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플레이어 출신 안정환은 은퇴 후 봉사하는 축구인으로 변신했다. 말로만 봉사하는 게 아니다. 프로연맹 명예홍보팀장으로 전국을 직접 돌며 K리그 홍보에 여념이 없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관중? “오세요” 말고 찾아가는 스킨십 중요
축구도 마케팅…구단마다 빅스타 만들어야
SNS 글 “진짜 안정환?” 동영상 올려 증명
선진국 처럼 프로연맹 역할도 알아주셨으면
스타급 축구 선수가 은퇴할 때 대개는 “한국축구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약속한다. 팬들의 사랑으로 이 만큼 성장했으니 그 사랑을 돌려주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막상 은퇴 뒤의 모습은 봉사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올 초 현역에서 은퇴한 안정환(36)도 비슷한 코멘트를 했다. 그는 “팬 여러분의 사랑 덕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고,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면서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안정환은 그 약속을 지켰다. K리그와 팬을 위해 뛰었다. K리그 명예홍보팀장 자격으로 4월부터 전국을 누비며 팬들을 만났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 지난 5개월간 K리그 부흥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일 오후 ‘봉사하는 축구인’ 안정환을 만났다.
-은퇴한 선수가 축구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은 정말 의외다.
“초반에 힘들긴 했다. 계속 원정도 가야하니까. 그러나 약속했던 부분이었다. 팬들은 (현역 은퇴 대신) 더 뛰어주기를 바랐는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원래 현역 은퇴 후 축구를 떠날 생각이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준비도 많이 하고 계획도 많이 했는데, 주위 분들이 축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자고 했고, 그런 상황에서 홍보팀장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조금만 희생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관중도 없고, 지난 해 승부조작도 있고 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들긴 하지만 리그 수준도 한 눈에 알 수 있고 좋다.”
-몇 개 구장이나 다녔나.
“절반 정도. 사실 수원, 서울 같은 관중 많은 곳은 안 가도 된다. 열악하고 관중 없는 곳 가서 사인도 하고 싶었다. 저도 팬 만나서 좋고 구단도 좋고. 꼭 제가 도움만 준다는 건 과찬이고 저도 (은퇴 후) 공허해질 수 있는 마음을 서서히 잊어갈 수 있으니까 좋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장이나 에피소드는.
“많다. 상주 갔을 때는 시골에 온 느낌이랄까, 정이 많더라. 가자마자 막걸리 주시고. 사인하고 경기도 봐야 하는데 도지사 등 어르신들이 막걸리 같이 마시자고 하더라. 마음으로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구나 이런 느낌 받았다. 이런 구단 위해 노력하는 게 보람되더라. 경남도 기억에 남는다. 30라운드 때 창원에 갔다. 하프타임 때 그라운드 내려가서 인사하는 데 0-1로 지고 있었다. 사실 이기기 힘들 것 같았지만 계속 예상 스코어를 물어 2-1로 이겼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됐다(경남은 이날 승리로 상위그룹에 합류했다). 정말 신기했다. 경남 직원이 고맙다며 맛있는 거 사주더라. 그런 재미도 있었다.”
-돈을 안 받고 하는 일이다. 이름값이나 몸값 생각하면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받는 것도 그렇고 내가 도움을 주려고 하는 건데. 애초부터 그런 마음은 없었다.”
-선수 때와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 밖에서 본 K리그 느낌은
“일단 선수를 잘 모른다.(웃음) 축구 스타일이 바뀌고 K리그 수준이 많이 올랐다. 예전보다 행정이나 환경이 나아지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생각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더라. 좀 더 나아졌으면 한다. 가장 아쉬운 점은 관중이다. 없으니까.”
-왜 K리그는 관중이 없을까.
“‘오세요’ 라고 말로 하는 것과 직접 다가서서 하는 것의 차이인 것 같다. 그냥 ‘와 주세요’ 와 찾아가서 ‘와 주세요’ 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다가가서 와주세요라고 했으면 좋겠다.”
-이건 좀 아쉽다 싶은 점은.
