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투수가 던질 곳이 없다…원바운드 볼도 안타 친 ‘괴수’

입력 2014-04-09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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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게레로 선수 페이지. 사진|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 블라디미르 게레로

ML 통산타율 0.318·449홈런·1496타점
11년 연속 3할타·6년 연속 100타점 이상
다저스의 야생마 푸이그와 비슷한 스타일

PS와 올스타전 등 큰 경기서 부진 옥에 티
그래도 LA에인절스 1호 명예의 전당 물망


지난 1일(한국시간) 에인절스타디움에서는 ‘괴수’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블라디미르 게레로(39)의 은퇴식이 열렸다.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 앞서 자신의 현역 시절 등번호 2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게레로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 0.318, 449홈런, 1496타점, 181도루를 기록한 그는 LA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첫 번째 선수로 거론된다. 지난 시즌 ‘야생마’라 불리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LA 다저스의 야시엘 푸이그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했던 게레로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재조명한다.


● 야구 혈통

게레로는 1975년 2월 9일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태어났다. 빅리그 초창기에는 1976년생으로 알려졌지만 나이를 한 살 줄인 사실이 2009년에 드러났다. 그의 친형은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팀 메이트로 뛰었던 윌튼 게레로. 하지만 한 살 많은 윌튼은 동생 블라디미르와는 달리 통산 홈런이 11개에 불과한 교타자였다. 그의 사촌 동생 크리스티안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고, 조카인 가브리엘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팜 시스템에서 유망주로 평가 받고 있다.

190cm의 장신인 게레로는 어린 시절부터 나쁜 볼을 잘 공략하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다저스 트레이닝 캠프에서 돋보이는 선수였다. 한 번은 안타를 치고 2루로 전력질주하다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는데, 바로 다음 타석에서 홈런을 날려버렸다. 다리가 불편해 뛰기 싫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게레로가 계약을 체결한 팀은 몬트리올 엑스포스였다. 3년여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경험한 게레로는 1996년 9월 20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 엑스포스 프랜차이즈 스타

캐나다 몬트리올에 연고를 둔 엑스포스에서 게레로는 타자로서 세울 수 있는 구단 최고 기록들을 대부분 갈아 치웠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비난 세례를 받았다. 1996년 9경기에 출전한 게레로는 루키 시즌인 1997년 타율 0.302, 11홈런, 40타점을 올리며 비난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수비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펼쳤지만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메이저리그 외야수 중 최다 실책 1위에 오르는 불명예도 안았다.

게레로에게 스트라이크존은 큰 의미가 없었다. 긴 팔을 이용해 어지간한 볼을 다 때려내 단 한 시즌도 100개 이상의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 특히 에인절스 소속이던 2009년 8월 1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원정경기에서는 홈플레이트에서 원바운드된 공을 걷어 올려 안타를 만들어내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풀타임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한 1998년 타율 0.324, 38홈런, 109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1999년에는 31연속경기안타 기록을 세우며 생애 최다인 131타점을 올렸다. 2000년에는 생애 최다인 44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2001년부터 2년 연속으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특히 2002년에는 40개의 도루를 성공하고도 홈런 39개로 역사상 네 번째 40-40 가입을 아쉽게 놓쳤지만, 206개의 안타로 내셔널리그 최다안타 1위에 올랐다. 부상으로 2003시즌에는 112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9월 15일 경기에서 사이클링히트도 기록하는 등 타율 0.330, 25홈런, 79타점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 MVP를 거머쥐다

2003시즌을 마친 후 FA(프리에이전트)가 된 게레로를 영입하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하게 히스패닉계인 아르테 모레노가 구단주인 에인절스는 5년 7000만 달러의 조건에 게레로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FA 대박을 터뜨리자마자 게레로는 뛰어난 성적으로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에인절스 구단 신기록인 124득점을 올려 아메리칸리그 득점 1위를 차지했고,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 능력으로 13개의 보살을 기록하며 이 부문 리그 공동 1위에 올랐다. 0.337(리그 3위)의 높은 타율을 기록하면서도 39홈런, 126타점을 쓸어 담았다. 치열한 순위 다툼이 벌어지던 시즌 막판 마이크 소시아 감독은 “게레로 혼자서 팀을 이끌고 간다”는 극찬을 했다. 게레로는 그해 당당히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 전국구 스타

