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선 부모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게 돈만은 아니잖아요”

입력 2014-01-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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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기계체조국가대표 양학선은 2012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전북 고창의 비닐하우스 바로 옆의 번듯한 새 집으로 2014년 설 세배를 간다. 그곳에는 가난했어도 마음씀씀이만큼은 누구보다 풍족했던 부모님이 계신다. 양학선이 2012년 추석 스포츠동아 독자들에게 큰 절을 올리던 모습(사진 1). 2012런던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선물로 받은 새 집에 ‘올림픽 영웅 양학선’이라는 플래카드가 자랑스럽게 걸려있는 가운데, 아버지 양관권 씨와 어머니 기숙향 씨가 다정하게 포옹하며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사진 2). 새 집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응원하며 정성껏 접은 종이학과 아들이 그동안 따낸 메달들이 가득하다(사진 3). 고창|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aven7sola

■ 효자 양학선을 키운 위대한 유산


우리가 가진 건 아들이 지어 준 이 집 하나밖에 없어요, 하지만 유산이란 게 돈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선한 마음, 변하지 않는 초심을 물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국민들이 양학선이라고 하면 많이 베푸는 선수, 인성 바른 선수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전북 고창군 공음면…. 2012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그 비닐하우스 근처에 번듯한 집 한 채가 생겼다. 지붕 밑에 걸린 ‘올림픽 영웅 양학선’이라는 플래카드만으로도 누구의 집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2014년 설 연휴를 앞두고 양학선(22·한체대)의 본가를 찾았다. 아버지 양관권(56) 씨와 어머니 기숙향(46) 씨는 “이번 명절엔 우리 아들 얼굴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현재 허리 부상을 앓고 있는 양학선은 재활프로그램을 착실히 이수하고, 22일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2월부터는 다시 기술훈련에 돌입해 2014인천아시안게임을 위한 담금질에 나선다.


체조영웅 양학선 ‘효도의 집’을 가다

붕어가 비단잉어로 변해 점프하는 태몽
20년 지나서야 그 꿈이 뭔지 알게 됐다

학창시절 기초수급자라 무료급식 대상
창피하지 않냐 물으니 되레 부모 위로

명절 함께 보내는 건 고2 때 이후 처음
내 아들 아닌 국가의 아들이다 여기죠


● “집 지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약속 지킨 아들


-아직도 그 자리엔 비닐하우스 집이 있네요.

“(아버지) 사람이 안 사니까 엉망이 됐어요. 쥐가 들락날락하면서 구멍도 다 뚫어놓고….”

“(어머니) 작년 8월에 이 집을 완공했는데, 집 안 지었으면 올 겨울 큰 일 날 뻔했어요. 비닐하우스엔 땅 밑에서 물이 스며들어서 첨벙첨벙했거든요.”


-집 짓는 데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죠?

“(어머니) 집은 성우건설에서 지어주셨고요. 집 안에 가전제품들은 테크노마트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저 소파도 선물로…. 고창군에선 경운기를 한 대 주셨고요.”

“(아버지) 고창군에서 ‘농사 지으려면 뭐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조그만 경운기를 말씀드렸죠. 주변에선 ‘트랙터를 얘기하지 그랬냐’고 하던데, 그럼 안 되죠. 염치가 있어야지.”


-요즘 생활은 좀 어떠세요?

“(어머니) 집 말고는 변한 게 없어요. 여전히 논농사 짓고, 고추밭 농사도 하고, 흑염소랑 개 몇 마리 키우고…. 닭이랑 칠면조도 있었는데 살쾡이가 산에서 내려와서 다 잡아먹었네.”


-집 앞에 연못도 있던데요.

“(아버지) 학선이가 낚시를 좋아하니까.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에 메기랑 붕어 같은 것들을 좀 넣었어요. 그런데 겨울이라 다 얼어버렸네요. 얼음 낚시해야 하나?(웃음)”


-금메달 뒤에 이런 일들이 펼쳐질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아버지) 전혀요. 그냥 금메달 따면 좋은 거라고만 생각했지. 런던 가기 전에 학선이에게 이런 말은 했어요. ‘정부 포상금이 6000만원이라던데, 그럼 아버지 4000만원만 주라. 집이나 좀 짓게.’ 그랬더니 학선이가 ‘제가 지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러더라고요.”

“(어머니)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죠. 특히 LG 구본무 회장님께서 5억원 주시고, 마음으로 우리 학선이를 예뻐해주셔서 감사해요. 가끔 밥도 사주신다고 하더라고요. 한번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데…. 우리가 뭘 해드려야 할지. 없어서 뭐 못 드시는 분도 아닌데….”

양학선이 2012런던올림픽 금메달과 함께 부모님께 선물한 새 집에는 그동안 그가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메달이 가득하다(사진 1). 그중 가장 돋보이는 메달은 역시 런던올림픽 금메달이다(사진 2). 양학선의 아버지 양관권 씨와 어머니 기숙향 씨는 아들의 런던올림픽 금메달 소식을 담은 2012년 여름 스포츠동아 기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사진 3). 고창|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aven7sola



부부가 인터뷰를 하며 아들의 어린시절을 추억하고 있다(사진 4). 인터뷰를 마친 부모님이 손을 흔들어 스포츠동아 취재진을 배웅하고 있다. 그 모습 속에는 설을 앞두고 곧 객지에서 돌아올 아들을 맞는 부모의 설렘이 담겨있는 듯했다(사진 5). 고창|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aven7sola



“학선이는 서운한 것 없다지만 어릴 때 못 먹여 미안해”


● 자식에겐 항상 미안함뿐인 부모 마음


-집에 종이공작품들이 눈에 띄네요. 특히 학이 많네요.

