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드림팀, 우승-패배 롤러코스터… 자긍심·동기부여가 일냈다

입력 2014-07-30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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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 시드니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완투승을 거둔 구대성이 포수 홍성흔을 껴안고 있다. 2.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드림팀이 태극기를 앞세워 사직구장을 돌고 있다. 3. 참사를 경험한 2006 도하아시안게임드림팀. 나쁜 결과에 경기를 지켜보는 선수들의 표정도 어둡다. 스포츠동아DB

■ 역대 드림팀, 왜 성공했고 실패했나

2014 인천아시안게임 야구드림팀이 최종 확정됐다. 한국야구가 드림팀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때부터다. 이후 7번의 드림팀이 만들어졌다. 야구는 1996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됐다. 아시안게임은 1992년 히로시마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이다. 한국야구 역대 드림팀의 성공과 좌절을 되돌아봤다.

병역특례 동기부여가 1998·2010 AG 우승 밑거름
김경문 매직 2008 베이징올림픽 9전전승 완벽한 금
안일함과 준비부족 2006 도하AG 대만·일본에 연패


● 병역 미필자로 꾸려졌던 완벽했던 1998년 드림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대한야구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가 마음을 모았다. 아마추어야구가 처음으로 프로선수들에게 문을 열었다. 대표선수는 아마추어 10명 프로출신 10명과 해외파 2명의 조합이었다. 박찬호(LA 다저스)와 서재응(뉴욕 메츠)이 멤버였다. 프로에서는 30-30을 달성한 박재홍이 있었다. 김병현은 성균관대 선수였다. 선수 모두가 군 미필자여서 목표가 확실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제주 오라구장에서 2주간 훈련을 했다.

한국은 대만 일본과 1그룹에서 예선 더블리그를 했다. 한국은 대만을 16-5(7회 콜드게임), 5-4로 물리쳤고 일본은 13-8, 9-2로 이기고 1그룹 1위를 했다. 준결승전에서 중국을 9-2로 이기고 결승전에 올랐다. 상대는 일본. 박찬호가 7이닝 1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6전 전승. 13-1 7회 콜드게임으로 역대 한일전 사상 가장 압도적인 승리를 했다. 성공 이유는 절실함이었다.


● 카지노 파문으로 시끄러웠지만 동메달로 기사회생한 2000년 드림팀


2000 시드니올림픽에 프로선수들을 출전시켰다. 사령탑도 프로출신으로 구성했다. 23명의 대표 가운데 아마추어는 경희대 정대현이 유일했다. 최종 연습경기 도중 송지만이 부상을 당해 동국대 박한이가 엔트리의 행운을 잡았다.

악전고투했다. 1차전 이탈리아에 10-2로 이겼지만 2차전에서 호주에 3-5로 역전패했다. 주전포수 박경완의 부상으로 피해가 컸다. 그날 밤 대표선수들이 카지노에 출입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초상집 분위기였다. 쿠바에 5-6, 미국에 0-4로 지며 3연패. 남은 3경기에서 1패만 하면 예선 탈락하는 위기에서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경기했다.

박석진의 호투로 네덜란드에 2-0 승리. 일본전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이승엽이 1회 2점홈런을 뽑는 등 접전 끝에 7-6으로 이겼다. 미국과의 준결승전에서 정대현이 기막힌 호투를 했지만 9회 끝내기홈런을 맞고 2-3으로 졌다. 운명의 동메달 결정전은 한일전이었다. 구대성과 마쓰자카의 선발대결이 이어졌다. 8회 이승엽의 결승2타점 2루타와 김동주의 적시타로 한국의 3-0 승리. 구대성은 9이닝을 5안타 11탈삼진으로 막으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두 번 다시 이런 대회에 안 나간다”고 했던 김응룡 감독은 체면치레를 했다. 카지노 파문 뒤 팬들의 비난을 걱정했던 선수들이 위기에서 마음을 모은 것이 성공의 이유였다.


● 한일월드컵 4강 후 폭풍을 이겨낸 2002년 드림팀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선 해외파를 빼고 프로의 최고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 사령탑은 김인식 감독. 대만은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투수들을 불러들였다. 일본은 프로 1.5군과 2∼3년차 선수, 사회인야구 선수들을 혼합했다.

한국은 예선 4경기에서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중국 8-0 대만 7-0 필리핀 15-0(7회 콜드게임) 일본 9-0. 준결승전 상대는 중국. 선취점을 내주고 고전했으나 7-2로 역전승했다. 결승전 상대는 대만. 한국은 1-2로 뒤진 4회 1사 1·2루에서 김종국의 적시타로 동점, 계속된 1사 만루에서 장성호의 밀어내기 4구, 이승엽 타구 때 폭투로 4점째를 뽑았다. 박명환∼이승호∼임창용∼송진우가 이어 던지며 대만을 3점으로 막았다. 김인식 감독의 인화와 프로야구의 위기를 실감한 선수들의 분발이 만든 우승이었다.