“가장 좋은 건 구단마다 스타들을 만들어서 스타마케팅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선수 보고 오는 관중들? 꽤 많다. 경기장에 팜플렛 하나 걸려고 해도 5명은 필요하다. 그럼 팜플렛 3개면 벌써 15명이다. 그게 스타의 힘이다. 자기 구단 자산을 잘 이용해야 한다. 스타가 와야 어린 친구들도 축구도 좋아하고 따라다니고 그럼 또 퍼지고. 외국 나가는 선수는 나가는 거고, 그걸 메울 생각을 해야 한다. 스타 선수가 외국으로 나갔으니 어쩔 수 없다고 앉아 있는 게 답답하다. 좋은 선수를 평생 끼고 있을 수는 없다. 보내줘야지. 그리고 보낸 빈 자리는 또 만들어야 한다. 스타는 만들기 나름이다. 어차피 축구도 마케팅이고 비즈니스인데. 물론 제가 실제 환경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그런 식으로 가면 관중이 더 늘지 않을까 싶다.”
-봉사하는 축구인 이미지다.
“그 정도는 아니고. 받은 만큼 돌려드리면 제가 떳떳하다. 주위에서 저를 잘 아는 사람은 미쳤다고 한다. 네가 그런 걸 하느냐고. 사실 나도 안 믿긴다. 그러나 막상 운동장 가면 좋다. 또 이제 욕하시는 분이 없어 좋다. 경기를 뛰면 좋아해주시는 분도 많지만 반면 욕도 많이 먹어야 하는데, 욕 하는 사람이 없으니 거기서 힘을 얻기도 한다. 많은 분들이 올해까지 1년만 더 선수로 뛰라고 하셨다. 그 1년을 이렇게 밖에서 뛴다는 마음을 먹었다.”
-스플릿시스템은 어떻게 보나.
“어떤 시스템이든 장단은 있다.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하위 2팀 떨어지고, 2부 리그 상위 2팀은 올라오고, 승점으로 우승 팀 결정짓고, 이게 가장 인기 있고 잘 하는 시스템 아닌가. 그럼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지금이 시작 단계다. 나쁜 점보다 이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SNS를 자주 하던데.
“요즘엔 동영상 찍어서 올린다. 그냥 글만 올리니깐 안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진짜 안정환이 하는 거냐고. 그래서 동영상으로 항상 하자고 했다. 미션도 수행하고.”
-프로축구연맹과 함께 일해 왔는데.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프로연맹의 존재다. 일반인들은 프로연맹이 뭐하는 곳인 줄 잘 모르더라. 아직도 내가 협회 홍보팀장으로 일하는 줄 아는 사람도 많다. 다른 나라 봐라. 우리가 이탈리아축구협회 보다 이탈리아리그 로고를 알고, EPL이나 분데스리가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축구협회 밖에 모른다. 프로연맹의 존재감을 좀 살렸으면 한다.”
-런던올림픽의 열기를 K리그로 옮겨올 수 있을까.
“2002년 한일월드컵의 열기를 잘 연결하지 못 했는데, 잘못했던 것을 기억해야한다. 작게 생각하면 팬들이 월드컵을 보고 수준이 높아졌다. K리그 보면 좀 재미없고. 비교가 된다. 템포도 느리고. 마니아층이 아닌 여성들도 수준을 알게 됐다. 리그에서 잘 살려줬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부분을 잘 알아야한다.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경기력도 중요하고, 언론도 중요하고, 그런 것들이 잘 맞아 떨어져야한다.”
-향후에 지도자를 꿈꾸고 있나.
“아직까지 지도자는 생각 없다. 누구를 가르친다는 게 어려운 거다. 현재 지도자하는 분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내가 만약 지도자 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공부 많이 하고 배우고 할 것이다. 사실 은퇴하고 코치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감독 제의도. 모든 분들이 내가 라이센스(지도자 자격증)를 갖고 계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 분들에게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얘기했다.”
-내년에도 홍보팀장 할 건가.
“안 한다. 올해까지만 최선을 다한다. 물론 도움을 줄 방법이 있으면 앞으로 주겠지만. 올해까지만 열심히 하겠다.”
스포츠 2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