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남진 최희준 태진아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스포츠동아DB
1972년 11월2일, 검찰, 경찰, 군으로 이뤄진 합동단속반이 일부 인기 연예인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한 혐의 등으로 폭력조직 ‘번개파’를 구속했다.
다음 날 동아일보는 이들에 관한 소식을 ‘연예관계 깡패’와 ‘국내 최고 악질’의 표현으로 보도해 그 피해와 악행의 정도를 실감케 한다.
당시 이들이 돈을 빼앗고 공갈 및 사기를 친 피해자는 나훈아, 남진, 최희준, 김상국, 박일남, 김부자, 태진아, 자니 리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들. 화려한 조명과 환호 속 무대 뒤에서 당대 톱스타들이었지만, 그 때는 이렇게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기도 했다.
정부는 1972년 10월 유신헌법 공포와 비상계엄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군검경 합동단속반을 조직해 ‘사회악과 고질적 퇴폐풍조 근절’을 위해 조직폭력 및 치기배, 부정식품, 마약, 비밀댄스홀, 도박 등에 대한 일제 단속에 나섰다. ‘번개파’ 일당 검거 역시 그 일환이었다.
연예인에 대한 폭력배의 폭력과 협박 등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1968년 11월 검찰은 연예인들의 진정에 따라 폭력배를 단속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40여개의 연예인 관련 단체 중 절반이 폭력단체인 것으로 보고 폭력행위를 일삼는 자, 개런티 갈취, 연예 관련 이권을 노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 등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폭력배의 연예인에 대한 폭력은 ‘번개파’ 검거 이후에도 단절되지 않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밤무대 유흥업소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연예인들을 ‘보호’라는 명목으로 괴롭히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톱스타급 연예인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당국의 단속이 일상화했으며 시민의 의식도 높아진 덕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초반 이주일과 박영규 등 인기 연예인의 금품을 갈취하거나 폭행한 혐의로 조직폭력배가 대거 당국에 검거된 사례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 연예인과 조직폭력배 사이의 거래나 감춰진 커넥션 등이 루머로 나돌기도 하지만 정작 사실로 밝혀진 사례는 많지 않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