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그것이 사극이다

입력 2014-09-11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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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해적:바다로 간 산적’-‘군도:민란의 시대’(왼쪽부터). 사진제공|빅스톤픽쳐스·하리마오픽쳐스·영화사월광

■ 영화 제작자 10인이 본 사극 열풍

‘명량’ ‘해적’ ‘군도’ 3000만 관객 동원
개봉 앞둔 영화만 5편…사극 전성시대

상업성 좇다 역사왜곡 함정 빠질 수도
높은 제작비도 신인감독에겐 진입장벽


3011만명. 올해 7∼8월 개봉한 ‘명량’ ‘해적:바다로 간 산적’ ‘군도:민란의 시대’가 모은 총 관객수다. 단순 평균치로 나누면 한 편당 1000만명을 동원한 셈이다. 불과 두 달 사이에 나타난 이 같은 수치는 최근 각광받는 사극영화의 인기를 짐작게 한다. 실제로 4월 개봉한 ‘역린’을 포함해 10일 현재까지 올해 한국영화 흥행 톱10 중 네 편의 사극이 상위권에 올라 있다.

최근 5년간 흥행 성적을 살펴봐도 사극영화의 인기는 두드러진다. 지난해 ‘관상’(931만명),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1231만명)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90만명), 2011년 ‘최종병기 활’(747만명)과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478만명) 등이 크게 성공했다.

영화 제작자 10인에게 이 같은 사극영화의 인기 ‘이유’를 물었다. 표현의 차이는 있었지만 생각은 대부분 비슷했다. 이들의 설명은 사극이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 왜 인기인가

“오락성을 갖춘 볼거리가 많다.”(심재명 명필름 대표) “상상력을 펼치는 이야기가 가능하다.”(이유진 영화사 집 대표) “더욱 드라마틱한 소재를 시도할 수 있다.”(오승현 타이거픽쳐스 대표)

제작자들은 ‘규모’와 ‘이야기’를 사극의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최근 개봉한 사극의 제작비 규모는 대부분 100억원대에 이른다. 시대상을 구현하는 세트와 의상, 소품 등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전투 장면도 많아 제작비는 더 오르지만 이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볼거리’로 이어진다. 1700만 흥행 신기록을 세운 ‘명량’이 대표적이다.

이야기의 힘도 사극이 주목받는 이유다. 나경찬 인벤트스톤 대표는 “현대극보다 역사관, 정치관을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다”고 했다. 안동규 두타연 대표는 “관객이 경험하지 못한 판타지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고 사극의 강점을 꼽았다.

이 밖에도 “과거 이야기를 선호하는 동양문화권에서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르”(임승용 용필름 대표), “컴퓨터그래픽 등 기술 발전에 힘입은 높은 완성도”(신범수 영화사 수박 대표) 등도 거론됐다.


● 왜 신인감독은 없나

최근 사극은 늘어나지만 유독 신인감독에겐 연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기도 한다. 최근 5년간 사극 중 신인감독의 연출작은 ‘역린’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재규 감독 역시 앞서 ‘다모’ 등 TV 사극을 연출한 점을 고려하면 신인으로 분류하긴 어렵다.

제작자들은 신인감독의 사극 연출이 어려운 이유로 ‘높은 제작비’를 첫손에 꼽았다. 김무령 반짝반짝영화사 대표는 “제작비의 문제”라며 “제작 규모를 고려할 때 비교적 많은 경험과 연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승현 대표는 “사극은 순제작비 50억원 이상이 기본”이라며 “제작비 규모가 큰 사극을 신인감독에게 맡길 투자사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경험이 적은 신인으로선 현장을 유연하게 이끌기 어렵다는 제작자들의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 사극, 이것만은 피하자

사극영화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개봉을 앞둔 사극은 ‘사도’ ‘도리화가’ ‘상의원’ 등 다섯편, 기획 중인 사극은 더 많다. 물론 모두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순 없다. 오히려 그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그렇다면 사극이 지양해야 할 것들은 뭘까. 의견은 다양했다. 심재명 대표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영화적 해석에는 깊이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상업적인 성공에 치중하다 자칫 과도한 역사 왜곡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터무니없는 퓨전사극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대로 “고증에 너무 집착하면 사극 특유의 자유로운 표현이 사라진다”(임성원 동물의 왕국 대표)는 의견도 있었다.

대작 사극영화의 흥행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았다. 안동규 대표는 “사극으로 현실을 은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고, 나경찬 대표는 “작은 규모의 사극도 늘어나야 한다”며 사극의 대작 편중화를 지적했다.


● 설문 참여 제작자 10인(가나다순)

김무령(반짝반짝영화사), 나경찬(인벤트스톤), 신범수(영화사 수박), 심재명(명필름), 안동규(두타연), 오승현(타이거픽쳐스), 이유진(영화사 집), 임성원(동물의왕국), 임승용(용필름), 주필호(주피터필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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