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신들의 전쟁’, 영웅서사시? 희대의 하드고어 무비!

입력 2011-11-11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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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배우들은 열심히 웃통을 벗는다. 하지만 스토리가 가미되지 않으니 매력이 덜하다. 사진제공=NEW

●잘린 팔다리, 내장 튀어나오고…이걸 3D로 보라고?
●19금도 부족, 심신 미약자는 절대 시청금지
●신들은 단역…빈약한 스토리…실소 절로 나와
영화가 끝나자, 내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두 주먹은 꾹 쥐어져있었다. 극장 곳곳에선 안도감 섞인 신음소리가 흘렀고, 몇몇 자리는 주인을 잃고 비어있었다.

여자 관객들은 눈을 가려버리거나, 고개를 돌린 채 한숨만 쉬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영화 시사회 관객들이 영화를 외면하고, 숫제 도중에 포기하다니? 이것이 2011년 하반기 기대순위 1위를 차지한 영화 '신들의 전쟁'(10일 개봉)의 실체다.

'신과 인간, 모두의 운명을 건 전쟁이 시작 된다', '신이 추대한 영웅과 신을 거역하는 인간 사이의 최후의 전쟁이 펼쳐진다!'… 거창한 홍보문구는 관객들을 착각에 빠뜨렸다.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스케일 큰 판타지 액션영화'인 줄만 알았던 영화 '신들의 전쟁'은 사실 극단적으로 잔혹한 하드고어 판타지 장르영화다. 노약자 및 임산부를 비롯한 심신 미약자는 절대 시청금지. 19금도 부족해보이고, 25금쯤 붙여야 될 것 같다.

▶3D 영상 혁명? … 잔혹한 악취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이후 많은 영화들이 '3D 혁명'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그만한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다. '신들의 전쟁' 역시 '초대형 3D 영상 혁명'이라는 광고문구로 무장한 영화다.

하지만 시사회 현장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2D로 진행됐다. 그리고 관객들 중 대부분은 이 사실에 감사했던 것 같다.

3D였다면, 영화가 끝나기 훨씬 전에 더 많은 자리가 비었을 것이다. 기자 역시 기사고 뭐고 극장을 뛰쳐나와 화장실로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신과 인간 모두를 적으로 돌린 하이페리온.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설득력이 없다. 사진=NEW



'신들의 전쟁'이라는 영화 제목, 그리스 신화를 적당히 차용한 세계관, 영화 홍보문구를 종합했을 때 팬들의 기대는 간단했다. '트로이', '글래디에이터', '스파르타쿠스'처럼 장대한 스케일, 화끈한 액션, 흘러넘치는 남성미의 전쟁 액션을 기대한 것이다. 제작진의 전작인 '300' 또한 이 같은 기대를 갖는데 한 몫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CG가 구현된 장면은 단 1번, 포세이돈이 해일을 일으키는 것뿐이다.

그 외에 가장 많이 쓰인 CG는 하이페리온(미키 루크)의 병사들 수를 늘려서 보여주는 것인데, 그 수준은 그야말로 '복사-붙여넣기' 수준이다.

'반지의 제왕'에서의 협곡 전투에서 나타난 화려한 군세와는 거리가 멀고, 10여 년 전 디즈니가 '뮬란'에서 보여줬던 화면을 뒤덮는 반전의 스케일만도 못하다. 그냥 멀리서 '개미떼처럼 많은 막사와 병사들'을 보여준 정도다. 그냥 많다 싶을 뿐 딱히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공들여 CG를 연출한 부분은 바로 백병전 혈투의 묘사다. 특히 감독은 무기에 의해 사람이 상처입고 죽는 방식에 대해 장인정신에 가까운 디테일 집착을 보였다.

프리다 핀토의 미모에도 불구하고 '신들의전쟁'은 보기 괴로운 영화다. 사진=NEW


그 방식은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산채로 불질러버리는 것부터 단검으로 목이나 혀 자르기, 거대 망치로 신체 일부를 부수기, 손으로 머리를 터뜨려 죽이기, 철 가시 투구로 얼굴 긁기, 불로 달궈진 황소상 안에 사람 넣기, 칼로 사람 머리 베기 등 다양하다. 이 같은 모습들은 아무런 숨김없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전달된다.

죽음의 순간들은 대부분 슬로우 모션으로 표현되며, 이때 화면은 여러 각도로 전환되며 터지고 갈라지는 시체들을 디테일하게 비춘다.

마치 수수깡 베듯 서걱서걱 베어져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던 '킬빌'의 그것과 달리, '신들의 전쟁'에서의 잔인한 장면 묘사는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창이 목이나 머리를 꿰뚫고 나오거나, 얼굴이나 머리의 일부가 베어져 나뒹구는 것은 예사다. 망치로 머리를 통째로 폭발하다시피 산산조각내거나, 쇠사슬을 채찍처럼 휘둘러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두 동강이 내는 장면에 이르면 손발이 찌릿찌릿하며 식은땀이 흐른다.

이 순간 몇몇 관객들은 작게나마 욕설을 퍼부으며 극장을 떠나기도 했다. 대강 영화가 정리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무렵, 라스트신에 갑자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다시 피가 튀는 전투 모습들이 등장해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만약 이 영화를 3D로 접했다면 이 같은 혐오감은 더욱 높아졌을 것임이 틀림없다. '신들의전쟁'을 일반적인 신화 영웅 영화로 착각하고 3D로 관람하신 관객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할 수밖에.

▶왜 신들의 전쟁인가?

국내 제목은 '신들의 전쟁'이지만, 원제는 불멸자들(immortals)이다. 흔히 판타지에서 '불멸자'란 역설적으로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 그 자체는 그들에 대비되는 신이나 드래곤, 엘프 등에 비해 한없이 유한한 삶을 살지만, 기록 전승과 사회체제 발전 등을 통해 불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들의 전쟁'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에서도 불멸자는 분명 인간을 가리킨다.

