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마리아노 리베라 커터 하나로 ‘新이 된 사나이’…볼끝 아직 살아있네

입력 2013-05-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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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 리베라는 뉴욕 양키스는 물론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마무리투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업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세이브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마침내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사진출처|MLB 사무국

■ 올시즌 끝으로 은퇴…양키스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


고교졸업 후 새우잡던 어부, 양키스로 스카우트
막강 커터 위력…2001년 방망이 41개 부러뜨려
1995년 데뷔 후 623세이브 ML 최다기록 행진

43세 마무리, 90마일 강속구 씽씽 건재함 과시
부상복귀 올해 불쇼없이 15세이브 방어율 1.65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전설의 새 ‘불사조’는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에 빠져도 굴하지 않고 이겨내는 사람을 비유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13일(한국시간) 현재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세이브를 많이 올린 투수는 뉴욕 양키스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다. 오른쪽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그의 시대는 끝났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불과 1년 전을 떠올리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올 시즌 양키스는 ‘죽음의 디비전’이라 불리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강력한 꼴찌 후보로 거론됐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데릭 지터가 부상을 당해 언제 출전할지 기약이 없는 데다, 1969년생으로 만 43세인 리베라가 이끄는 불펜이 불안하다는 평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리베라는 17경기에 등판해 단 1개의 블론세이브 없이 15세이브를 올리며 양키스의 뒷문을 단단히 지키고 있다. 16.1이닝을 던져 방어율 1.65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는 리베라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13번째 올스타전 출전도 가능할 전망이다. 그야말로 ‘불사조’와 같은 리베라다.


○새우잡이에서 야구선수로!

LG 김기태 감독과 동갑이면서도 여전히 90마일(약 145km)을 상회하는 강속구를 뿌리는 리베라. 그의 고향은 파나마의 작은 어촌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란 그의 원래 꿈은 축구선수였다. 간혹 우유팩으로 만든 글러브로 야구를 하기도 했지만, 볼 하나만 있으면 되는 축구가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러나 고교 시절 양쪽 발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축구선수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는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를 도와 어부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3년간의 힘들었던 새우잡이 생활을 청산한 그는 1988년 지역 아마추어 야구팀에 들어가 제대로 된 야구공을 처음 만졌다. 만약 발목을 다치지 않아 축구를 계속했거나, 어부로 수입이 괜찮았다면 역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소방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격수를 보던 리베라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눈에 전혀 띄지 않았다. 그러다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마운드에 오르면서 양키스의 라틴아메리카 캠프에 초대되는 행운을 잡았다. 구속은 시속 85마일(137km)∼87마일(140km) 정도로 평범했지만, 간결한 투구동작과 유연성이 돋보여 사이닝보너스 3000달러(약 330만원)를 받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필살기 ‘커터’ 장착, 양키스의 소방수 되다!

루키리그부터 시작한 마이너리그는 고달팠다. 향수병에 걸려 야구를 포기할 생각도 수없이 했다. 메이저리그로 승격하기까지 꼬박 5년의 세월이 걸렸다. 25세이던 1995년 5월 24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전에서 부상을 당한 지미 키를 대신해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3.3이닝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팀 내 보직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양키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발 데이비드 웰스와의 트레이드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시 선발로 경기에 나서던 리베라가 시속 95마일(153km)이 넘는 강속구를 뿌려대자 진 마이클 단장이 돌연 트레이드를 철회해 양키스에 잔류할 수 있었다.

1996년 마무리 존 웨틀랜드 앞에 등판하는 셋업맨으로 중용된 리베라는 26연속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107.2이닝을 던져 방어율 2.09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선발도, 마무리도 아니었지만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3위에 오르며 주가를 높였다. 포스트시즌에서도 14.1이닝 동안 단 1자책점만 기록하며 양키스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꺾고 18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리베라의 성장에 만족한 양키스는 1997년 웨틀랜드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그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그러나 마무리로서의 출발도 처음에는 순탄치 않았다. 첫 6차례 세이브 기회에서 3차례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나 조 토리 감독은 꾸준히 기회를 부여했다. 고비를 넘긴 리베라는 43세이브, 방어율 1.88로 토리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리베라에게 1997년은 매우 중요한 해로 남아있다. 풀타임 클로저가 된 것도 있지만, 자신의 필살기가 된 ‘커터(컷패스트볼)’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직구와 거의 똑같은 스피드로 나가다 막판에 볼이 옆으로 휘어지는 커터는 타자들의 방망이를 자주 부러뜨리는 마구다.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의 버스터 올니 칼럼리스트에 따르면, 2001시즌 리베라의 공에 부러진 방망이는 무려 41개나 됐다. 삼성 마무리 오승환이 ‘돌직구’ 하나로 타자들과 승부하는 것처럼, 리베라는 대부분 커터만을 던진다. 2010년 커터의 구사 비율이 83.3%나 됐지만, 이를 제대로 공략하는 타자는 드물었다. 개인통산 612홈런을 친 짐 토미가 “리베라의 커터만큼 위력적인 공을 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다. 커터 하나로 메이저리그를 점령한 리베라는 1999년, 2001년, 2002년 메이저리그 전체 세이브 1위에 올랐다. 특히 1999년 월드시리즈에선 마무리가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하는 신기원을 열었다.



○위기를 극복하며 최고 마무리로 건재 과시

승승장구하던 리베라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양키스는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를 만났다. 1차전을 앞두고 파나마에 있는 리베라의 집 수영장에서 친척들이 익사를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장례식을 마친 뒤 양키스타디움으로 향한 리베라는 1차전에서 세이브를 따냈고, 2차전에서도 가뿐히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그러나 3승무패로 앞서던 양키스가 4·5차전에서 리베라의 잇따른 블론세이브로 분위기를 빼앗기며 내리 4연패를 당해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7전4선승제에서 먼저 3승을 따내고도 역전패를 당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듬해 팔꿈치 부상으로 스프링캠프를 건너뛴 리베라는 시즌 첫 두 번의 기회에서 모두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는데, 공교롭게도 상대는 레드삭스였다. ‘수호신’이라며 열광했던 팬들이 야유하기 시작했고, 극성스러운 뉴욕 언론은 앞 다퉈 ‘리베라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펜웨이파크 원정 때 레드삭스 팬들이 리베라에게 환호를 보내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러나 리베라는 초반 부진을 극복하고 43세이브, 방어율 1.38, 이닝당출루허용(WHIP) 0.87, 피안타율 0.177의 놀라운 성적을 내면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에 올라 건재를 과시했다.


○올 시즌 후 퇴장을 준비하는 황혼의 불사조

지난 시즌에도 리베라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시즌 첫 세이브 기회를 날렸지만, 이후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5개의 세이브를 따낸 뒤 어이없는 부상을 당했다. 5월 4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경기 직전 타자들의 배팅훈련 타구를 외야에서 잡으려다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오른쪽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6월 13일 수술대에 오른 그는 “반드시 메이저리그에 복귀해 건재함을 증명하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리베라의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마무리를 맡은 라파엘 소리아노는 42세이브를 따내며 그의 공백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올 시즌 소리아노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워싱턴 내셔널스로 둥지를 옮기면서 리베라는 양키스의 마무리로 원대 복귀했다.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리베라는 4월 10차례 세이브 기회를 100% 성공시켜 노익장을 과시했다. 2011년 9월 20일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 트레버 호프먼(601세이브)을 제치고 메이저리그 최다 세이브 기록자로 등극한 리베라는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자신의 세이브 기록을 계속 경신하며 현역 생활의 황혼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는 리베라의 불사조 정신은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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