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혹은 ‘노장’이란 단어를 싫어한다는 김종학 PD. 5년 만의 연출작 ‘신의’ 이야기를 열정적인 몸짓으로 전해준 그는 ‘꼰대’ 혹은 ‘노장’이 아니라 늘 새로운 현역이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신의’가 표절? 1부 대본만 80개 버전이나 돼
송지나 작가와 “다시는 안봐” 했는데 또 만나
시청률 조바심 털고 인생의 멋진 작품 만들 것
주연 김희선은 돌격형…술자리 3차까진 기본
“새벽녘 태양은 밝지만 해질녘 붉은 태양이 더 뜨겁다.”
김종학(61) PD는 작심한 듯 보였다.
“정오의 태양이 내리쬐던 때에 연연했다”고도 말했고, “아직도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구에 회자되고 싶기도 하다”며 솔직한 ‘욕망’도 드러냈다. 김 PD는 그렇게 35년 간의 연출 인생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며 새로운 각오를 꺼내 보였다.
김종학 PD는 ‘여명의 눈동자’(1992년)부터 ‘모래시계’(1995년), ‘태왕사신기’(2007년)까지 한국 드라마 역사를 바꾼 작품의 연출자. 1990년대에는 현대사의 굴곡을 과감히 펼쳐냈고, 2000년대에는 퓨전사극과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판타지 드라마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가 김희선·이민호 주연의 SBS 드라마 ‘신의’(작가 송지나, 8월 초 방송)로 5년 만에 연출 현장에 돌아온다. 24일 첫 촬영을 앞둔 김종학 PD를 16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동안 그는 ‘자기고백’이라 할 말들을 망설임 없이 꺼냈다. 한국 드라마 사상 최대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 ‘태왕사신기’를 두고는 “흥행 면에서는 참패였다”고 냉정히 평가했다. 최근 ‘신의’를 둘러싼 표절 의혹에도 명확히 선을 그었다. “우리 둘(송지나 작가)이 남의 작품을 어떻게 베낄까 상의했겠느냐”면서 “그걸로 시작이자 끝”이라며 단호했다.
현역 연출자 가운데 가장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PD, 시기별로 최대 히트작을 보유한 김종학 PD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진솔하고도 묵직했다.
- 공백이 길었다.
“‘태왕사신기’ 끝내고 리듬을 못 찾았다. ‘여명의 눈동자’부터 ‘모래시계’나 ‘백야3.98’(1998년)은 보통 3년 주기로 연출했다. 이번엔 5년이다. 35년 연출자로 살았지만 처음 출발하는 기분이다.”
- 특별한 결심이 선 것처럼 보인다.
“명예도 금전도 털어버리고 개인이 아닌 연출자로 다시 시작하려 한다. 고백하건대 그동안 같은 패턴으로 연출해왔다. 대본 두 번 훑고 촬영장에 갔다. ‘신의’는 5번이고 10번이고, 반복해 읽는다. 1982∼83년 MBC ‘암행어사’로 데뷔할 때와 같은 심정이다. 사실 그 뒤 ‘나는 뭐든 잘 한다’고 우쭐했고 ‘모래시계’ 끝나고는 더 ‘업’(up)됐다. 주위에서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러주니, 나도 그런 줄 알았지. 하하! 그 뒤부터 ‘백야3.98’이나 ‘대망’(2002년)의 시청률이 낮았는데도 ‘정신 못 차리는’ 상황에서 ‘태왕사신기’를 시작했다. 한류 열풍이 불었고 드라마와 비즈니스를 결합하고 싶었지만 회자될 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흥행으로 보면 참패라고 보면 된다. 정신적으로 말도 못할 힘든 시기를 보냈다. 마치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겪는 것처럼.”
‘태왕사신기’를 끝내고 그는 자신이 세운 김종학 프로덕션을 떠났다. “경영 측면에서 누군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 그는 ‘떠났다’는 표현 대신 “지금도 고문 역은 맡고 있다”고 했다.
- ‘신의’는 제작 기간만 3년이 걸렸다.
“대본! 나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대본을 받을 배우가 만족해야 한다. ‘뭐야, 이거’ 같은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2년 반 동안 작가팀이 4번 바뀌었다. 송지나 작가는 5번째 팀이다. 지금껏 나온 1부 대본이 80개 버전이다. 정말 힘든 과정이었다. 후회와 반성, 애증이 어우러진 작품이 ‘신의’다. ”
- 결국 송지나 작가와 다시 만났다.
