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뭔가 달랐다. 또한 유쾌했다. 그룹 빅뱅에서도 독자적인 캐릭터로 ‘재미’와 ‘망가짐’을 담당하던 그다.
형들의 그늘에서 작은 울타리를 세웠던 막내가 어느새 훌쩍 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멜로디’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기존 솔로 아티스트들과는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했어요. 승리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게 매우 중요했죠. 그리고 마침내 ‘승리만의 멜로디’를 찾았어요.”
승리는 지난 19일 두 번째 솔로 미니앨범 ‘렛츠 토크 어바웃 러브’(Let's talk about love)를 발매했다. 전작 ‘V.V.I.P’ 발매 이후 2년 7개월 만이다.
승리의 변화의 노력과 성장은 앨범 트랙 리스트에서부터 느껴진다. 댄스, 미디엄 템포, 알앤비, 셔플까지 다양한 음악으로 앨범을 꽉꽉 채웠다. 여기에 직접 작사․작곡․프로듀서에 참여하며 자신의 색깔을 음악에 고스란히 입혔다.
승리는 이번 앨범에 수록된 전곡을 작사했으며 최필강, 함승천, 강욱진 작곡가와 곡을 썼다. 또 프로듀싱에도 이름을 올리며 앨범 전체를 진두지휘하며 음악 곳곳에 ‘승리의 이야기’를 배치했다. 승리에게 새 앨범은 ‘도전’이자 ‘자신을 시험하는 새로운 무대’인 셈.
“사실 한 곡도 쓰고 싶지 않았어요. 두려웠거든요. 테디 선배와 지드래곤 형에게 부탁했지만 다들 바빴고 마냥 기다리다가는 앨범이 못 나올 같았죠. 결국 직접 움직여야 했죠.”
승리는 뭔가 지시를 받으면 빨리 끝내야 하는 스타일이다. 양현석 대표의 오더(order)가 떨어졌고 승리는 3개월 만에 앨범을 완성했다. 이에 승리는 “어쩌다가 프로듀싱을 맡아버린 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덕분에 내게도 음악을 만드는 재능이 있다는 것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특히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 멜로디 찾기에 주력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자다가 일어나 노래를 불러도 자연스러운 멜로디”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노력은 1번 트랙인 ‘렛츠 토크 어바웃 러브’에 녹아있다.
두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할 말 있어요’는 빠른 템포의 서정적인 느낌을 지닌 하우스풍 곡으로, 점점 고조되는 비트와 승리의 미성이 특징이다. 앨범에는 ‘할 말 있어요’ 이외에도 ‘유후’와 ‘러브박스’, 선공개곡 ‘지지베’ 등 총 7곡이 수록돼 있다.
그는 앨범을 발표하며 누구보다 빅뱅 멤버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팀의 막내로서 형들에게 창피하지 않은 동생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큰 것은 당연지사.
“빅뱅 멤버들에게 인정받는 게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요. 멤버들은 정말 냉정하거든요. 멤버들은 서로의 노래를 안 듣는 듯 하지만 누구보다 빨리 서로의 음악을 듣고 있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결의에 찬 승리의 이야기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면서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이내 그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고 컴백 첫 방송 후 지드래곤에게 받은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내용은 이러하다.
<첫 방송 봤다. 춤 이상해. 좀 더 묵직했으면 좋겠다. 무대도 기억에 남는 게 더 필요할 것 같아. 의상도 좀 더 맞췄으면 좋겠어. ‘지지베’ 의상은 네 평소 모습 그대로의 느낌이야. 남자인 척하지 마. 쿨해 보이지 않아. 머리도 매우 아이돌 같아. 형이 늘 말하지만 너 나이 들어 보여. 장난삼아 하는 이야기가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 잘 되길 바라는 맘이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네 지인이 하는 말을 잘 듣길 바라. 화이팅이다. 동생아.>
메시지 내용을 보고 나니 승리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이어 그는 기존 솔로 가수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과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목청을 높였다.
“빅뱅 내에서도 다들 멋있는 척을 하잖아요. 실제로 다들 멋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까지 멋지게 하면 밸런스가 안 맞죠. 다섯 명 중 한 명은 즐겁고 유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저죠. 저로 인해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해요. 아티스트로서의 모습과 친근함의 밸런스가 잘 맞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요.”
