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풀스토리] 두산 주전 3루수 이원석을 만든건 ‘될 때까지’ 정신

입력 2013-10-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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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이원석. 사진|김종원 기자

작년겨울 황병일코치 만나 장타자 변신
그땀이 억울해서 힘든훈련 오기로 견뎌
다음목표? SK 최정잡기…또 될 때까지


#신인 드래프트 날, 아버지가 베란다 창에 이불을 걸어놓는다 했습니다. 그러면 LG인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야구를 하셨던 아버지 이용주 씨는 LG 구단 관계자한테 ‘언질’을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귀가 길에 창을 올려다보니 이불이 없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롯데가 지명을 했답니다. 광주 동성고 졸업생 이원석(사진)은 그렇게 생면부지의 부산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죠. 야구보다 노는 것이 재미있었던 시절입니다. 강민호를 비롯해 손아섭, 전준우, 조정훈, 김민성 등이 당시 멤버였습니다. 그런 생활은 2008년 겨울 돌연 끝났습니다. 두산이 프리에이전트(FA) 홍성흔을 내주고, 보상선수로 이원석을 지명한 것입니다. 처음 두산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을 때는 장난인 줄 알고, 끊어버렸습니다. 당시 동료들끼리 그런 장난전화를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롯데 직원에게 전화를 받으니 현실감이 덮쳤습니다. 그날 1시간 동안 방의 벽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야구를 잘 해야겠다’는 독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3루수와 유격수가 두루 가능한 이원석은 두산에서도 요긴한 전력이었죠. 그러나 3루에선 김동주 윤석민, 유격수에선 김재호 손시헌과의 경쟁이 필연이었죠. 주전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2012년 겨울 황병일 수석코치와의 만남은 이원석의 야구인생의 결정적 순간으로 다가옵니다. 황 코치는 이원석의 단점이 아닌 장점에 집중했습니다. 몸쪽 공 대응이 강한 이원석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장타력을 강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는데, 그 결과 올 시즌 타율 3할(0.314·264타수 83안타)에 두 자릿수 홈런(10개)을 기록했죠. 포스트시즌 들어서도 전 경기 주전입니다.

#사실 손목이 아파서 개막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5월에는 2군까지 떨어졌습니다. 놓아버리고 상무에 가고 싶었습니다. 2군에 내려가선 야구를 잊으려 했죠. 그때 황 코치에게서 “내가 미안하다”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코치님이 뭐가 미안합니까?”라고 말했지만 야구가 다시 하고 싶어졌습니다. 지난해 겨울부터 쏟아냈던 구슬땀(훈련)이 억울해서라도 오기 같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정말 하루도 안 빠지고 했거든요. 1군에 올라와서도 절친 오재일과 경기가 끝나면 매일 개인훈련을 했습니다. 원정 호텔 주차장이든, 어디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배팅 머신과 싸우는 기분으로 될 때까지 한 것 같습니다. 어느덧 경쟁자가 안 보이는 주전 3루수가 됐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최정(SK)에 비하면 멀었다”고 합니다. 최정을 잡기 위해, 또 될 때까지 할 것입니다.

잠실|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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