“우린 드라마 끝나고 나면 ‘너, 다시는 안 봐’ 하고 냉정하게 돌아선다. 하하. 마치 이혼했다 재결합한 부부가 또 이혼했다 서로 못 잊어 다시 만나는 것처럼. 작가도, 나도 서로 좋아하지만 함께 작업하는 건 너무 힘이 드니까…. 송 작가는 써내기 어렵고, 나는 연출하기 어렵고. 헤어질 땐 ‘편하게 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도, 나도 긴 시간을 돌아오지 않았나 싶다. 다른 사람과 작업하다 서로를 찾고 그렇게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송 작가와 일한 20년 동안 이번처럼 대본이 빨리 나오기는 처음이다.”
- MBC ‘닥터진’과 표절 스캔들에 얽히기도 했는데.
“이 나이에, 이 경력에, 우리 두 사람이 ‘닥터진’을 놓고 이렇게 할까, 했을까.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와 내가 해온 작품이 있잖나. 그 작품이 어떤 드라마들인데.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이게 (표절 스캔들의)처음이자 끝이다. 송 작가는 ‘국민작가’로 불리는 사람이다. 연출자가 황혼에 쓰러질 땐 자기 것을 복제할 때이다.”
- 24일 서울 봉은사에서 첫 촬영을 시작한다.
“초초하다. ‘드라마로 얻은 명성이 차츰 잊혀지고 있나?’ 강박이 많아진다. 떨치기 어려웠다. 현역 연출자의 나이로는 내가 두 번째다. ‘꼰대’ ‘노장’이란 말을 절대 듣고 싶지 않다. 이른 새벽 빨간 태양도 좋지만 정열과 열정이 가득한 붉은 노을빛이 더 빛나지 않나. 최근 연출작의 시청률이 낮아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툭툭 털어버리자, 왜 정오의 태양이 내리쬐던 때에 연연할까 생각했다. 가끔은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 이야기하는 사람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하하! ‘모래시계 감독’으로만 남고 싶지 않다. 늙다리가 돼 ‘나 이거 했어’ 자랑하는, 그런 연출자 말이다.”
- 왜 ‘신의’를 택했나?
“어느 순간 역사드라마나 현대극에 내 몸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도 ‘미몽’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고. ‘신의’의 시작은 한의사가 시골 보건소에서 의술을 펼치는 시놉시스에서 시작됐다. 시골 보건의는 내 눈에 차지 않았다. 차라리 징집된 노예가 한의를 익히고 탈출해 세상을 움켜쥐는, 마치 무협소설처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한의를 하려면 조선시대는 허준 때문에 안 되니 고려시대로 옮겼다. 미드 ‘하우스’처럼 무겁지 않은, 코믹한 이야기로 풀고 싶었다. 타임슬립(시간여행)을 통해 고려로 온 양의가 MRI도, CT도 없는 데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무공과 연결했다. 몸 안의 상처를 태우는 화공, 얼려서 치료하는 빙공, 초음파 같은 음공, 정신치료인 염력처럼.”
김종학 PD는 “사람의 몸을 고치는 의공”이라는 이야기의 설정을, 양 손을 신체 곳곳에 대가며 설명했다. 그의 머리 속은 드라마를 채울 다양한 ‘그림’으로 가득 찬 듯 보였다.
- 주연배우 김희선과 이민호의 캐스팅이 의외라는 평가도 있다.
“김희선은 항상, 지금도 통통거리는 느낌이다. 계속 통통 튀고 좌충우돌하는 은수와 같다. 실제로도 돌격자세를 갖췄다. 술자리도 희선이가 오면 2, 3차까지 간다. 이민호는 임금 시스템이 싫은 자유분방한 최영 장군과 어울린다. 사회 지도층이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는 것 같다.
“만화방에 자주 간다. 밤을 꼬박 새워 무협지, 대중소설을 12시간 동안 읽는다. 짜장면도 시켜먹고 육개장도 먹을 수 있다. 하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인터넷 소설도 본다. 요즘은 ‘불후의 명곡’을 매일 다시 본다. 샤이니의 태민이 ‘마포종점’을 재해석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태어나기 전 노래인데 그걸 진화시키더라. 드라마에도 ‘불후의 명곡’처럼 옛 것과 새 것의 장점을 섞고 싶다. 나이는 열정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된다.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으면 ‘나이 없다’고 답한다. 하하!”
김종학 PD는 “지금도 마지막 촬영으로 생각하고 현장에 나간다”고 했다.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내 시장에서 5만원에 파는 도자기가 아니라 장인의 수공예품처럼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숱한 화제작을 만들고도 새로움을 꿈꾸는 그는 여전히 ‘장인’을 꿈꾸고 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