● 대참사를 불렀던 2006년 드림팀의 준비부족

병역특혜에만 신경을 쓰는 구단 이기주의와 ‘설마’했던 코칭스태프의 안일함이 결국 2006 도하아시안게임의 대참사를 만들어냈다. 국내파로만 팀을 꾸렸다. 군미필자 위주였다. 구대성 김동주 홍성흔이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을 고사했다. 김재박 감독은 “공격력보다 투수력이 문제”라고 했다. 첫 경기 상대는 해외파가 총출동한 대만. 사실상 금메달 결정전이었다. 대만은 LA 다저스에서 뛰는 궈홍즈가 선발. 한국은 손민한이 나섰다. 한국은 4회 손민한이 마이너리그 출신 천롱지에게 홈런을 맞았고 린즈성에게 적시타를 허용해 0-2. 4회 이진영의 적시타로 한 점을 만회했지만 손민한이 5회 셰자시엔에게 홈런을 맞았다. 8회에는 천롱지에게 또 홈런을 맞으며 2-4로 졌다. 금메달이 날아갔다.

기가 꺾인 한국은 사회인야구 출신으로만 구성한 일본에게도 7-10으로 졌다. 다승왕 류현진이 선발등판했고 이대호의 3점홈런 등으로 4-0으로 앞섰다. 그러나 류현진은 3회 2점홈런 포함 5실점했다. 4회 이혜천이 또 2점홈런을 맞은 뒤 7-7까지 간신히 따라붙었지만 9회말 1사 2루에서 박기혁이 평범한 유격수플라이를 놓친 뒤 오승환이 초노 히사오시에게 끝내기 3점홈런을 맞았다. 대표팀 유니폼을 가볍게 봤던 결과치고는 너무 뼈아팠다.


● 세대교체에 성공한 2008년 드림팀 김경문 매직으로 금메달을 걸다

2008 베이징올림픽 드림팀은 김경문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팀이었다. 이승엽이 자발적으로 출전했다. 류현진 깅광현 장원삼 이종욱 이용규로 세대교체를 했다. 잘해야 동메달을 예상했던 대표팀은 기적을 만들었다. 한국은 예선 7경기를 전승했다. 미국 8-7, 중국 1-0, 캐나다 1-0, 일본 5-3, 대만 9-8, 쿠바 7-4. 네덜란드전은 10-0으로 이겼다. 미국전은 총력전이었다. 9회 3점을 내주며 6-7로 역전 당했지만 9회말 대타 이택근의 2루땅볼과 이종욱의 희생플라이로 이겼다. 중국전은 0-0에서 승부치기까지 갔다. 연장 11회 이승엽의 적시타로 경기를 끝냈다. 캐나다전은 류현진의 완봉역투가 결정적이었다. 일본전은 7회 이대호의 2점홈런으로 2-2를 이룬 가운데 9회 승패가 갈렸다. 2사 1·2루에서 일본의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감독은 왼손 대타 김현수를 투입했다. 김현수가 적시타를 쳤고 이종욱의 기습번트, 상대 포수 아베 신노스케의 송구실책으로 3점을 뽑으며 이겼다.

준결승전 상대는 또 일본. 상대선발로 왼손 스기우치 도시야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도 김경문 감독은 1∼4번에 왼손타자를 투입했다. 한국은 2-2에서 8회 부진하던 이승엽의 2점홈런 등으로 일본을 6-2로 침몰시켰다. 이와세를 상대로 홈런을 친 이승엽은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렸다. 호시노 감독은 선발 김광현(8이닝 2실점)을 찾아와 악수를 했다.

한국야구 100여년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기억될 경기가 2008년 8월 23일 우카송 구장에서 벌어졌다. 쿠바와의 결승전. 류현진을 선발로 내세운 한국은 3-2 감격적인 승리를 따냈다. 이승엽이 1회 2점홈런으로 분위기를 잡았지만 9회 역전 당할 뻔했다. 3-2로 쫓긴 1사 만루에서 포수 강민호가 퇴장 당했다. 김경문 감독은 불펜의 진갑용으로 교체한 뒤 진갑용의 건의를 받아들여 정대현을 마운드에 올렸다. 정대현은 구리엘을 볼카운트 2S-0B에서 유격수 병살로 금메달을 확정했다. 9전전승의 완벽한 우승이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보여준 김경문 감독의 선수기용과 교체는 상식을 뛰어넘었다. 행운이라고 했지만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감독의 관찰이 만든 성공이었다.


● 잘해야 본전이었던 2010년 드림팀 본전 이상을 하다

2006년 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 2008년 올림픽 금메달 등으로 야구팬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사령탑인 조범현 감독의 부담이 컸다. 해외파는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김태균(지바 롯데)이었다. 2010시즌 타격 7관왕 이대호와 에이스 류현진이 주축이었다. 원투펀치 가운데 하나였던 김광현이 대표소집 당일 신체이상을 이유로 빠졌다. 임태훈이 대신 들어갔다. 한국은 예선에서 대만을 6-1, 홍콩을 15-0, 파키스탄을 17-0으로 이겼다. 대만전에서 류현진이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준결승에서 중국을 7-1로 누른 한국은 대만과의 결승전도 9-3으로 이겼다. 류현진∼윤석민이 대만을 3실점으로 막아냈다. 추신수의 2차례 적시타 이대호, 강정호의 홈런으로 승리를 확인했다. 대표팀합류 마지막 기회를 잡은 추신수는 8안타 3홈런 11타점으로 군면제 혜택을 받았다. 시상식 때 눈물을 보였던 추신수의 절박함이 우승의 이유였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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