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박스] 야구보다 더 재미있는 야구 뒷담화…‘기억하라! Remember 1982’ 출간

입력 2013-12-10 18:47:38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원한 야구기자 김수인 씨 야구취재 20년 리포트
묻힐 뻔 했던 프로야구 초창기 에피소드 생생하게



● ‘괴물 투수’ 장명부가 세기의 ‘꼬장’을 부린 까닭은

장명부를 기억하는가.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의 에이스였던 ‘비운의 투수’, 그 장명부 말이다. 시계를 잠시 거꾸로 돌려보자. 때는 1983년. 그는 일본 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에서 한때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은퇴 무렵 삼미 슈퍼스타즈로 이적한다. 그는 그 해 ‘역사에 남을’ 엄청난 일을 해낸다. 시즌 최다 30승(26번이나 완투승을 했다), 최다 연속경기 완투승(8), 최다 완투(36), 최다 선발(40), 최다 이닝(427과 1/3), 최다 타자 상대(1712)등 한국 야구역사상 전무후무할 기록들을 세운다. 그 해는 한국 프로야구는 곧 ‘장명부’였다. 그러나 다음 시즌인 1984년 이후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다. 단일 시즌 최다 15연패와 최다 패배(25), 시즌 최다 실점(175점)으로 역사에 남을 최악의 기록을 세웠다.

도대체 1983년과 1984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늘과 땅 차이였을까. 사연은 이렇다. 1983년 1월 한국에 처음 온 장명부는 상견례에서 허영 구단 사장 등과 식사 후 술자리를 했다. 그곳에서 허 사장은 “30승을 달성하면 1억원 보너스와 연봉 100% 인상”을 약속했다. 당시 1억원이면 현 시세로 10억원 쯤 되는 거액. 그해 장명부는 머릿속에 ‘돈’만 그리며 뼈가 부서지도록 던졌다. 그리고 30승을 달성했다. 그는 시즌이 끝난 뒤 당당하게 1억원을 요구했지만 허 사장은 “술자리의 식언”으로 얼버무렸다. 화가 난 장명부는 그 후 분노를 삭이지 못해 그 후 2년간 최악의 공을 던졌다. 그리고 카지노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졌다.


● 영원한 야구기자가 풀어놓은 야구계 숨겨진 이야기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2년. 프로야구는 한국 프로스포츠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 경기도 재미있지만 선수와 감독 등의 숨겨진 이야기 또한 경기 못지않다. 여기 20년간 800개 가까운 프로야구 경기를 지켜본 전직, 아니 ‘영원한 야구기자’가 그 비화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기억하라! Remember 1982’(김수인 지음 l 바탕 펴냄)라는 책이 그것이다.

저자 김수인 씨는 ‘야구의 도시’ 부산에서 야생야사의 학생시절을 보냈다. 그 후 언론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야구기자로 일했다. 그는 현장을 누비며 간직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설 쓰듯 재미있게, 다큐를 만들 듯 생생하게 책 속에 풀었다. 특히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은 뒷이야기와 자료를 공개해 초창기 프로야구 역사를 살펴보는 데 좋은 사료가 될 듯 하다.

처음으로 공개하는 이야기는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건국 후 체육기자로서 최초의 대통령 관련 특종 비화(김영삼 대통령이 시구하게 된 사연)와 ‘야신’ 김성근 감독의 탄생과 감독 데뷔 이야기, 장명부-이해창이 조폭으로부터 호텔 커피숍에서 벌 받은 이야기 등이다.

또 그가 취재현장을 누비며 만났던 야구인들의 ‘천기’도 누설한다. 이종도 허구연 김동엽 양상문 김응룡 김소식 하일성 박찬호 등 많은 사람들을 그의 빛바랜 취재수첩 속에서 꺼내냈다. 기자생활을 하며 겪었던 특종과 낙종의 이야기는 쭈꾸미볶음 위에 얹는 갖은 양념처럼 매콤하면서도 달달하다. 한국야구위원회 구본능 총재 등 역대 총재와의 다채로운 에피소드, 박찬호에게 100만원자리 밥 사준 이야기, 김응룡 감독과의 떨렸던 첫 만남 등 1980~90년대 ‘야사’들을 읽고 있노라면 책장이 언제 넘어가는 지도 모른다.


● 류현진의 1회 징크스는 왜 생겼는지 아시나요?

영원한 야구마을에 거주하는 저자는 야구에 대한 고언도 잊지 않는다. 감도 코치 포수 선수 구단은 물론 해설위원 캐스터의 잘못된 용어까지 세세하게 ‘빨간펜’을 긋는다. 기자 출신이기 때문일까. ‘야구불황에 대비하라’ ‘응원문화 이대로 좋은가’ 등 야구 붐을 일으키는 아이디어도 반짝반짝 빛난다. 책 말미엔 야구에 대한 궁금증 풀이도 잊지 않았다. 왜 외야수출신 감독들이 성공을 못하는지, 류현진의 1회 징크스는 왜 그런지, 왜 3할 타자를 성공했다고 하는지 등을 문답식으로 풀이했다.

부록에는 역대 한국프로야구 일지를 수록했다. 방대한 KBO 연감을 한곳에 모은 일지에는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노런 무효, 양준혁의 기록실 파손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기록과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검색할 수 있다.


● 40,50대엔 추억을, 20,30대엔 초창기 프로야구 역사가 보인다

이 책은 자칫하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던 기록들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9회말 역전홈런을 보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야구 경기 못지않게 야구책도 재미있다는 것도 깨닫게 한다. 40,50대엔 술자리에서 야구 이야기로 ‘썰’을 풀 때 참 좋은 참고서가 될 듯하고 20,30대에겐 초창기 프로야구 역사를 살펴보는데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오늘 저녁엔 ‘쏘주’ 한 잔에 야구 안주로 건배해 볼까? 응답하라! 1982~2013.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