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연예 국가대표들 한류 자만하는 모습 못마땅”

입력 2011-05-2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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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1세대 붐 이끈 윤등룡 DR뮤직 대표

10년 전 ‘베이비복스’를 앞세워 케이팝의 서막을 알린 DR뮤직 윤등룡 대표는 최근 걸그룹 ‘라니아’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1999년 12월을 잊을 수가 없어요. 베이비복스가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중국중앙(CC)TV에 소개된 때예요. 당시 중국에선 이렇게 세련된 여성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건 처음 봤다고….”

DR뮤직 윤등룡 대표(52)는 1990년대 인기 여성그룹인 베이비복스를 앞세워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한류 붐을 일으킨 ‘한류 1세대 연예제작자’이다.

그가 구축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가수 ‘비’를 위시한 수많은 연예인이 글로벌 스타로 성장했다.

북쪽으로는 몽골 카자흐스탄 터키까지, 남쪽으로는 대만 홍콩 태국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그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개척한 해외시장은 그대로 ‘한류로드’가 됐다. 특히 그가 확산에 주력한 한국 가요는 이제 ‘케이팝(K-pop)’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팝시장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심지어 태국 제작자들도 한국 대중문화를 낮게 보던 시절이었어요. 한국의 연예기획사의 규모가 너무 작아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방심한 덕분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죠.”

윤 대표는 2002년 태국의 최대 음반사인 그래미사에 혈혈단신 뛰어들어간 순간을 회상했다. 우리의 일반적 인식과 달리 그 태국 회사는 48층 빌딩에서 300여 아티스트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시가총액 수천억 원대의 거대 미디어그룹이었다. 시장의 규모에 놀란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동남아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계기로 삼았다.

“9년 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에 본격 진출할 당시 모든 사람이 미쳤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케이팝의 열기를 가장 뜨겁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에요.”

물론 시장의 초기 개척자라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네트워크 구축에 투자한 돈도 돈이지만 수없이 많은 사기와 공안사건을 경험하며 좌절할 뻔한 순간이 더 많았다고 회고한다.

“저는 원래 축구선수 출신으로 가슴에 태극기 다는 것이 꿈이었어요. 문화 수출로 직업을 바꾼 이후에도 자연스레 사업의 성공 여부보다는 제대로 해보자는 사명감이 더 컸어요. 저는 걸 그룹 가슴에도 태극기가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허허.”

일례로 그는 태국에 진출하면서는 6·25전쟁에 참전한 상이용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할 정도였다. 문화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가장 빠르게 현지 시장에 한국문화를 뿌리내리는 방법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실제 문화수출은 좀 더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한류는 성공에 안주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한국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겸손함을 잃고 있어요.”

윤 대표는 3월 해외 시장에 대한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7인조 걸 그룹 ‘라니아’를 탄생시켰다. 마이클 잭슨, 레이디 가가 등의 주요곡을 프로듀싱했던 테디 라일리라는 거장까지 영입할 정도로 윤 대표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케이팝 최초의 아시아 그룹입니다. 5개 국어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조이는 ‘태국’ 출신이지요.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와 본격적으로 경쟁할 때가 됐습니다. 한류란 끊임없는 도전이 그 정체성이고 그것은 저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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