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리반 에르난데스, 완투 밥먹듯…ML 3189이닝 던진 ‘괴물’

입력 2014-0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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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팔’ 투수 리반 에르난데스

1997년 PS 4승 무패…말린스 첫 WS 우승 주역
5년 뒤 2번째 WS 출전 부진…영웅서 역적으로
1998년부터 10년간 9시즌 200이닝 이상 던져


1997년 10월 27일 프로플레이어스타디움에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플로리다 말린스의 월드시리즈 7차전이 열렸다. 0-2로 뒤져 패색이 짙던 말린스는 7회말 보비 보니야의 솔로홈런으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9회말에는 인디언스 마무리 호세 메사를 상대로 1사 1·3루서 크레이그 카운셀의 희생플라이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1924년과 1991년에 이어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통산 3번째로 연장전에 접어든 것. 운명의 연장 11회말. 2사 만루서 에드가 렌테리아의 날카로운 타구가 인디언스 투수 찰스 내기의 글러브에 맞고 굴절되면서 3루주자 카운셀이 홈을 밟았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이 우승하는 새 역사가 만들어졌다. 최우수선수(MVP)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이어 루키 투수 리반 에르난데스의 몫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 망명

에르난데스는 1975년 2월 20일 쿠바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1994년 야구월드컵에서 쿠바의 우승을 이끈 에르난데스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일을 하던 조 쿠바스를 만나 미국 망명을 결심했다. 쿠바를 대표하는 투수였지만, 당시 그의 월급은 6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2년 뒤에는 그보다 열 살 많은 이복형 올란도 에르난데스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쿠바를 떠났다.


● 괴물 루키

1997년 6월부터 메이저리그로 승격된 에르난데스는 최고 96마일(약 155km)의 강속구에 60마일대 초반의 슬로커브를 앞세워 9승3패, 방어율 3.18의 뛰어난 성적을 올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해 92승70패를 기록한 말린스는 와일드카드로 팀 창단 후 첫 플레이오프 진출의 감격을 맛봤다. 디비전시리즈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3전승을 거둔 뒤 정규시즌 101승에 빛나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월드시리즈 진출권을 놓고 대결했다. 1승1패 상황에서 치른 3차전에 구원투수로 나선 에르난데스는 무실점 호투로 상대 선발 존 스몰츠에게 패전을 안기며 승리투수가 됐다. 다시 2승2패 상황에서 맞은 5차전에도 선발로 출격해 그렉 매덕스와 팽팽한 투수전을 펼친 끝에 3안타 1실점의 완투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인디언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1차전과 5차전에 선발 등판해 백전노장 오렐 허샤이저를 상대로 모두 승리를 따냈다. 에르난데스는 1997년 포스트시즌 5경기에서 4승무패, 방어율 3.18로 말린스의 우승을 이끌었다.


● 저니맨

팀 창단 후 첫 우승의 기쁨도 잠시-. 말린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이어세일’을 단행했다. 외야수 모이세스 알루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2선발 앨 라이터는 뉴욕 메츠로 옮겼다. 심지어 에이스 케빈 브라운마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됐다. 이듬해 5월에는 LA 다저스로부터 마이크 피아자와 토드 질을 받는 대신 보니야, 찰스 존슨, 개리 셰필드 등 월드시리즈 우승 주역들을 모두 내줬다.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받던 에르난데스는 파이어세일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주축 선수들이 모두 빠져 나간 탓에 말린스는 1998년 54승(108패)에 그쳤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월드시리즈 디펜딩 챔피언이 이듬해 거둔 최악의 성적이었다. 결국 에르난데스도 1999년 7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며 저니맨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몬트리올 엑스포스(2003∼2004년), 워싱턴 내셔널스(2005∼2006년·2009∼201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06∼2007년), 미네소타 트윈스(2008년), 콜로라도 로키스(2008년), 메츠(2009년), 브레이브스(2012년), 밀워키 브루어스(2012년)를 전전했다.


● 2번째 월드시리즈

자이언츠에서 활약하던 2002년 에르난데스는 12승16패, 방어율 4.38로 부진했지만, 생애 2번째로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오르는 행운을 잡았다. 그러나 5년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3차전에서 3.2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다. 92개의 공을 던져 고작 47개의 스트라이크만 꽂으며 볼넷을 5개나 내줬다. 포스트시즌 9번째 등판에서 기록한 첫 패전이었다. 3승3패로 균형을 이룬 7차전에 다시 선발로 출격했지만, 이번에도 2회까지 4구를 4개나 허용하며 4실점해 패전투수가 됐다. 2경기에서 5.2이닝 동안 9실점(방어율 14.29)으로 무너진 에르난데스는 5년 사이에 월드시리즈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했다.


● 고무팔 투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에르난데스는 3년 연속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졌다. 총 734.2이닝, 평균 244이닝을 소화했다. 2003년에는 8차례, 2004년에는 9차례나 완투를 했다. 2004시즌을 마치고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워싱턴 내셔널스로 바뀌었다. 1971년 이후 처음으로 워싱턴DC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경기에 선발 등판한 에르난데스는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승리투수가 되는 등 에이스로 활약했다. 올스타로 선정된 2004년과 2005년은 에르난데스의 전성기였다. 에르난데스는 1998년부터 10년 동안 9번이나 200이닝 이상을 던졌다. 그나마 1999년에는 아웃카운트 1개가 부족해 200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이었다. 메이저리그 519경기(선발 474게임)에 등판해 총 3189이닝이나 던진 에르난데스는 178승177패, 방어율 4.44를 기록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마운드에 오른 것은 2012년. 브레이브스에서 방출된 후 6월 23일 브루어스와 1년 계약을 맺었지만 이듬해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됐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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