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불고기 먹고 힘 불끈 경기전 “오늘 한방 기대하라”

입력 2012-01-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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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원. 스포츠동아DB

지동원. 스포츠동아DB

지동원 결승골 비하인드 스토리


사흘 휴가 이후 “컨디션 굿” 자신만만
엄마표 돼지고기 볶음 최고의 보양식
돌부처 지동원 잭팟 터뜨리고도 덤덤

극적인 버저비터였다.

선덜랜드 지동원(21)이 종료직전 결승골로 ‘선두’ 맨체스터 시티(맨 시티)를 침몰시켰다.

지동원은 2일(한국시간) 맨 시티와 홈경기에서 후반 32분 벤트너와 교체 출전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0-0에서 추가시간 3분이 주어졌다. 전광판 시계가 92분52초를 지나고 있었다. 경기는 0-0으로 끝나는 듯 했다. 순간 동료 세세뇽이 지동원에게 스루 패스를 찔러줬다. 지동원은 일대일 상황에서 침착하게 상대 골키퍼를 제친 뒤 텅 빈 골문에 가볍게 볼을 밀어 넣었다. 지동원의 시즌 2호골. 9월 첼시와 홈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데뷔 골을 터뜨린 이후 114일 만의 득점이었다. 선덜랜드의 1-0 승.

지동원은 관중석 쪽으로 달려가 마음껏 포효하며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렸다.

지동원은 작년 여름 선덜랜드 입단 후 좀처럼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지동원을 데려왔던 스티브 브루스 감독은 지난 달 초 성적부진을 이유로 전격 경질됐다. 마틴 오닐 감독이 새로 부임한 뒤 지동원은 최근 3경기 연속 결장했다. 지동원 아버지 지중식 씨는 “(지)동원이는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이 있어도 티를 잘 안 냈다. 영국에 가서도 성급하게 생각 안 한다며 오히려 부모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최근 3경기 연속 못 나와 속으로는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며 안타까워했다. 소속 팀에서 경기를 못 뛰는 게 A대표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더 답답했다. 지동원은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 득점은 지동원의 프리미어리그 적응에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조짐은 있었다. 지동원은 경기 전 국내 한 지인에게 ‘한 방 기대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결승골에 얽힌 경기 전후 뒷이야기를 풀어본다.




■ 1. 3일간의 특별휴가

빡빡한 일정 속에 짧은 휴가가 약이 됐다.

오닐 감독은 지난 달 22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 경기를 마치고 27일 에버턴 전에 앞서 선수단 전체에 3일 휴가를 줬다. 지동원은 이 기간 동안 집에서만 지내며 모처럼 푹 쉬었다. A대표팀과 소속 팀을 오가며 강행군을 소화했던 그에게 꿀맛 같은 휴가였다. 재충전을 하자 몸이 곧바로 반응했다. 지동원 에이전트 C2글로벌 전용준 이사는 “휴가를 보낸 뒤 유독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하더니 결국 결승골을 넣었다”고 기뻐했다.

■ 2. 오프사이드 논란 신경 꺼

지동원의 골은 오프사이드 논란을 빚었다.

세세뇽이 패스하는 순간 지동원이 맨 시티 최종 두 번째 수비수보다 조금 앞서 있었지만 부심은 깃발을 들지 않았다. 지동원도 경기 후 상황을 알아채고는 잠시 멋쩍었다. 동료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가 큰 힘이 됐다. 전용준 이사는 “현장에서도 오프사이드 때문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동료들이 경기 후 일제히 동원이에게 ‘신경 쓰지 마라. 우리(선덜랜드)도 그 동안 부당한 판정 때문에 많은 손해를 보지 않았느냐. 이것으로 공평해 졌다’며 동원이 기를 살려줬다”고 귀띔했다.

■ 3. 보양식은 돼지불고기 볶음

지동원은 특별히 보양식을 챙겨 먹지 않는다. 지동원의 부모가 영국에서 머물며 하루 세 끼 한국음식을 차려주는 데, 이걸 잘 먹는 게 체력의 비결이다. 지동원 부모는 지난 달 한국으로 잠시 들어왔고 지금은 지동원의 큰 누나가 동생을 돌보고 있다.

지동원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의외로 소박하다. 돼지불고기 볶음이다. 아버지 지중식 씨는 “어머니가 해 주는 돼지고기 볶음을 즐겨 먹는다. 영국에서도 수시로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고 전했다. 이날 골도 아마 돼지불고기의 힘이 아니었을까.

■ 4. 역시 돌부처

지동원의 별명은 ‘애늙은이’ ‘돌부처’다. 어지간한 감정은 속으로 삼킨다. 감정이 좀처럼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들뜰 법도 하건만 덤덤했다. 전용준 이사는 “동원이 골이 들어가는 순간을 TV로 보는데 전율이 흘렀다. 그런데 막상 통화를 해보니 당사자가 ‘그냥 기쁘다’고 별 말 없어 해 허탈했다. 이제는 익숙해져 그러려니 한다”며 웃음 지었다. 아버지 지 씨 역시 “경기 후 통화하면서 동원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팀에 보탬이 돼 기쁘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 별 다른 말은 없었다”고 밝혔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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