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형’ 유희옥의 성실함 빛을 보다

입력 2014-02-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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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센터 유희옥(14번)이 손가락 부상을 딛고 출전한 12일 GS칼텍스와 경기에서 유효블로킹 7개를 기록하며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스포츠동아DB

■ 기업은행 비장의 카드 유희옥

2008∼2009 신인드래프트 탈락 후 눈물
포기 하지 않고 3년 뒤 신인지명 재도전
블로킹 단점 등 보강…팀 당당한 주전으로

12일 평택에서 벌어진 IBK기업은행과 GS칼텍스 4차전은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리그 우승의 분수령이었다. 승점 50의 선두 기업은행은 승점 40의 2위 GS에 3차례 맞대결을 남겼다. 3차례 맞대결에서 0-3으로 패했던 GS는 12일의 대결이 마지막 기회라고 봤다. 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 부상으로 빠져 있던 센터 유희옥(25)을 호출했다. 그동안 깁스를 했던 유희옥은 진단결과 뼈가 다 붙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볼을 다루는 것을 제외한 모든 훈련에 참가해 왔기에 실전투입이 가능했다. 이틀간 블로킹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제공권 장악이 중요했던 4차전은 기업은행의 완승이었다. 유효블로킹에서 30-20으로 앞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블로킹에서는 2-5로 뒤졌지만 중요한 순간 베띠, 한송이의 공격을 1차로 차단해준 유효블로킹이 있었기에 웃었다. 보이지 않는 수훈선수는 유희옥이었다. 카리나(10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유효블로킹(7개)을 했다. 더 중요한 건 V리그 3시즌 만에 중요한 순간, 감독이 찾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정철 감독이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라고 부르는 선수. 2008∼2009 신인드래프트에 나왔으나 떨어졌다. 프로 동기가 염혜선(현대건설) 황민경(도로공사) 등이다. 수련선수로도 뽑히지 않았다. 드래프트 탈락의 현장에서 유희옥은 펑펑 울었다. 당시 한국배구연맹(KOVO) 전문위원으로 있던 이 감독은 그 장면을 기억했다.

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수원시청과 양산시청을 거쳐 3년 뒤 다시 도전했다. 2011∼2012시즌 신인지명에서 이 감독은 2라운드 1순위로 지명했다. “개인적으로 뽑혀 기쁘지만 떨어진 다른 선수를 생각하니 씁쓸하다. 센터가 약한 팀에 갈 줄 알았는데 뜻밖이다”고 유희옥은 말했다. 이 감독은 “운동신경이 모자랐다. 키가 185cm로 크고 점프력이 좋다는 점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운동하기에 좋은 몸은 아니었다. 팔자걸음을 걷는 선수. 오래 훈련을 하거나 점프가 반복되면 하중을 견디지 못해 피로골절이 오기 쉬웠다. 청소년대회 때는 일본 선수가 그 걸음걸이를 흉내 내다 싸움이 날 뻔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배구를 시작해 다른 선수들보다 센스가 떨어졌다. 블로킹도 문제가 있었다. 주먹을 쥐고 점프했다가 마지막에 손을 펴는 정석에 어긋나는 블로킹을 했다.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가끔 습관이 나온다. 그렇지만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했다. 상대 선수들은 유희옥이 블로킹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가 당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성장했다. 약점을 이기려고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했다. 아무리 늦게 경기가 끝나도 트레이너 실에서 치료를 받고 가는 선수였다. 가지지 못한 기량을 성실과 노력으로 대신하면서 생긴 피로를 꼭 그날 풀면서 다음을 대비했다.

세상은 토끼형 인간도 있지만 거북이형 인간도 있다. 유희옥은 후자였다. 이 감독은 그런 성실성과 거북이 같은 꾸준함을 좋아했다. 배구 밖의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출발은 늦었지만 빠른 것만 강조하는 세상에서 늦은 덕분에 배운 귀중한 것이다. 유희옥은 이제 당당한 팀의 주전으로 또 한 번의 봄 배구를 준비하고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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