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남자일 줄 알았는데, 섬세한 남성미가 있더군요!” (김대우 감독)
“저는 오히려 감독님이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하하.” (송승헌)

배우 송승헌과 감독 김대우,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오해’로 시작됐다. 김대우 감독은 톱배우라 으스댈 줄 알았던 송승헌의 의외의 내성적인 면에 반했고, 송승헌은 거칠 것 같았던 김대우 감독의 섬세함에 빠져들고 말았다. 첫 미팅을 하자마자 그들의 오해는 눈 녹듯이 풀렸고, 서로에게 ‘중독’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의외이긴 했다. 부드럽고 올바른 이미지의 송승헌과 인간의 감춰진 욕망을 파고드는 김대우 감독의 만남이라니. 마치 매운 짬뽕과 흰 우유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김대우 감독은 “내 영화가 파격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성인을 위한 영화인데 ‘파격’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며 송승헌을 캐스팅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주변에서 송승헌이라는 배우에게 강요하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가 변질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제 능력이 닿는 한 송승헌이라는 사람을 그대로를 담고 싶었어요. 자연인 송승헌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런 그와의 첫 만남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여성스럽지만 남성적이기도 한 송승헌의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여성이 바라는 남성미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있었어요.” (김대우 감독)

“‘음란서생’, ‘방자전’ 등 감독님의 전작을 보면, 사람들의 감춰져있는 흑심을 풍자한 작품이 많아요. 그런데 ‘인간중독’은 조금 달랐어요. 그냥 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였어요. 그래서 끌렸고요. 감독님의 섬세함에 반하기도 했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연기의 세심함이 느껴졌고 같이 지내며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됐어요. 이런 분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죠.” (송승헌)

‘인간중독’에서의 송승헌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부하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 김진평의 자상함과 따뜻함은 기존 송승헌의 모습과는 비슷할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사랑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는 그의 모습은 좀 다르다. 작품에서 올바른 사랑만(?) 했던 송승헌 역시 치정멜로는 색다름, 그 자체였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변화를 주고자 거친 캐릭터도 해봤는데 늘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상함’이나 ‘부드러움’이었어요. 절 지켜준 울타리이자 벗어나고픈 곳이었죠. 그래서 ‘인간중독’이 더 끌렸는지 몰라요. 분명 아름답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지 않은 사랑을 하는 남자를 연기한다면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요.” (송승헌)


‘인간중독’은 송승헌과 임지연의 뜨거운 키스장면이 담긴 포스터와 예고편 등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 중 단연 화두는 송승헌의 첫 베드신이었다. 서로를 향한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을 농도 짙은 정사 장면을 연기해야 했던 송승헌은 당연히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벗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부적절한 관계를 아름답게 표현해야 하는 부담감이 더 컸다”고 말했다. 김 감독 역시 베드신 장면에 대해 “정사 장면은 감독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관객에게 두 사람의 사랑의 절실함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전했다.

“고민을 왜 안 했겠어요. 게다가 미혼남녀의 사랑이 아닌 부하의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거잖아요. 도의적으로 보면 ‘불륜’인데…. 두 사람의 관계를 미화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진평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거든요. 그래서 관객들이 보면서 한 남자의 애틋한 사랑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송승헌)

“아마 배우들은 힘들었을 거예요. 노출연기를 결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배우의 결정을 존중해 후회하지 않을 작품을 만들어주는 게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송승헌도 언젠간 늙은 거란 거지. 하하. 나이가 들어 자신의 전작을 보며 ‘나도 화양연화처럼 아름다울 때가 있었지’라며 회상하게 하는 영화가 되면 좋겠어요.” (김대우 감독)

베드신 장면에 관한 말을 하다 김 감독은 갑자기 송승헌의 ‘첫 노출 신고식’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부하 경우진(온주완)과 샤워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던 도중 수영복을 입고 있던 송승헌에게 다 벗으라고 말했던 것.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한 송승헌의 모습을 보며 김 감독은 웃음을 끊이지 못했다고 한다.

“일종의 몰래카메라 같은 거였죠. 촬영 스태프들의 대부분이 ‘방자전’을 같이 찍었던 터라 서로 죽이 잘 맞았죠. 하하.” (김대우 감독)

“베드신 같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을 텐데 생각지도 못하게 누드로 촬영해서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몰라요. 그런데 희한하게 그 촬영 이후 뭔가 홀가분해진 것 같고…. 하하. 제가 연기자로서 그어놨던 선들을 벗어난 느낌이 들었어요. 편하고 가벼웠어요.” (송승헌)

김 감독과 송승헌의 뮤즈였던 임지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남모를 아픔을 지닌 비밀스러운 ‘종가흔’ 역을 맡은 그는 묘한 매력으로 ‘한국의 탕웨이’로 불리며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유명 여배우들도 이 역할을 탐냈지만 김 감독은 송승헌이 절실하게 매달릴 수 있는 여배우를 수색했다.

“송승헌의 의견이 제일 중요했죠. 목숨을 거는 사랑을 할 사람이니까. 그래서 서로 논의한 결과 대중들에게 신비롭고 때 묻지 않은 사람을 찾자고 했어요. 송승헌에겐 신의 한 수였을 거예요. 신인 배우와 호흡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제 생각과 같아서 큰 힘이 됐죠.” (김대우 감독)

‘방자전’에서 춘향이 역으로 활약한 조여정 역시 ‘인간중독’에 합류했다. 2010년 이후 김대우 감독과 재회한 조여정의 역은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 캐릭터 ‘숙진’. ‘방자전’으로 조여정의 연기변신을 성공적으로 이끈 김대우 감독은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그의 모습을 스크린에 담고 싶었다”고 계기를 밝혔다.

“조여정 씨가 ‘방자전’을 하고 나서 짓궂은 댓글이 많이 달리더라고요. 댓글을 보며 괴로워하는 여배우를 보니 저도 마음이 좋지 않죠. 원래 댓글을 잘 보지 않는데 조여정 씨 기사 관련한 댓글을 다 봤어요. 그냥 읽는 저도 고통스러운데 당사자는 오죽했을까요. 그래서 제 작품을 통해서 조여정의 다른 면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그저 몸매가 좋은 배우가 아닌 재능 있는 배우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다들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김대우 감독)

“저도 조여정 씨에게 선입견이 있었죠. 깍쟁이일 것 같았는데 성격이 밝고 털털하더라고요. 현장분위기 메이커였다고나 할까. 여자로서 정말 매력 있는 것 같아요.” (송승헌)

‘인간중독’으로 자신의 평생의 화두인 ‘사랑’에 대해 표현한 김 감독, 목말랐던 연기의 갈증을 해소한 송승헌. 이제 그들의 손을 떠나는 멜로 ‘인간중독’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할까.

“사랑이란 그 사람이 없으면 견딜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으로 사랑에 대한 궁극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관객들도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제공|호호호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