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리그가 판정 논란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구단들이 심판을 믿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2013시즌 K리그 클래식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스포츠동아DB
심판이 배정소식 구단에 먼저 전화
구단들 불이익 받을까 알고도 쉬쉬
오심 떠나 심판 신뢰도 추락 더 문제
몇 달 전 프로축구연맹 실무위원회(구단 사무국장과 연맹 실무자들의 회의)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A구단 관계자가 “모 심판이 심판 배정이 발표되기도 전에 우리 팀 경기를 맡게 됐다고 미리 전화를 해왔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연맹은 올 시즌부터 심판 배정 현황을 경기 당일 공개하고 있다. 미리 알려질 경우 발생할 수도 있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심판이 먼저 자신의 배정소식을 알렸으니 구단 입장에서는 상당한 압력을 느꼈을 게 뻔하다. 이 뿐 아니다. 또 다른 심판은 B감독의 최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잘 봐줬는데 B감독은 인사 한 번 없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할 말이 없다. 잘 해줬다는 발언도 심각한 데 한 술 더 떠 인사라니.
구단들은 이런 전화를 받아도 쉬쉬할 수밖에 없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보복 때문이다.
C감독은 작년에 작정하고 공식기자회견에서 모 주심의 오심을 조목조목 따졌다. C감독은 벌금을 냈고, 일부 오심이 인정돼 주심도 배정정지 등 내부 징계를 받았다. 화가 난 그 주심은 자신과 친한 후배 프로심판들에게 “C감독 가만 두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판정으로 불이익을 주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니 구단이나 감독이 심판의 잘못된 행동을 공론화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최근 프로축구 K리그가 판정 논란으로 시끄럽다. 해당 판정이 오심이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심판의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기자는 선수와 감독, 팬, 언론이 심판을 믿고 힘을 실어줄 때 심판의 권위도 살고 더 올바르고 깨끗한 판정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심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심판을 못 믿으니 혹시나 우리 팀에 불리한 판정이라도 나오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더 격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제 스플릿A(1∼7위) 잔류여부를 결정하기까지 4경기 남았다. 불꽃 튀는 경쟁이 예상된다. 후반기에도 우승과 강등을 놓고 또 한 번 전쟁이 펼쳐질 것이다. 그 전에 심판들이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몇 년 전 전남 광양에서 1주일 동안 현역심판들과 함께 심판 보수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교육에 참가한 이들의 목표는 하나, K리그 전임심판이 되는 것이었다. 이들은 추운 겨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운동하고 교육 받고 시험을 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까지 열띤 토론을 벌이던 열정적인 눈동자가 기억난다. 이들 중 일부는 프로심판의 꿈을 이뤘다. 이런 사람들이 프로심판이 된 뒤 구단에 자신의 배정을 알리고 감독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 운운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을 흐리는 것은 극히 일부 심판이다.
일어탁수(一魚濁水)라고 했다. 미꾸라지를 잡지 않고 흙탕물이 깨끗해지길 바랄 수는 노릇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