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기자의 여기는 상파울루] “요즘 후배들 당당해…선배지만 배워야지”

입력 2011-01-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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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참땐 말이야…”  전북 현대의 김상식, 이동국, 최철순(왼쪽부터)이 27일(한국시간) 전훈지  상파울루 숙소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내가 신참땐 말이야…” 전북 현대의 김상식, 이동국, 최철순(왼쪽부터)이 27일(한국시간) 전훈지 상파울루 숙소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북 현대 고참 vs 막내 솔직토크

김상식: 내 때는 빨래도 해주고 했는데
이동국: 설마, 입단 빠른 난 그런적 없어
최철순: 형들아 장비담당 있는데 왜?
김상식:30대 중반이지만 생각은 20대
이동국: 후배들과 함께하니 세대차 몰라
서울 강남서 강력반의 젊은 형사 방제수는 언제나 자신만만하다. 그는 강력범죄가 줄을 잇는데 고등학생들을 잡아 변호사 알선비나 챙기려는 선배 형사 장칠순이 늘 못마땅하다.

결국 어느 날 한 판 붙고 마는데…. 이를 지켜 본 형사반장이 방제수를 꾸짖은 뒤 장칠순에게 한 마디 던진다.

“왜? 본전 생각나서 그래? 예전에는 선배들 빨래에 식사수발까지 다 들었는데 나이 들어 대접 좀 받으려니까 잘 안 돼? 그래서 억울해?”

- 영화 <와일드카드> 중 -

“야, 내가 너 만할 땐 말이야….”

어디서든 한 번 들어봤을 레퍼토리다. 고참들은 ‘본전’ 생각하면 언제나 억울하다. 반면 신참들은 아직도 본전 타령하는 선배들이 한심하다. 과연 운동선수들은 어떨까. 학창시절부터 센 군기 아래 지내온 이들이 프로 팀에 와서는 어떤 세대 차이를 느낄까.

툭 터놓고 말해보기로 했다. 브라질에서 전지훈련 중인 전북 현대 최고참 김상식(35)과 중고참 이동국(32), 막내급 최철순(24)이 한 자리에 모였다.




- 일단 휴대폰부터 조사해보자. 모두 스마트 폰을 쓰나.

김상식(이하 김) : 삼성전자 갤럭시를 쓴다.

이동국(이하 이) : 같은 기종이다.

최철순(이하 최) : 아이폰 4다.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자주 이용하나.

김 : 트위터, 카카오톡 한다. 남들 하는 건 다 한다.

이 : 나도 그렇다.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니 사용하게 된다.

최 : 상식이 형은 우리 또래보다 더 잘하시는 것 같다.


- 훈련이나 경기 중 서로 부르는 호칭은. 존칭을 생략하기도 하나.

이 : 급한 상황에서 이름만 부를 때도 있지만 대부분 호칭을 붙인다. 후배들이 욕만 안 하면 다행이다.(웃음)


- 서로 부르는 별명이 있을 것 같은데.

김 : 나는 동국이를 사자왕이라 부른다. 라이언킹의 한글버전이다.

이 : 왕은 무슨…. 우리 모두 철순이를 짤순이라 부른다.

최 : (체념한 듯) 후배들까지도 날 그렇게 부른다.


- 혹시 후배가 선배에게 별명을 부르는 일은 없나.

최 : (손사래를 치며)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혹시 프로 와서 선배들 빨래도 했었나.

김 : 우리 때는 선배 있으면 피해 다니고 선배들 빨래가 있으면 세탁기에 대신 돌리고 그랬다.

이 : 난 프로 와서 빨래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상식이 형보다 내가 프로 입단은 더 빠른데…. 상식이 형이 있던 팀 분위기가 그랬던 것 아닌가?(모두 웃음. 이동국은 고교졸업 후 1998년 포항 입단, 김상식은 대학졸업 후 1999년 성남 입단)

최 : 빨래? 그런 건 안 해 봤다. 장비담당이 다 계신데….


- 대표적으로 바뀐 게 마사지 받을 때 아닌가.

이 : 우리 때는 눈치 보여 신참이 마사지 받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김 : 지금은 내가 선배랍시고 순서 안 지킬 수 없다. 가끔 알아서 양보하는 후배들도 있지만…. 나이 들어 매일 받는 거 아니냐고 놀리는 애들도 있다.(웃음)

최 : 선배들이 편하게 해 주셔서 마사지 받을 때 눈치보고 그런 기억은 없다.


- 후배들 보며 이건 정말 잘못됐다고 느꼈던 일들이 혹시 있나.


김 : 돈 주면서 치약이나 음료수 좀 사 놓으라고 했는데 1주일 지나도 안 하는 거 보면….

최 : 설마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깜빡 잊어버린 게 아닐까.

김 : 여러 번 이야기했다.


- 반대로 후배들에게 배울만하다고 느끼는 점은.

김 : 어렸을 때 소속 팀에서든 대표팀에서든 주눅 들어 기량의 절반도 못 보였다. 후배들 보면 자신감 넘쳐 좋다. 난 왜 그렇게 못 했을까 후회 된다.

이 : 목표의식이 정말 뚜렷하다. 어린 선수들이 쉴 때 자기가 뛴 경기 동영상을 보면서 공부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요즘 선수들은 인터뷰 태도도 사뭇 다르다.

김 : 이제 당당한 콘셉트가 먹힌다. 예전에는 겸손이 미덕이었는데.(웃음)

이 : (고)종수 형이나 (이)천수가 요즘 세대였다면 마음껏 끼를 펼쳤을 텐데. 옛날에는 염색했다고 지탄받고 그러지 않았나.

최 : 요즘 우리 또래는 자유분방하지만 말조심 안 해서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조심해야겠다고 느낀다.


- 세대 차이가 느껴질 때는 언제인가.

김 : 나는 나이는 30대 중반이지만 생각은 20대 초반이다.(웃음)

이 : 반대로 어릴 때 친구를 만나면 세대 차이를 느낀다. 우리는 젊은 선수들과 늘 생활하니 나이도 잊고 더 젊게 산다. 지금 내 친구들 만나면 얼굴들이 다 삼촌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은.

이 : 제일 위의 맏형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상식이 형의 존재가 큰 힘이 된다. 솔직히 선배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후배들은 절대 먼저 말을 못 건다. 그 벽을 선배들이 먼저 깨야하는데 상식이 형 역할이 컸다.

최 : 맞다. 선배들이 친근감 있게 먼저 다가와 주니 감사하다. 덜 강압적인 분위기라 오히려 선배 말을 더 잘 듣게 된다. 상식이 형은 가끔 독설도 하시지만….

김 : 그게 바로 채찍과 당근이다. 게임할 때 나태한 모습 보이면 혼나야 한다.

최 : 그래서 더 고맙다. 상식이 형이 화내는 날이면 우리도 더 정신 바짝 차리게 된다.

상파울루(브라질)|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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