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승헌, 청춘스타에서 배우로 옷 갈아 입기까지

입력 2014-06-04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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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터닝포인트가 있다. 좋은 기회를 얻거나, 힘든 시기를 겪거나, 크고 작은 문제들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올해로 연예계에 데뷔한 지 18년이 된 송승헌(38)에게 영화 ‘인간중독’(감독 김대우)이 터닝포인트다. 1996년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연기자가 된 그는 훤칠한 키와 외모로 청춘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송승헌은 드라마와 영화를 막론하고 주연자리를 꿰찼다.

송승헌은 활동을 시작한 후 쉬지 않고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볐다. ‘가을동화’(2000), ‘여름향기’(2003), ‘에덴의 동쪽’(2008), ‘마이 프린세스’(2011), ‘닥터 진’(2012), ‘남자가 사랑할 때’ (2013), 영화 ‘무적자’(2010) 등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물론 대표작도 있다. 시청률 40%를 차지한 드라마 ‘가을동화’와 대상을 거머쥐게 한 ‘에덴의 동쪽’ 등은 송승헌을 톱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늘 뭔가 부족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는 언제나 ‘스타’였지만 ‘배우’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느 정도 인정하며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연기자 생활을 계속 해야할지 고민했어요. 갑작스럽게 데뷔를 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내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됐죠. 20대에 접한 연기는 제게 일이었어요. 그래서 책임감도 없었고요.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죠. 가야할 길이 맞는지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어요. 말은 늘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아 대중 앞에서도 떳떳하지 못했고 제 자신에게도 부끄러웠죠.”

그랬던 그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사업을 시작한 후였다. 연기를 놓지 않으면서 레스토랑 사업을 병행한 그는 에너지가 쓸데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우의 길도 제대로 못가면서 사업을 하겠다고 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을 했죠. 내가 잘 할 수 있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뭘까. 결국 가장 오랜 시간 길을 걸어온 연기더군요. 그래서 하나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죠.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기로요.”

말을 이어가던 중 그는 배우 차인표가 과거 했던 말을 회상하며 당시는 몰랐던 선배들의 조언을 알 것 같다며 깨닫게 된 배우의 길을 설명했다.

“‘그대 그리고 나’의 차인표 선배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었어요. 당시 신드롬 열풍을 일으켰던 선배는 제게 ‘승헌아, 스포트라이트에 휩쓸리면 안돼. 거기에 휩쓸리면 정말 ‘반짝’하고 사라지게 된다’고 조언을 해주셨죠. 그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그땐 어딜 가나 환영받았으니까요. 시간이 흐르고 나니 선배님의 말이 이해가 되더군요. 진짜 스타는 10~20년 후에나 만들어진다는 걸요. 10년 후에도 연기를 하고 있으면 그게 스타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남아있는 자가 강한 자라는 걸 깨달았죠.”

그는 “이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영역을 구축하고 나이를 먹으며 색깔을 내는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배우로서 삶을 살아가기로 했기에 한층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찾은 작품은 ‘인간중독’이다. ‘인간중독’은 1969년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군 관사 안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파격적인 사랑이야기다. 송승헌은 부하(온주완)의 부인 종가흔(임지연)을 사랑하는 김진평 역을 맡았다. 특히 농밀한 베드신 때문에 더 주목받았다. 하지만 정작 송승헌은 스크린서 보인 베드신은 약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약해요. 약해. 지금보다 강렬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많이 편집이 됐더라고요. 감독님은 이 영화가 단순한 불륜영화가 안 되길 바라셨어요. 베드신 장면 비중이 크면 치정극으로 끝나버리지 않았을까. 물론 진평과 가흔(임지연)의 관계는 분명 불륜이지만 서로에게 첫사랑이기도 하니까요. 관객들이 두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영화관에서 나오는 관객들이 마음 아파하고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영화 속 이들은 서로에게 운명과도 같은 존재다. 첫 만남에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안 되는 줄 알지만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영화 속에서만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송승헌 역시 이런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했다. 아직 그는 ‘운명’을 믿는 듯 했다.

“저는 제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면 내일이라도 결혼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죠. 신중해야하고요. 영화에서처럼 결혼했는데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면 안 되잖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이라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지인 결혼식에 갔는데 북적대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비슷하고…. 그런 걸 보면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지죠. 바닷가에서 둘이서만 결혼할거라는 농담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요. 결혼은 나와 그녀의 만남이 아닌, 가족들의 만남이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면 결혼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결혼과 달리 연기에 대한 생각은 확고해졌다. 사실 그는 인터뷰 내내 “나를 내려놓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연기자가 되고자 하는 결심을 하고 나니 한층 여유가 생겼고 일희일비하지 않게 됐다. 송승헌은 그 시기에 ‘인간중독’을 만난 것이다.

“‘인간중독’은 저에게 의미가 굉장히 커요. 제가 이 작품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관계자들 사이에 돌면서부터는 제안 들어오는 작품도 달라졌어요. 예전엔 캐릭터 범위가 좁았죠. 애초에 제안을 안 주셨던 거예요. 저는 많은 작품에 관심이 있었지만 관계자들은 ‘송승헌은 그런 거 안 할 걸?’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제 의지를 알아봐주니 기뻐요.”

배우로서 갈 길을 찾은 송승헌은 연기에 대한 욕구에 불타올랐다. 마음가짐만큼은 어느 신예보다 더 열정적이다. 게다가 마음의 안정을 찾은 그는 이제 뭐든지 뛰어들 자신이 됐다.

“20대 때는 모든 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폐쇄적이었고, 예민했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정해진 틀 안에 누군가가 뛰어 들어오면 저도 모르게 밀어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예전에는 타협을 잘 못하다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이왕이면 유하게 살자는 주의죠. 또 그렇게 살다보니 결과는 제게 좋게 돌아오더라고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둥글둥글하게 변하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도전은 이제 시작입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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