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번의 ‘뿌요일’ 밤을 지샜다, 왜?

입력 2011-12-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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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원작에 없는 밀본·해례 정체 허 찔러
연기…한석규 윤제문 등 주·조연 내공 발산
장르…정치 미스터리 멜로 등 깨알같이 담아


‘뿌리’는 깊었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뿌리에서 시작해 시청자의 호응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SBS 수목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 창제까지 7일 동안 벌어진 사건’이라는 원작의 설정에서 출발해 다양한 장르의 에피소드들을 가미해 회를 거듭할수록 눈길을 뗄 수 없는 굵은 가지를 엮어 나갔다. 22일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큰 인기의 결실을 이루어 낸 성공의 줄기들을 살펴보았다.


● 원작에 없던 ‘밀본’…그리고 극적인 반전

‘뿌리 깊은 나무’의 재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반전’이다.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는 이야기’라는 단순한 플롯을 극화하면서 원작에는 없었던 ‘밀본’을 등장시켜 반전이란 극적인 재미를 만들었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만든 비밀조직 밀본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 그리고 밀본의 3대 수장인 정기준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은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천민이었던 백정 가리온이 왕권을 위협하는 밀본의 수장 정기준이었다는 사실은 반전의 묘미를 한껏 느끼게 했다. 어린 세종(송중기)이 마방진을 푸는 장면과 궁녀 소이가 한글의 ‘해례’라는 것도 시청자의 의표를 찌른 내용이었다.


● 한석규의 건재, 윤제문의 재발견…조직력 갖춘 캐스팅의 힘

‘뿌리 깊은 나무’의 강점은 등장하는 연기자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극 중 비중이 정교하게 어우러졌다는 점이다. 주연부터 조연, 잔재미를 주는 감초 캐릭터까지 각자 자신의 역할을 분명했고, 작가와 연출자는 이를 빈틈없이 조율했다. 마치 정교한 패스게임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FC바르셀로나의 축구를 드라마에서 보는 듯했다.

이미 연말 연기대상 0순위로 꼽히는 한석규는 ‘16년 만의 드라마인데 과연 잘 할까’라는 일부 우려에 대해 ‘나 한석규야’라는 대답을 연기로 보여주었다. 함께 출연한 윤제문, 장혁의 캐릭터는 모두 그로 인해 생생히 살아났고, 그들은 한석규를 ‘어마어마한 배우’라고 평가했다.

한석규 못지않게 드라마를 지배한 인물은 바로 윤제문. 내공 깊은 연기력으로 전혀 다른 두 캐릭터, 가리온과 정기준을 소화해 시청자에게 배우의 연기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남겼다.

내금위장 무휼 역의 조진웅, 밀본의 젊은 피 심종수 역의 한상진, 무휼의 라이벌이자 강채윤의 스승인 이방지 역의 우현 역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여준 일등공신들이다.


● 정치스릴러 미스터리 멜로 액션까지…장르 종합선물세트

형식적으로는 역사적 사실(팩트)에 상상력(픽션)을 가미한 ‘팩션 사극’이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가 모호하다.

현대 정치의 모습을 떠올리게 치열한 권력 암투부터, 반전의 연속인 미스터리, 화려한 액션과 애틋한 멜로까지 드라마의 온갖 장르가 뒤섞였다.

어린 세종과 아버지 태종의 정치적 갈등, 백성을 위한 소통 정치, 신권을 강화하려는 밀본 등은 정통 사극의 재미를 주었고, 한글 창제를 막기 위해 집현전 학사를 연쇄적으로 살인하고 이를 밝히기 위해 추리해나가는 과정은 미스터리물이었다. 세종과 정기준 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싸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배신, 음모는 정치 스릴러의 극치였다.

여기에 강채윤과 궁녀 소이의 애달픈 사랑까지 더해져 다양한 연령층을 끌어들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사극의 추세인 ‘팩션 사극’이 전면으로 나와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었다“면서 ”사극의 장점인 실존인물의 이야기와 다양한 장르가 긴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어지간한 ‘미드’보다 더 다양한 재미를 주었다”고 말했다.


※ 뿌요일…24부작으로 만들어진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애청자들이 ‘뿌리깊은 나무’의 방영일인 수요일과 목요일을 가리켜 만들어낸 신조어.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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