“(아버지) 허리가 안 좋아서 겨울에 집에만 있다보니 심심해서 제가 만든 거예요. 학선이 태몽에도 학이 나왔거든요. 아버지께서 학 두 마리를 주셨는데 죽었던 학이 살아나서 훨훨 날아가더라고. 그래서 이름도 학선(鶴善)이라고 지었죠. 착할 선자 붙여서.”

“(어머니) 저는 태몽에…. 작은 붕어가 헤엄을 치는데 어느 시점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강이 나오는 거예요. 그 때 붕어가 비단잉어로 바뀌더라고요. 비단잉어가 점프를 하니, 사람들이 예쁘다고 다 박수를 쳐주고 난리가 났죠. 20년이 지나서 그 꿈이 뭔지 알았네.(웃음)”


-양학선 선수는 “난 어릴 적에 부모님께 서운한 게 없었는데 매번 ‘미안하다’고 하시니 화가 날 정도”라고 하던데요.

“(아버지) 그래도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못 먹인 게 특히 미안하지. 한번은 아들 손잡고 가는데 어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더라고요. 학선이가 그 모습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 돈이 없으니…. 내가 생전 외상을 안 하는 성격인데, 가게 가서 그랬어요. ‘우리 새끼도 하나 줘요.’ 어릴 때 어른들이 ‘텀블링하고, 재주 넘으면 아이스크림 사줄게’ 하면 계속 하더라니까.”

“(어머니) 어렸을 때는 햄 좋아하잖아요. 그것도 못해주고 매일 김치에다…. 그 땐 참 어려웠거든요.”

“(아버지) 미장일이라는 게 몇 개월씩 임금이 밀리는 일도 있거든요. 가불이라도 받을 수 있는 데서 또 일을 하고…. 그러다 어깨 인대가 끊어졌지. 집에 땔 연탄도 없는데 그렇게 몸이 망가지니, 환장하지.”

“(어머니) 그렇게 살아도 학선이 아버지가 더 어려운 남의 집에 쌀이랑 연탄 넣어주고 오는 사람이에요. 막상 우리 집엔 쌀이 없는데…. 그런 건 학선이가 당신한테 배웠나봐.”

“(아버지) 어릴 때 학선이 데리고 시장에 가면, 불쌍한 분들을 만날 때가 있었어요. ‘1000원짜리 한 장으로 네가 과자를 사 먹을 수 있지만, 밥 굶는 사람도 생각해야 되지 않냐. 어려운 분들 돕는 게 더 중한 일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어요.”


●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게 돈만은 아니잖아요.”


-양학선 선수는 ‘부모님께 겸손과 정직에 대한 인성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 ‘학선아, 벼가 익으면 어떻게 되지? 네가 금메달 땄다고 고개 뻣뻣하게 목에 힘주고, 돈 좀 벌었다고 펑펑 쓰고 그러면 남들 손가락질 한다’, 이런 얘길 많이 하죠.”

“(아버지) 스물 둘인데 한창 뛰어놀고 싶을 거 아니에요. ‘그래도 너는 복이 그것인데 어쩔 것이냐’ 그래요. ‘운동하느라 답답한 일이 있어도 참고 넘어가야 한다’고.”

“(어머니) 부모가 잘 한 것이 아니라, 다 우리 복이죠. 아들들이 어릴 때부터 너무 착했어.”

“(아버지) 부모가 새벽이슬 맞으며 나가서 별 보며 집에 들어오니, 어릴 때는 얼굴을 마주칠 시간 자체가 별로 없었지. 매일 잠자는 모습만 바라보고…. 그 때도 그 어린 것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조그맣게 소리를 줄이고 보고 있더라고. 부모가 피곤한데 잠에서 깰까봐.”

“(어머니) 어렸을 때 학교 급식이 무료였어요. 기초수급자니까. 다른 애들은 다 돈 내고 먹는데, 혹시나 창피하지 않을까 싶어서 학선이에게 물어봤죠. 그랬더니 ‘하나도 창피한 것 없어요. 걱정 마세요’하며 오히려 부모를 위로해주더라고요.”

“(아버지) 큰 놈(양학선의 형 학진 씨) 안에 영감님이 들어앉아있고, 큰 놈이 철이 빨리 드니까 작은 놈도 따라갔지.”(학진 씨는 현재 경기도 고양에서 하사관으로 복무 중이다)


-이번 명절에 양학선 선수가 오랜만에 집에 내려온다면서요?

“(어머니) 29일에 온다더라고요. 고2 때 태릉 들어간 뒤로 명절 때 집에서 며칠 있는 건 처음이에요. 행사 때 가끔 만나도 사인하는 통에 내 아들 얼굴도 잘 못 봐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제는 ‘내 아들 아니고 국가 아들이다’ 생각해야죠.”

“(아버지) 요새 학선이 허리가 안 좋아서 입이 짧아져서 걱정이네요. 살찌면 안 된다고, 집에 오면 그 좋아하는 제육볶음 해줘도 잘 안 먹어요. 이번엔 좀 맛있는 거 먹여야죠.”


-아들에게 어떤 것을 물려주고 싶으세요?

“(어머니) 우린 가진 것이라고는 이 집 하나밖에 없어요. 하지만 유산이라는 게 돈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선한 마음 변하지 않는 초심, 이런 것들을 물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국민들이 양학선이라고 하면 많이 베푸는 선수, 인성이 바른 선수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창|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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