승리는 지드래곤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그는 “빅뱅으로 활동하며 지드래곤 형의 음악을 듣고 자랐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공부한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승리는 “지드래곤 형이 ‘팬들은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 할 거다’라고 조언해 줘서 가사를 쉽게 쓸 수 있었다”고 했다.
여기에 멜로디는 쓰지만 반주는 다른 작곡가와 협업하는 ‘멜로디 메이커’로 분하며 승리는 대중적이면서도 자신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곡이 탄생시켰다.
“빅뱅 멤버들에게는 한 가지 룰이 있어요. 각자 솔로를 앨범을 내도 ‘빅뱅음악’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거죠. 멤버 모두가 빅뱅의 틀 안에서 개성 있는 음악을 하고 있어요.”
승리의 개성 강한 음악은 자신의 경험담을 살려 만든 곡인 ‘지지베’에도 잘 묻어 있다.
그는 “여자에게 속고 사는 남자가 많다. 요즘 여성들은 ‘가십걸’, ‘섹스앤더시티’를 많이 본다. 여우 같은 여성분들이 많다”며 “‘지지베’는 여우 같은 전 여자친구의 이야기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전 약 6개월간 비밀 연애를 한 전 여자친구가 알고 보니 양다리를 걸쳤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승리는 “난 여자친구에게 내 모든 걸 다 쏟아 붓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마음이 떠났다는 걸 느꼈다. 남자에게도 직감이 있다”며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해주길 기다리더라. 정말 나쁜 지지베다”고 회상했다.
승리의 슬픈 기억은 ‘지지베’ 도입부에 잘 묘사돼 있다. 도입부의 맹렬한 피아노 연주는 승리의 분노 표출이다. 이별 뒤 남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곡 ‘그 딴 거 없어’도 ‘지지베’와 같은 날 만들어 졌다. 감정이입에 충실했던 승리는 두 곡을 하루 만에 완성했다.
그래서였을까. 소속가수의 앨범에 깊이 관여하는 양현석 대표는 이번 승리의 앨범에 방관자 역할을 고수했다. 오직 스케줄과 앨범 프로모션 등을 승리와 의논할 뿐이었다. 이러한 변화에 승리는 “혼나던 과거 시절을 생각하면 울컥할 정도의 큰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가수가 그렇듯 승리도 힘들고 긴 연습생 시절을 겪었다. 8년 차 가수인 그는 최근 데뷔를 앞두고 경쟁에 돌입한 소속사 후배들인 위너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무관심에 대한 압박감은 말로 못하죠. 저는 회사를 들어와 6개월간 ‘야’와 ‘빨간색’(옷)으로 불렸어요. 양현석 대표는 잘하는 아이들에게만 이름을 물어봤거든요. 경쟁은 큰 스트레스였죠. 지금 있는 후배들도 똑같죠. 그래서 전 일부러 모든 회사 연습생의 이름을 다 외웠어요. 친근한 회사 동료이고 싶었거든요. 후배에게 지시하고 잔소리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해요. 그들에게 더없이 좋은 선배이자 ‘힘’이 되고 싶어요.”
이어 후배들에게 진솔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승리는 “대중과 제작자는 아티스트의 스타성과 매력을 원한다. 실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타성을 키워야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크고 작은 일들을 숱하게 겪은 뒤에 지금의 빅뱅이 존재할 수 있었다. 승리는 “빅뱅이 큰 소리를 내며 다투지 않는다”며 “불만이 생기면 대화로 모든 걸 해결해 왔다”고 귀띔했다.
그는 “내 목소리는 빅뱅에서 큰일을 해내는 목소리는 아니다. B 파트나 브릿지 역할이다”며 “자기 포지션을 확실히 알고 역할을 수행하는 게 프로다”고 설명했다. 자신 있게 말하는 승리의 모습은 팀 내 각자의 위치와 조화를 이해한 수준급 팀의 클래스를 증명하고 있었다.
빅뱅은 최근 데뷔 7주년을 맞이했다. 승리는 ‘팀’의 소중함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언젠가 양현석 대표님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당시를 설명하며 ‘당시엔 판단력이 부족했다. 팬들께 큰 잘못을 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빅뱅이란 그룹으로 사랑받는 우리는 절대 빅뱅을 와해시켜선 안 되는 의무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팬들과의 약속이자 의리죠.”
아마도 우리는 빅뱅을 오래오래 곁에 두고 보게 될 것 같다. “롤링스톤스(The Rolling Stones)처럼”이란 승리의 말처럼 말이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