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이 읽는 소설집

입력 2012-04-13 14: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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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작가의 소설 ‘어디로 갈까요?’. 사진제공|현대문학

십여 년간 착실하게 자신만의 소설 지평을 넓혀온 작가, 김서령(37)의 두 번째 소설집 ‘어디로 갈까요’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됐다.

김서령은 첫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로 옛 풍경이 되어버린 도시 서민층의 삶을 세밀한 묘사력과 서정적 문체로 복원했다는 평을 들으며 단숨에 문학상 최종심에 올라 눈길을 끈 작가이다.

2010년 발표한 첫 장편 ‘티타티타’에서는 아릿한 성장통을 견뎌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에 있어 영원히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을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어디로 갈까요’는 ‘티타티타’를 전후한 시기에 쓴 9개의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이다. 인생에 서툴고, 한없이 외롭고, 약하고, 착한 수많은 ‘당신들’이 맞닥뜨린 이별의 풍경들이 작가 특유의 투명하리만치 섬세한 문체로 펼쳐진다.

표제작 ‘어디로 갈까요’는 2011년 이효석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2011년 작가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에 뽑히기도 했다.

김서령 저|현대문학|1만3000원

◆ ‘어디로 갈까요’ 67-68쪽 발췌
“어디로 가요?”
“잘 모르겠어요.”
그가 주먹을 쥐고 가슴을 퉁퉁 쳤다.
“그런 말이 아니고! 지금 어디로 가느냐고요. 베네치아로 가는 건지, 파리로 가는 건지, 런던으로 가는 건지! 아니면 한국으로 가는 건지 말이에요!”
나도 가슴을 칠 노릇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그걸 잘 모르겠어요.”
일부러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닌데,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마음대로 하세요. 나도 몰라.”
“들어가세요. 저도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요.”
그제야 내려다보니 그는 슬리퍼 바람이다. 저걸 신고 뛰어왔구나. 나는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냈다. 자판기에서 콜라 한 캔을 뽑아 그에게 내밀었다. 겉절이와 부추김치와 삼겹살과 또 홍어에 대한 보답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차가운 캔을 만지작거리던 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미니 콜라를 덥석 바지 주머니 안에 집어넣는다.
“잘 가고요, 기차 거꾸로 타지 마세요.”
나는 끄덕인다. 추리닝 바지가 콜라캔 때문에 축 처졌다. 그가 돌아서고 나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외로워질 것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그의 손을 조금 더 오래 잡고 있었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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