2005년에도 게레로는 타율 0.317, 32홈런, 108타점을 올리며 공포의 타자로 군림했다. 시즌 막판에는 만으로 30세가 되기 전 통산 300홈런을 때린 12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함께 펩시콜라 광고 모델로 출연할 정도였다. 로드리게스와 홈런 대결을 펼치다 하늘 높이 치솟은 공이 달마저 부숴버린다는 코믹한 내용의 이 광고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2009년 대부분 명예의 전당 멤버들로 구성된 ‘최고의 현역 선수’ 투표에서 게레로는 37위에 랭크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든 게레로에게 서서히 쇠퇴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해였다. 잦은 부상으로 100경기 출전에 그친 게레로는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해 처음 타율 3할 달성에 실패(0.295)했다. 홈런(15)과 2루타(16), 장타율(0.794) 모두 최악이었다.

장기계약 마지막 해에 부진을 보인 게레로는 2010년 초 텍사스 레인저스와 1년 550만 달러에 합의했다. 2년째에는 구단에서 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해 게레로는 15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0, 29홈런, 115타점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게레로가 이끈 레인저스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1승4패로 무릎을 꿇었다.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레인저스가 옵션 행사를 하지 않자 게레로는 볼티모어와 1년 계약을 체결하고 또 다시 둥지를 옮겼다. 하지만 게레로는 0.290에 그치며 3할대 타율 달성에 실패했고, 노쇠화로 인해 홈런 13개, 69타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후 마이너리그와 도미니카공화국리그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홈런 1개가 부족해 통산 450홈런을 채우지 못했지만 2590안타를 때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선수로는 훌리오 프랑코(2586안타)를 제치고 가장 많은 안타를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 옥에 티

상대 투수들에게 가장 큰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던 게레로는 큰 경기에서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였다. 게레로는 무려 9번(1999-2002, 2004-2007, 2010)이나 올스타에 뽑혔지만 20타수 5안타(0.250)에 홈런과 타점을 각각 한 개씩 기록하는 데 그쳤다.

포스트시즌도 마찬가지다. 44경기에 출전해 171타수 45안타(0.253)에 홈런 2개와 20타점을 올렸을 뿐이다. 가장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던 경기는 에인절스 시절이던 2009년 10월12일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무리 조너선 파펠본을 상대로 9회 극적인 2타점짜리 적시타를 때려 팀의 7-6 승리를 이끈 것이다. 에인절스가 포스트시즌에서 레드삭스를 처음으로 제압한 시리즈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던 2010년에는 15경기에서 6타점을 올렸지만 홈런 없이 삼진을 무려 16개나 당해 공격의 맥을 끊어 놓았다. 정규시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하면서 레인저스가 이듬해 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 위대한 업적

게레로가 메이저리그에서 남긴 업적은 위대하다. 1997년부터 11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했고, 2003년부터 6년 연속 100타점 이상을 올렸다. MVP로 선정된 2004년 외에도 MVP 투표에서 5차례나 톱10 안에 랭크될 정도로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에인절스 시절에는 지구 라이벌 레인저스를 상대로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레인저스전 44연속경기안타 기록을 수립한 것. 이는 1969년 이후 한 선수가 특정팀을 상대로 기록한 최고 기록이다. 게레로에게 늘 호되게 당하자 레인저스는 2006년 8월에 치른 경기에서 고의4구 3번을 포함해 볼넷을 4개나 주는 것을 불사하며 1타수 무안타로 그의 연속경기안타 기록 행진을 중단시켰다. 게레로는 레인저스전에서 통산 108경기에 출전해 타율 0.395, 출루율 0.461에 25홈런 70타점의 놀라운 기록을 남겨 ‘천적’으로 군림했다.

게레로는 은퇴 후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해 고국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많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고 있다. 콘크리트 블록 공장, 프로판 유통회사, 슈퍼마켓, 현물거래, 채소 농장, 여성복 매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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