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경연대회서 금상 받은 ‘토종’ 美여고생 도너번 양

입력 2011-07-2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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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친과 한국서 살고파요”

지난해 8월 2주간의 일정으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알리사 도너번 양이 한 행사에 참석해 직접 만든 비빔밥을 자랑하고 있다. 도너번 양 제공

중학교 1학년이었던 2007년 여름. 알리사 도너번 양(16)은 학교 복도에서 다른 반의 한국 출신 남학생을 보고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처음으로 이성에,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눈을 뜬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미한국학교협회(NAKS)가 주최한 청소년 한국말경연대회에서 도너번 양은 순수 외국인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 금상(2위)을 수상했다.

1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도너번 양은 미국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또박또박 한국말을 이어갔다. ‘솜씨’ ‘수준’ ‘이음매’ 등 어려운 단어까지 소화했다. 친척 중에 한국인은 전혀 없는 미국 동북부 메인 주의 백인 여학생(포틀랜드 시 디어링고등학교 11학년·한국 고교 2학년)으로선 경이로운 수준이다.

“중학교 때 한국 남학생에게 반해 그 친구를 더 알고 싶었고 친구의 가족과도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언어가 장벽이었죠. 마음 고백은커녕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눠 봤어요. 한국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우습게도 몇 달 뒤 그가 갑자기 이사를 떠난 다음이었어요.”

성격이 내성적이었던 도너번 양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좌를 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독학으로 한국말을 배워 나갔다. 인사하는 법부터 시작해 한글을 떼고 발음을 익혔다. 실력은 날로 늘었다. 이젠 경상도 전라도 북한 사투리까지 구분할 정도에 이르렀다.

“한국어에 눈을 뜨게 한 것은 한국 친구였지만 나를 열정으로 이끈 것은 언어의 아름다움이었어요. 한국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이음매 없이 잘 흘러가고 훨씬 서정적인 것 같아요. 사투리 중에서는 경상도 사투리가 가장 흥미롭고,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 한국어에 흠뻑 빠져 사는 도너번 양을 바라보는 부모와 친구들의 시선은 처음엔 곱지 않았다. 어머니 린다 더글러스 씨는 “왜 많이 쓰이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우지 않고 인기 없는 한국어를 배우느냐”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도 도너번 양이 한국의 한, 국민의 민, 아름다움의 아를 따서 ‘한민아’란 한국 이름을 만들 정도로 열정을 보이자 딸의 한국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더글러스 씨는 전화통화에서 “딸이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언어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요즘은 대견스럽다. 그 덕분에 한국에 대한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도너번 양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줄어들고 활달해졌다. 성적도 올라 같은 학년 300명 중에서 2등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한국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겠다는 그는 한글을 세상에 더 널리 알리는 ‘언어 외교관’ 역할을 하는 게 꿈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는 한국의 매력을 미국인들이 아직 모르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나는 케이팝(K-pop)을 아주 잘 알아요. sg워너비, 넬, 서태지의 열혈 팬이에요. 영화는 클래식(조인성 손예진 주연의 2003년 개봉작)이 가장 감동적이었어요. 하지만 주위에서 케이팝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아직도 한국이 중국에 있는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북한이 우리 동맹국인지, 한국이 우리 동맹국인지도 모르죠.”

그는 재미 한국 교포들은 미국 사회에 잘 스며들어 한국인인지 전혀 모른다는 뜻의 ‘화이트워시드 아시안(Whitewashed Asian)’으로 불리기까지 하지만 한국 문화와 한국의 위상은 여전히 미국민에게 생소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중문화를 무기로 미국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고등학생답지 않은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한국 음식은 미국 사회에서 점차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너번 양은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어머니는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혹시라도 인터뷰 기사를 보고 옛 남자친구로부터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도너번 양은 소녀의 풋풋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줄도 몰랐거든요. 아마도 어떤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지금 사귀고 있는 한국교포 남자친구가 있어요. 만약 장래에 그와 결혼한다면 한국에서 살지도 몰라요.”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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