'모든 인간의 영혼은 영원불멸하다. 하지만 의로운 인간의 영혼은 신성하며 또한 영원불멸하다 - 소크라테스'

다시 말해 국내 유통사는 의도적이든 실수였든 제목에서 오역을 한 셈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테세우스(헨리 카빌)와 하이페리온으로 대표되는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하이페리온이 신들의 적인 '타이탄'을 해방시키려고 하기 전까지는 인간 세상에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신들에게 경고한다. 결과적으로도 이 영화에서 신들은 인간과 별개의 싸움을 펼치며, 핵심은 테세우스와 하이페리온의 일대일 격투다. 신들은 '타이탄'과만 싸우며, 물론 신들끼리도 싸우지 않는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신들의 전쟁'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신성함이 정작 '신들의 전투'애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고편만 봐서는 뭔가 하늘과 바다를 뒤덮는 신vs신의 비상식적인 전투라도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신이란 번쩍거리는 황금색 갑옷만 갖춰 입었을 뿐 인간과 마찬가지로 상처 입으면 죽는데다가, 싸우는 방식도 포세이돈이 테세우스의 위기를 구해줄 때 해일을 일으켰던 것을 제외하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백병전이다.

심지어 아테나는 창에 관통당해서, 포세이돈은 전신이 난자당해 피를 흘리며 죽는다. 이 같은 모습은 더더욱 영화의 제목인 '불멸자'가 신이 아님을 드러낸다. 라스트신에서의 노골적인 속편 예고 또한 인간 특유의 계승적 마인드를 드러내며 불멸자로서의 인간과 연결된다.

영화 막판 제우스는 산을 무너뜨리는 등 신에 걸맞는 모습을 보이며 사태를 수습한다. 이렇게 금방 할 거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았잖은가.

신과 인간의 차이는 갑옷색 차이뿐이다. 어딜 봐서 신으로 보이는가?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사진=NEW


▶허점 가득한 스토리, 해도 해도 너무한다!

기본 설정은 그리스 신화, 배경 콘셉트는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뢰크(최후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푸스는 대표 12신 외에도 여러 신이 사는 곳이지만 출연료 때문인지 그 중 5명의 신만 출연했고, 아레스가 들고 다니는 망치는 북유럽 신화의 토르가 가진 보물 묘르닐 망치를 연상시킨다.

왕의 아들에서 사생아가 된 테세우스, 타이탄에서 인간이 된 하이페리온 등의 각색은 있지만 이들 외에 신에게 거역한 거인족이 갇혀있는 타르타로스, 영화 초반 신전으로 쓰이는 신성한 미궁(라비린토스)과 하이페리온의 부하 미노타우로스(황소 혼혈) 역시 그리스신화에서 따왔다. 라그나뢰크는 지하에 묶여 감금되어있던 거인들이 풀려나면서 전 세계가 모두 멸망하고, 신들도 대부분 죽는 북유럽 신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신들의 전쟁' 스토리의 핵심은 "내가 도와달라고 외칠 때 도와주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신들을 증오하게 된 하이페리온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겁자 라이샌더를 성불구로 만들고 사람들을 가차 없이 학살하는 하이페리온의 동물적인 잔인성이 비단 이것 때문이라고 보기엔 너무 개연성이 부족하다. 본래 멀쩡한 사람이었으나 미쳤다는 식의 언급도 없다.

제우스는 하이페리온이 향후 전쟁을 일으킬 것을 내다보고 오래전부터 테세우스를 그 대항마로 교육해놓았지만, 절대 신이면서도 정작 그들이 두려워하는 '에피루스의 활'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이 활이 신전으로 사용되던 신성한 미궁 안에 묻혀있었다는 점.

허술한 점을 찾자면 끝도 없다. 관객들의 사전 예상 중 '스토리는 별 거 없을 것'이라는 예상만큼은 정확했던 셈이다.

포세이돈에 의해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받을 때 바다에는 기름이 잔뜩 끼어있는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고 이를 어떻게 이용하는 장면도 없다. 에피루스의 활은 사정거리도 딱히 없고 조준도 알아서 당기면 가서 맞는다. 쓰는데 있어 특별한 스킬도 필요 없고 익숙해지는 시간도 없는지 테세우스도 하이페리온도 별 어려움 없이 쓴다. 살신기(殺神技)치고는 참 볼품없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제우스는 산을 무너뜨리면서 다른 신들은 버려둔 채 아테나의 시체만 안고 잽싸게 빛으로 변해 하늘로 도망간다. 아무리 신화 상에서 아테나가 제우스가 혼자 낳은 딸이라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운명의 여사제 페드라(프리다 핀토 분)와 테세우스의 베드신은 너무나 예상 가능한 순간에 등장해 실소를 산다. 페드라는 순결을 잃으면 예지력도 잃게 되지만, "미래를 바꾸지도 못하면서 계시를 보는 것은 오히려 저주다"라는 테세우스의 논리에 빠져들어 이렇게 결정한다.

하이페리온은 남은 인간들의 마지막 보루인 타르타로스 성을 공략하고 인간전사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무명 소졸 테세우스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연설에 감동하여 다시금 결의를 다지고 싸운다.

하이페리온은 그렇게 많은 부하들을 두고 혼자 성벽 위로 올라간다.

▶총평

'신들의 전쟁'에는 신이 없다. 화끈하게 두드려 부수는 맛도 없다. 스케일도 딱히 크지 않다. '영상혁명'은 지극히 잔인하다. 신화적 요소도 제멋대로다. 기대치를 최대한 낮춰라! 스스로 비위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삼가라!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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