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최연소 우승은 3년 된 일기 덕분”

입력 2011-11-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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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GA 최종전 NH농협오픈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신인 이상희는 3년간 골프일기를 적는 등 철저한 준비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우승 확정 뒤 환호하는 이상희. 사진제공|KGT

■ KGT 최종전 NH농협오픈 우승…19세의 그린 반란 이상희

10세때 엄마 따라 골프연습장 들러
“소질 보인다” 프로 칭찬 덕에 입문

골프는 멘탈…경기 중 장단점 메모
고1때 시작, 꾸준하게 골프일기 써

“이번 우승 늦둥이의 부친 환갑선물
통장에 거금 9000만원 얼떨떨해요”


“통장에 9000만원이 입금됐더라고요. 그렇게 큰 돈은 처음 만져봐요.”

10월30일 열린 한국프로골프투어(KGT)시즌 최종전 NH농협오픈. 예상을 깨고 신인 이상희(19·캘러웨이)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게다가 최연소 우승 기록(19세6개월)까지 세웠다. 상금랭킹 74위였던 이상희를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랬기에 더 극적이고 짜릿했다. 시즌 막바지 터진 그린의 반란이었다.


● 우승상금은 고스란히 통장에

우승으로 받은 상금은 1억원이다. 세금을 떼고 9000만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19세 이상희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큰 돈이다. 어디에 써야 할지 아직 고민 중이다.

“우승하고 며칠 뒤 제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더라고요. 얼떨떨했죠. 그렇게 큰 돈은 처음 만져보거든요. 좀 이상한 느낌이었죠.” 이상희는 일단 이 돈을 그냥 간직할 생각이라고 했다. 내년에는 국내와 해외 투어를 병행할 계획이기 때문에 경비로 쓰겠다고 했다.

“솔직히 차도 사고 싶고 여기 저기 쓰고 싶은 곳이 많죠. 또 우승했다고 여기저기서 밥을 사라는 전화가 많이 와요. 친구들도 그렇고요. 물론 밥을 사긴 사겠지만 다는 못 사줄 것 같아요. 그러면 상금 가지고는 모자랄 것 같거든요.”

우승하고 나니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 조금은 어리둥절하다고 했다. 이제 막 교복을 벗고 프로가 된 이상희에게 ‘챔피언’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생소한 모양이다.


● “골프 한번 시켜보세요”

대부분의 프로골퍼들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골프를 시작한 예가 많다. 함께 연습장에 따라갔다가 골프를 배우게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상희가 골프를 배우게 된 건 전적으로 어머니 덕분이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건 10살 때. 어머니가 다니는 골프연습장을 따라갔다가 레슨프로가 “저 놈 소질이 있어 보이는 데 한번 시켜보시죠”라는 말 한 마디에 곧바로 골프선수의 길을 택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따라 몇 번 연습장에 갔었죠. 아버지가 쓰시던 우드를 들고 그냥 휘둘렀는데 그게 잘 맞더라고요. 신기했어요.”

그때도 골프를 배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 뒤로도 어머니를 따라 몇 번 더 연습장을 다녔다.

이상희의 부친 이홍식(60)씨는 “프로가 애 엄마한테 ‘소질이 보이니 한번 시켜봐라’고 말했나 봐요. 그 말에 엄마가 골프를 시킨 거죠. 아마 저한테 그렇게 말 했더라면 시키지 않았을 겁니다”라며 골프 입문 비화를 털어놨다.

엄마의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이상희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


● 비밀병기는 3년 간 써온 골프일기

신체조건은 178cm, 70kg. 운동선수를 하기에 큰 체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희는 골프선수를 하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췄다. 남들보다 팔이 길어 골프 스윙에 유리했다. 고교 시절엔 ‘골프 좀 친다’는 소리를 들었다. 고교 1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혔고, 2년 동안 활약했다. 어린 나이지만 다양한 경험도 했다. 고교 2학년 때 미국 PGA Q스쿨을 봤다. 이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때 대표 선발전 마지막 대회와 미국 Q스쿨이 같은 시기에 열렸어요. 고민 끝에 미국으로 가기로 했죠. 국가대표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프로 무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게 나중에 아쉬움으로 남긴 했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Q스쿨 도전이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됐기 때문이다.

“지역 예선을 통과하고 1차 예선까지 갔어요. 잘 하고 있었죠. 1차 예선에서도 18위권 정도로 2차 진출이 가능한 순위였어요. 그러던 중 캐디의 실수가 나왔어요. 벙커에서 캐디가 수리기를 가지러가다 모래를 정리했거든요. 전문캐디가 아니라서 몰랐던 거예요. 벌타를 받은 후에 마음이 불안해져 경기를 망쳤죠.” Q스쿨을 통과해 PGA투어 멤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이런 경험들은 프로 무대에서 쓴 약이 됐다.

이상희의 골프노트에 붙어있는 메모. 이를 보면서 이상희는 평점심을 유지한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트위터 @na1872


이상희는 지금도 경기 중 자주 메모를 한다. 이른바 골프일기다. 잘못된 점과 잘 된 점을 일일이 노트해 꼭 기억해두는 습관이다. 고1 때 시작해서 3년 넘게 하고 있다.

“경기 중 긴장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면 해야 할 일들을 까먹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걸 까먹지 않으려고 노트에 적기 시작했죠. 지금도 경기할 때마다 들고 다니면서 하나씩 체크하고 살피고 있어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되잖아요. 골프는 스윙도 중요하지만 멘탈이 더 중요하거든요.”

우승이 우연이 아닌 준비된 우승이었음을 보여준다.


● 마흔 둘에 본 늦둥이 덕에 행복

이상희는 바로 위의 형과 15살차다. 아버지가 42세 때 본 늦둥이다.

부친 이 씨는 “여자면 낳고 남자면 낳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위로 형과 누나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놈 성별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8개월 때까지 엄마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어서 아들인지 딸인지 알지 못했어요. 8개월이 넘으니까 그제야 아들이라는 걸 알았죠.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으니 어쩔 수 없었죠”라며 출생의 비화를 털어놨다.

늦둥이였으니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이상희는 밝은 성격을 가졌다. 또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골프가 잘 되지 않을 때도 웃으며 플레이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성격 덕분이다.

이상희는 “올해가 아버지 환갑이신데 제가 제일 큰 선물 해드린 것 같아서 너무 기뻐요”라며 아버지 앞에서 응석을 떨었다.

부친 이 씨도 “늦둥이 낳고 이렇게 웃고 살수 있으니 행복합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 이상희는 누구?

▲ 1992년 4월20일생
▲ 178cm, 70kg
▲ 금성초-대청중-경기고-한체대
▲ 아버지 이홍식(60), 어머니 윤자임(57) 2남2녀 중 막내
▲ 주요 성적
- 국가대표상비군(2008∼2009)
- 2011 NH농협오픈 우승(최연소 우승기록 19세 6개월), 조니워커오픈 4위
-2011 KGT 상금랭킹 17위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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