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높은 선수들은 여전히 없지만 달라졌다. 참담했던 과거도 털어냈다. 끈끈한 조직 배구를 펼치는 여자배구 인삼공사의 행진이 눈길을 끈다. 스포츠동아DB
지난해 20연패 수모 등 총체적 난국
올시즌 단내나는 훈련으로 체질개선
1R 잘나가다 2R 4연패…정신 재무장
흥국생명과 KGC인삼공사의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2라운드가 벌어진 15일 인천 계양체육관. 인삼공사 이성희(46) 감독은 돌부처라도 된 듯 했다. 팀이 득점을 해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실점을 하거나 선수들이 실수를 해도 질책 한 번 안 했다. 경기 중 이따금씩 뭔가를 주문할 뿐이었다. 인삼공사가 3-1 승리를 거둔 뒤에도 이 감독은 무표정했다.
● 내려놓고 비운 뒤…
경기 후 이 감독을 잠시 만났다.
“너무 무기력해 보인다. 무슨 일이 있으신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건 아니에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 감독은 지난 시즌과 올 시즌 1라운드 이야기를 꺼냈다.
인삼공사는 지난 시즌 30경기 중 5번만 이겼다. 작년 11월부터 올 2월까지 20연패를 당했다. 나름 이유는 있었다. 주전 세터 한수지가 수술로 개점 휴업했고, 고참들의 은퇴로 전력이 약화됐다. 설상가상 시즌 도중 외국인 선수도 교체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 감독은 세터 이재은과 센터 이보람을 보강했다. 외국인 선수로는 브라질 출신 조이스가 왔다. 그러나 전력이 크게 상승한 것은 아니었다. 조이스도 다른 외국인 선수에 비하면 탑 클래스가 아니다.
권토중래를 꿈꿨던 인삼공사의 해결책은 훈련이었다. 인삼공사는 입에서 단내 나는 강 훈련을 소화하며 올 시즌을 준비했다. 이 감독은 “우리는 상대 스파이크를 끈질기게 받아 올려서 상대의 범실을 유도하는 플레이로 맞설 수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수비와 체력, 조직력이 필수에요”라고 말했다.
1라운드는 통했다. 인삼공사는 1라운드 5경기에서 세트 당 리시브가 7.88개, 디그가 20.76개로 모두 1위였다. 리시브와 디그 모두 타 팀과 격차가 꽤 났다.
그러나 예상 밖 선전이 독이 됐다. 2라운드에서 4연패로 무너졌다. 이 감독은 “뭔가 되는구나 생각이 들자 나부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선수들도 힘이 들어가고 부담이 생기자 플레이가 꼬였어요”라고 털어놨다. 특히 2라운드 첫 경기였던 현대건설전이 결정타였다. 다 이겨 놓은 게임을 2-3으로 내주면서 작년 연패의 악몽이 찾아왔다. 2라운드 4연패를 당할 때 세트 당 디그가 17.8개로 뚝 떨어졌다.
이 감독부터 바뀌어야 했다. 그는 “스스로 느낀 게 많아요. 초반 성적이 좋으니 조급해졌고, 선수들에게도 이런 것이 전달된 것 같아요. 나부터 여유를 찾자고 다짐 했어요”라고 했다. 돌부처가 된 게 다 이유 있는 변신이었던 것이다. 인삼공사는 2라운드 최종전에서 흥국생명을 누르며 4연패에서 탈출했다.
인삼공사의 3라운드 첫 경기는 21일 현대건설 원정이다. 2라운드 때 뼈아픈 패배를 안긴 바로 그 팀. “선수들 각오가 대단하겠다”고 하자 이 감독이 담담하게 답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니까요. 편하게 하라고 할 겁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