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 D-3/런던아이]엘리베이터에 갇혀 50분 영화 한편 같은 탈출소동

입력 2012-07-24 03: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이헌재 스포츠레저부 기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머리도 지끈거립니다. 공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23일 런던 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승강기 사고가 났습니다. 1층에서 출발한 승강기가 2층으로 가는 도중 딱 멈춰버린 거죠.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왜 저였을까요. 동아일보 취재팀장인 황태훈 선배와 저를 포함해 9명의 각국 취재진과 올림픽위원회 관계자가 꼼짝없이 좁은 승강기 속에 갇혀 버렸으니 말이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떨어져도 죽진 않겠다”며 농담을 주고받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심각해졌습니다. 문은 열리지 않고 승강기 내 비상전화를 걸어도 “기다리라”며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온 탓이죠.

그때부터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됐습니다. 인원 구성도 그럴듯했습니다. 한국 기자 2명과 중국 기자 2명, 나머지 5명은 영국,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었습니다. 굳이 제목을 달자면 ‘다국적 엘리베이터 대소동’ 정도 될까요.

다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지만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는 신호가 떴습니다. 20분가량 지나자 승강기 내 공기가 탁해졌습니다. 천식이 있다는 대회 조직위의 모리스 아주머니가 주저앉습니다. 땀이 비 오듯 흐릅니다. 구조를 요청하는 문자를 후배에게 보냈지만 신호가 약해 전달되질 않습니다. 누군가가 “천장을 뚫고 나가자”고 외칩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 철제 천장입니다.

10여 번의 시도 끝에 후배에게 문자를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후배가 대회 조직위에 가서 상황을 전하자 “담당자가 오고 있으니 좀 기다리라”고 했답니다. 마음이 급해진 후배가 “호흡 곤란을 겪는 사람이 있다. 위험 상황”이라고 하자 그제야 불난 호떡집이 됐습니다.

구조대는 사고 발생 40분 후 도착했고 10분간의 작업 끝에 마침내 승강기 문이 열립니다. 50분 만에 탈출 성공. 주저앉아 있던 모리스 아주머니가 눈물을 터뜨립니다. 몰려든 구경꾼들이 박수를 칩니다.

땀범벅으로 나오자 대회 조직위 누군가가 “괜찮냐”고 묻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생수 한 병을 건넵니다. MPC 내에서 꼬박꼬박 돈을 받던 물입니다. 깐깐하고 느리게 굴던 조직위로부터 처음 받은 호의입니다. “Thank you!!”

이헌재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