 지난 1984년, 당시 문화공보부가 ‘출연 규제 연예인’의 활동을 전면 허용하라고 지시한 후, 드라마 ‘간난이’에 개그맨 김명덕과 함께 출연하며 안방극장에 다시 진출했다.
연예계 역사의 암울했던 한 단면, 원미경도 피해가진 못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