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대 수영선수 될 뻔했다”

입력 2011-07-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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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김중수 이사·박찬웅 전무가 말하는 그의 배드민턴 입문기

박찬웅, 수영대신 배드민턴으로 전향시켜
담력 세 경기때 더 잘해…보약 등 전폭지원

가능성 본 김중수 이사, 중 3때 국대 발탁
부족한 파워 보완…세계적인 선수로 성장


‘이용대 올림픽 제패 기념 2011 화순-빅터 전국학교대항 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유망주들이 코트에서 땀을 쏟고 있을 때 대회 본부석에는 이용대의 은사이자 전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김중수 대한배드민턴협회 이사와 박찬웅 전남배드민턴협회 전무가 함께 대회를 총괄하며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김 이사는 중학교 3학년 이용대를 국가대표로 발탁해 세계적인 선수로 키웠다. 김 이사가 이용대에게 ‘배드민턴의 아버지’라면 박 전무는 처음 라켓을 손에 쥐어준 ‘배드민턴의 어머니’같은 존재였다. 19일 대회가 열리고 있는 화순 하니움 문화센터에서 박 전무는 “제자의 이름이 걸린 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특별한 기쁨이다”고 말한 뒤 “김중수 국가대표 감독과 이득춘 주니어대표 감독 등 이용대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다. 모두 그 분들 덕분”이라며 웃었다.

박 전무는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던 단골식당 주인을 통해 이용대를 처음 만났다. “식당 주인이 이용대 어머니 친구였는데, 아이들에게 배드민턴을 시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 이용대도 함께 수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들끼리 뜻이 통했고 함께 라켓을 잡았다”고 추억을 되살렸다. 화순여중 감독이었던 박 전무는 라켓을 처음 잡자마자 배드민턴 재미에 푹 빠진 이용대를 눈여겨보며 아낌없이 가르쳤다. 그리고 다시 화순실업고 감독으로 고교생 이용대를 실업무대로 떠나보내기 전까지 학생시절을 함께 했다. 이용대는 중·고교시절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박 전무는 “코치들과 함께 이용대와 학생들을 위해 간식거리도 만들고 밥도 짓고, 체질별로 보약도 해먹이고 했었다”며 “이용대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두 개, 세 개 이상을 해냈다. 연습 때보다 경기 때 잘하는 담력이 강한 선수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또래에는 적수가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 2학년을 이기는걸 보며 빨리 태릉에 가야할 선수라고 확신했었다”고 말했다.

이용대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박 전무는 “이용대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선수지만 세계적인 톱클래스와 비교할 때 파워가 부족했었다. 고교 때 허리부상으로 상체 훈련을 자제하도록 시킨 것도 한 원인이었는데,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선택이었다. 다행히 성인이 된 후 김중수 감독에게 집중적인 훈련을 받으며 그 점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무는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박주봉 일본 국가대표 감독과 동기다. 현역시절 2년 동안 함께 국가대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가대표까지 선발될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과 국제대회 연승으로 기네스북 등재, 세계배드민턴협회 명예의 전당 헌액 등 역대 배드민턴 선수 중 가장 화려한 현역시절을 보낸 ‘친구’ 박주봉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박 전무는 “박주봉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다만 지도자를 먼저 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박주봉 제자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렸으면 하고 바랐다. 옛 제자 이용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박주봉보다 지도자로는 먼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제자를 뒀다. 사석에서 만나면 박주봉 감독에게 ‘난 친구처럼 올림픽 금메달은 없지만 금메달 제자는 있다’고 자랑한다”며 활짝 웃었다.

화순 | 이경호 기자 (트위터 @rushlkh)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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