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제를 위하여’ 이민기 “억눌렀던 욕망, 모두 터트렸죠”

입력 2014-06-24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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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 남자들의 욕망, 정답도 없고 공허함까지 느껴지는 이환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배우 이민기(29)는 언젠가부터 고민에 빠졌다. 예기치 못한 일이어서 더 당황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욕망’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 그 즈음에 만난 것이 ‘황제를 위하여’(감독 박상준)다. 시나리오를 보던 그는 쾌재를 불렀다.

“스스로 욕망이 없는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억누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작년에 제게 정말 좋은 일들이 많았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스트레스 받고 우울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제게도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인생의 목표지점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은 좀 더 가야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행복’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닌데 말이죠.”

이민기는 자신을 닮은 듯한 ‘이환’에게 자석처럼 끌렸다. 그동안 역할을 맡으면서 따라왔던 ‘왜’라는 질문도 버렸다. 그는 캐릭터에 자신의 몸을 맡긴 채 춤췄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이민기는 “영화 ‘10억’을 촬영했을 땐 늘 ‘왜?’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지금은 그 때보다 나이가 들었는지 이환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며 “나약해서 욕망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이환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극 중 표현한 욕망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소유욕’이었다. 이태임과의 파격적인 베드신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전신노출에 장시간 이어진 촬영이었음에도 그는 고민하지 않았다. 감정선을 따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담도 느끼지 않으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부담스러워도 말하지 않았다. 여배우가 더 큰 부담을 느낄까봐 염려되서다.

“첫 베드신은 시간이 오래 걸려 몸이 좀 힘들었어요. 두 번째는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베드신은 시작 단계부터 끝까지 신중했어요. 누가 봐도 필요한 장면이어야 했고, 관객들의 고개가 끄덕여지게 하는 장면이어야 했거든요. 또 여배우가 상처받지 않게 조심했어요. 그걸 알았는지 (이)태임이도 열심히 잘 해주더라고요. 보통 이런 느와르에는 순애보 같은 남자들이 많잖아요. 비열한 이야기에 판타지를 심어놓은 거죠. 그럴 바엔 베드신을 넣지 말자고 했어요. 이환에게 연수는 사랑보단 일종의 소유욕의 결과물이고 아킬레스건이 되죠. 그 여자로 인해 칼질도 하고 욕망도 따라가게 되잖아요. 베드신도 아름답지 않죠. 아마 여성관객들이 보시기엔 불편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민기에겐 이태임보다 더 환상적인 궁합이 있었으니 바로 박성웅이다. 박성웅은 승부 조작에 연루돼 끝난 듯한 이환의 인생에 산소 호흡기를 대준 정상하 역을 맡았다. 극중에서도 피를 나눈듯한 형제애를 보여준 두 사람은 카메라 앵글 밖에서도 남부러운 애정을 드러냈다. 제작보고회나 시사회에서도 “서로 없으면 외로웠다”며 닭살스런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띠동갑인데 마음만큼은 ‘띠’를 뺀 ‘동갑’으로. 하하. 박성웅 선배는 뭐 말할 게 있을까요. 후배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 그 만큼 선배가 잘해주셨다는 거죠. 선배를 보면서 나도 후배가 생기면 잘해주겠다 마음먹었죠. 아 근데, (여)진구는 그렇게 생각하려나? 하하. ‘내 심장을 쏴라’ 촬영 중인데 잘해줘야겠네요. 하하. 박성웅 선배 첫인상이요? 처음에는 ‘아 석 달 동안 피곤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형이 인상과는 다르게 애교도 있고 매력이 넘쳐요. 게다가 진짜 썰렁하거든요. 정말 안 웃겨요. 근데 어느 샌가 형 개그에 저도 웃게 돼요. 매력에 퐁당 빠져버렸죠.”


올해로 30대로 접어든 이민기. 그의 전작인 ‘몬스터’, ‘연애의 온도’, ‘오싹한 연애’, ‘10억’ 등을 보면 장르를 막론하고 또래 배우와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로맨틱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슬프지도 않은, 게다가 뭔가 독특한 소재의 작품을 해오고 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너무 뻔한 것은 싫단다. 같은 이야기여도 뻔하게 풀지 않은 그런 작품에 유난히 끌리는 것 같다고 했다.

“ ‘연애의 온도’ 같은 경우도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이 아니잖아요. 치고받고 싸우고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잘 뽑으면 공감할 것 같았어요. 결국 결과물도 좋았고 평가도 좋았죠. 저는 현재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작품이 주어져야 할 수 있고 주어진 작품으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은데…. 음, 20대에 남긴 영화를 생각하면 풋풋해요. 할 수 있는 장르가 많지 않았을 텐데 꾸준히 장르의 변화도 가져온 것 같고요.”

최근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멘트’(The Moment)와 ‘행복의 추구’를 읽은 이민기는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는 글이 마음에 들어온 것 같다. PC방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안 찍었더라면, 친구들이 그 사진을 인터넷에 안 올렸더라면, 나는 아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앞으로 우연을 가장한 필연에 대해 최선을 다하겠다 다짐했다.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하고 연기를 하겠지만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은 작품과 인연이 됐으면 좋겠어요.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배우 이민기로서 바라는 희망입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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