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 기자의 브라질 리포트] 변방전락 한국 축구, 진짜 위기 온다

입력 2014-06-28 06:4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축구국가대표팀. 동아일보DB

2000년대 들어 ‘월드컵 무승’은 이번이 처음
아시아 동반 부진, 월드컵 출전수 축소 논의 일 듯
K리그 사랑이 한국 축구 부활의 원동력 될 것


한국 축구는 다시 한 번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2014브라질월드컵은 너무나 쓰디쓴 생채기만을 남겼죠. 온갖 굴욕만 뒤집어쓰고 말았네요.

27일(한국시간) 아레나 데 상파울루는 정말 잔인한 곳이었습니다. 축구대표팀 ‘홍명보호’는 10명이 뛴 벨기에를 상대로 0-1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1무2패(승점 1)로 H조 꼴찌. 이 가운데 3득점을 했고 6실점을 내줬습니다. 희망의 빛이 전혀 안 보였던 건 아니었죠. 전반 44분 상대 미드필더 스테번 드푸르가 우리 공격수 김신욱의 발목을 의도적으로 밟으면서 퇴장당했습니다. 한국은 수적 우위라는 큰 기회를 얻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전까지만 해도 잘 풀리던 홍명보호의 공격은 다시 한 번 제자리걸음을 하고 말았습니다. 공격 횟수도, 슛 시도도 많았지만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안일했을까요? 2000년대 들어 한국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차범근 감독(SBS해설위원)의 전격 경질까지 이어진 1998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한국은 굴욕을 당하고 말았네요. 2002년 4강 신화를 써내려가고 2006년은 사상 첫 원정 1승을 땄고,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는 사상 첫 원정 16강 위업을 일궜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유독 긴 여운을 남긴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침통하고 쓰린 가슴을 쥐며 찾아간 아레나 데 상파울루의 기자회견장.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기자가 제게 불쑥 질문을 하네요. “2002년 이후 한국이 이렇게 못한 건 처음이다. 그동안 왜 발전이 없었나? 홍명보 감독이 12년 전 한국 대표팀의 주장으로 뛰지 않았나?”

솔직히 불쾌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렇다면 방글라데시는 어째서 아예 월드컵에도 못 나가느냐”고 반문하며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죠. 저라도 그렇게 묻고 싶었을 테니까요. 대신 제가 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나도 모른다. 나중에 (홍명보) 감독이 기자회견에 나오면 직접 물어보라.” 물론 그 기자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묻진 못했습니다. 벌겋게 얼굴이 상기된 채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던 홍 감독을 보며 자신도 마음이 안 좋다더군요. 같은 아시아 사람으로, 또 아시아 축구 팬으로서 말이죠.

물론 브라질월드컵에서 굴욕을 맛본 건 비단 한국만은 아닙니다. 일본도, 이란도, 호주도 일찌감치 짐을 꾸려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분명 실망스러운 상황이죠. 4.5장 주어진 월드컵 본선 출전권 축소도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 같습니다. 반대할 명분도 없고요.

결국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거죠. 이제는 머뭇거리고 안주할 시간이 없습니다. 대표팀 전력을 강화하기 위한 모든 방편을 준비해야겠죠. 굳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한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이 훨씬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4년 뒤 러시아에서도 이번과 같은 악몽이 반복된다면 그 때는 정말 암흑기가 도래하겠죠.

대신 1998년 그 때 그랬던 것처럼 K리그에 대한 팬 여러분들의 사랑이 절실합니다. 유럽 리거들이 대표팀의 핵심이었음은 틀림없지만 손흥민(레버쿠젠)만이 유일하게 돋보였을 뿐 대부분 죽을 쒔고, 이번 월드컵에서 희망을 안긴 건 이근호(상주상무)와 김신욱(울산현대) 등 K리그 멤버들이었으니까요. 비록 우리의 월드컵은 끝났지만 축구가 끝난 건 아니잖아요.

상파울루(브라질)|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