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구로구청장의 별명은 ‘바보 구청장’이다. 봉사 행사에 참여하면 사진촬영이나 악수 대신 팔을 걷어붙인 채 봉사활동만 하다 온다. 가난한 성장기를 겪었기 때문에 불우한 주민을 돕는 데도 앞장선다. 그래서 ‘그의 행정에는 온기가 흐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사진제공|구로구청
프로축구 경남FC와 강원FC의 경기가 있던 16일 경남 창원시의 창원축구센터. 본 경기에 앞서 열린 오픈경기가 관중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시 구로구 노숙인 축구팀인 ‘디딤돌축구단’과 경상남도 여중 대표팀인 함안대산중과의 이색 대결. 이 경기를 주선한 사람은 디딤돌축구단의 ‘구단주’인 이성(57) 구로구청장이다. 이 구청장은 축구를 통해 노숙인들에게 건강과 자활의지를 되찾게 해주기 위해 2011년 4월26일 전국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노숙인 축구팀을 창단했다. 이성 구청장을 만나 특별한 축구팀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노숙인 축구팀 창단 1년 만에 서울시 우승
지난 16일엔 K리그 무대 오픈경기 주선도
자활의지 생긴 선수들 속속 ‘가족 품으로’
긍정적 변화 덕분에 해체 반대 여론까지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밥 굶기가 일쑤
못 먹어 저체중 판정에 기어이 현역 입대
불우한 이웃에 공감…구로구 희망 전도사
● 노숙인들에게 희망 주려 축구팀 창단
“디딤돌축구단은 주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고자 하는 구로구의 행정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노숙자 선수에게 프로 경기장에서 뛸 기회를 주고 싶어 친분이 있던 경남FC 안종복 대표에게 부탁을 했다.”
이성 구청장의 첫 인상은 푸근한 옆집 아저씨였다. 정치인하면 으레 연상되는 유창한 화술이나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그의 말에서는 온기와 진정성이 묻어났다.
이 구청장의 애정과 헌신으로 탄생한 디딤돌축구단. 창단 초기엔 선수 대부분이 오랜 노숙생활로 인한 체력부족과 무기력증으로 힘들어했다. 하지만 매주 토요일 2시간씩 훈련을 한 결과 몰라보게 달라졌다. 2012년 5월에는 서울시 노숙인 자활체육대회에 참가해 창단 1년만에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더 큰 성과는 선수들이 과거를 털고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올해 사실 축구단의 해체를 고민했다. 축구를 통해 자활의지가 생긴 선수들이 직업을 갖고 가족에게 돌아가면서 구로구 내에서 노숙자를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 덕분에 축구단 해체 반대 여론이 형성됐고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2012 서울시 노숙인 자활 체육대회 축구 결승에서 우승한 ‘디딤돌축구단’(왼쪽)과 ‘디딤돌축구단’ 창단 2주년 행사에서 시축을 하는 이성 구청장(오른쪽). 사진제공|구로구청
● 가난 극복한 구청장, 낮은 곳으로 향하다
이성 구청장에게 노숙인 축구팀에 애정을 쏟는 이유를 물었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다. 하지만 그땐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있다 구청장까지 된 나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요즘은 그런 성공이 쉽지 않다. 그래서 어려운 주민들을 보면 최대한 돕고 싶다.”
이 구청장은 유년 시절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큰 형은 며칠을 굶은 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다 쓰러졌고, 이후 20여년을 병마와 싸우다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이 구청장이 사회취약 계층에 남다른 관심과 정성을 쏟는 것도 이런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불우한 이웃의 고통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대화를 나눌수록 느껴지는 소탈한 면모에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던졌다.
“종종 듣는다. 청소행사에 가면 간단한 인사만하고 종일 청소만 한다. 그래서 ‘정치인이면 주민들과 악수를 해야지, 청소만 하면 어떡하느냐’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든 행정이든 주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생색내기 봉사는 나와 맞지 않다.”
이성 구청장의 따뜻한 성품을 보여주는 일화. 2010년 추석때 갑작스런 ‘물폭탄’으로 구로 시장이 물에 잠겼다. 수해 현장을 방문한 이 구청장은 빗속으로 뛰어들어 눈물을 흘리며 상인들과 함께 하수구를 뚫었다. 동행했던 구청 총무과장은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비통해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한가로이 비를 피하고 있을 수 있냐며 구청장님이 내가 씌워주고 있던 우산을 치우라고 하셨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 전세금 빼 가족 세계여행·처남부부 사고사 후 아들 둘 입양
이성 구청장은 살아온 삶의 궤적도 남달랐다.
가난 때문에 앙상한 체격을 갖고 있던 ‘청년’ 이성이 현역 군복무의 꿈을 이루는 과정은 눈물겹다. 신체검사에서 저체중으로 현역 부적격 판정을 받자 학사장교로 자원했다. 하지만 입영후 받은 신검에서 또 탈락. 그는 광주 광주국군통합병원에서 재검을 받았고 군의관에게 간절하게 호소해 현역 입대에 성공했다.
서울시 시정개혁단장으로 근무하던 2000년 7월, 전세금을 빼 가족과 떠난 1년간의 세계 배낭여행도 관가에 화제가 됐다. 이 구청장은 “오랜 세계여행 꿈이 있었는데 더 미루면 못할 것 같았다. 휴직신청이 안 받아들여지면 사직을 해서라도 떠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이 아들 넷을 둔 ‘아들 부자’가 된 사연도 감동적이다. 그는 처남 부부가 불의의 사고로 모두 사망하자 조카 두 명을 입양했다.
취미와 특기도 남다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적분 등 수학문제를 푼다. 풀이에 집중하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문학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 1999년 월간 ‘문학세계’에 ‘돈바위산의 선물’이라는 에세이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세계평화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바둑도 아마 5단 실력을 자랑하고 작곡에도 능하다.
이성 구로구청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숙인 축구단 선수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축구가 아닌 구청장의 삶에서 희망을 얻었던 게 아닐까. 이 구청장을 오랫동안 지켜봤다는 구로구청 직원의 말이 확신을 굳히게 했다.
“구청장님이 직접 실천하는 정치는 군림하고 다스리는 정치(政治)가 아니라 따뜻한 정을 나누는 ‘정치’(情治)입니다.”
이성 구청장은? ▲1956년 경북 문경 출생 ▲덕수상고-고려대 법학과-미국 텍사스주립대학 행정학 석사 ▲제24회 행정고시 합격(1980)-청와대 행정비서실 행정관(1994)-서울시 시정개혁단장(2000)-구로구 부구청장(2002∼2006)-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장(2008)-서울시 감사관(2009)-구로구청장(2010∼) ▲1999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1999 녹조근정 훈장, 2005 세계평화미술대전 특선, 2010 칭찬합시다 운동중앙회 ‘자랑스러운 칭찬’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ajap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