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수첩] 류현진, 최악의 패전 오히려 약

입력 2014-04-0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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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류현진. 동아닷컴DB

SF전 8실점 조기 강판…제구 가다듬는 계기로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어쨌든 메이저리그 진출 후 최악의 투구였다. 류현진(27·LA 다저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2014시즌 개막 후 12이닝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던 류현진이 처참히 무너졌다. 5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즌 홈 개막전을 보기 위해 운집한 5만3000여 홈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2이닝 8실점(6자책)으로 시즌 첫 패전을 기록한 류현진의 시즌 방어율은 3.86으로 껑충 치솟았다.

류현진을 아끼는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하루였다. 2회까지 맞은 안타는 무려 8개나 됐다. 고의4구 1개를 포함해 볼넷을 3개 허용했다. 실책 1개를 비롯해 아쉬운 수비도 여러 차례 나왔다. 어느덧 류현진을 6번째 상대한 자이언츠 타자들의 노림수도 좋았다. 이전 등판과는 달리 제구에 자신이 없어 브레이킹볼을 거의 구사를 하지 않자 직구와 체인지업을 집중 공략했다.

역시 안 될 때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법인가보다. 1회초 3점을 내준 후 류현진은 7번타자 브랜든 힉스를 상대로 평범한 내야 뜬공을 유도했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은 2루수 디 고든이 강력한 햇볕에 공을 놓쳐 어디로 향하는지 가늠조차 못했다. 뒤늦게 낙하되는 공을 발견한 1루수 아드리안 곤살레스가 캐치를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공식 기록은 1루수 쪽 2루타. 8번 호아킨 아리아스를 고의4구로 내보낸 후 맞은 만루 위기에서 상대 투수 라이언 보겔송의 빗맞은 타구가 유격수 키를 살짝 넘기는 2타점 적시타로 연결됐다.

2회초에도 선두타자 버스터 포지를 평범한 유격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지나치게 여유를 부린 핸리 라미레스가 원바운드로 공을 던지는 실책을 저질렀다. 2아웃을 잘 잡아낸 후 힉스가 친 큼지막한 타구가 가운데 담장 쪽으로 향했다. 발목 부상을 극복하고 오랜만에 주전 중견수로 출전한 매트 켐프가 워닝트랙까지 쫓아가 점프 캐치를 시도했지만 공은 글러브를 맞고 튕겨져 나왔다. 이닝을 마친 후 라미레스는 류현진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악몽과도 같았던 자이언츠전을 통해 역시 메이저리그가 만만치 않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금 깨우치게 된다면 장기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류현진에게는 약이 될 수 있다. 시속 100마일에 가까운 불같은 강속구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이 아닌 이상 앞으로 상대를 좀 더 철저히 연구하고, 제구를 가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조기강판을 당한 후 기자실에서 만난 한 베테랑 사진 기자는 “류현진은 잘 할 때나 못 할 때나 표정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실점의 위기에서 상대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거나 병살로 요리해도 류현진은 늘 담담한 표정을 짓기 일쑤여서 역동적인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8점이나 허용한 후 덕아웃으로 향하면서 오히려 미소를 짓더라”는 선배의 전언에 류현진의 다음 등판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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