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마지막 인터뷰 속 김종학 PD “명예도 금전도 털어버리고 가겠다”

입력 2013-07-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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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종학 PD. 스포츠동아DB

‘신의’ 발표 당시 연출 열정 가득
최근 중국 오가며 차기작 구상도

“해질녘 붉은 태양 속에 더 뜨거운 정열이 있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노장’ 감독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고, 영원한 ‘현역’이고 싶다는 의미였다.

유작이 된 SBS 드라마 ‘신의’ 방송을 두 달 앞둔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스포츠동아와 만난 김종학(62) PD는 5년 만에 새 작품을 내놓는 설렘과 기대를 두 시간 동안 끊임없이 풀어놓았다. “꼰대가 되기 싫다”면서 “아직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다”는, 연출자로서 솔직한 마음도 꺼냈다.

아직 할 일이 많았던 연출자, 도전하고 싶은 건 더 많았던 김종학 PD가 세상을 등졌다. ‘여명의 눈동자’부터 ‘모래시계’, ‘백야 3.98’ 그리고 ‘태왕사신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드라마의 도전을 이끈 명장의 갑작스런 부고에 방송가는 물론 그의 작품을 사랑한 팬들도 충격에 빠졌다.

정확히 1년 2개월 전, 스포츠동아와 가진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고인은 “명예도, 금전도 털어버리고 출발한다”는 말로 ‘신의’를 만드는 각오를 밝혔다. 1982년 MBC 드라마 ‘암행어사’로 연출 데뷔하고 꼭 35년 만에 만드는 드라마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작 진행의 문제로 출연료가 밀리면서 소송이 이어졌다. ‘신의’를 사실상 책임진 사람으로서 심적 고통은 상당했다.

‘신의’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자식 같은 후배들에게 출연료를 주지 못해 괴로워했다”며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심한 말을 하고 다니면서 자존심 강한 그는 자주 만나던 사람과도 최근엔 왕래를 끊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측근은 “김종학이란 이름이 유명해서 출연료 문제가 연출자 한 사람의 책임으로만 몰린 분위기가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앞서 고인은 ‘태왕사신기’ 방송 직후 제작비 문제가 불거지자 혼자 책임을 지고 자신이 직접 세운 제작사 김종학프로덕션을 떠나기도 했다.

‘신의’를 끝내고 고인은 실망하거나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출국금지되기 직전인 6월까지도 중국을 오가며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다.

“‘모래시계’의 연출자로만 남고 싶지 않다”던 고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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