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프로 우승을 꿈꾸는 전북 현대의 대표 룸메이트 김기희(왼쪽)와 이재성이 5일 전북 완주군 봉동에 있는 전북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사커토크를 진행했다. 완주|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이재성 “전북 좋은 선수도 많아…곁에서 듣고 느끼고 부딪히며 습득”
김기희 “딱 4분 뛰고 병역 혜택 받았지만 그런 평가에 더욱 자극받아”
“어제 한숨도 못 잤다니까. 어찌나 코를 골아대는지.”
“누가 물 떠오라고 시키래요? 엉덩이가 그리 무거워? 휴대폰 속 그 여자는 또 누구?”
사랑이 식어가는 부부의 모습처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실 시커먼 남정네들의 대화다.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정상을 앞둔 전북현대의 앞선과 뒷선을 책임지는 ‘무서운 신인’ 이재성(22)과 ‘행운의 사나이’ 김기희(25)는 한 방을 쓰는 룸메이트이자 ‘절친’ 선·후배다. 함께 생활한지도 1년이 다 돼 간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심지어 각자의 생활도 낱낱이 꿰고 있다. 5일 전북 완주군 봉동의 전북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3살 터울의 둘은 보자마자 쉴 새 없이 토닥거리며 남다른 ‘정(情)’을 과시했다. 유쾌하고 상쾌했던 대화록을 공개한다.
● 우승
김기희(이하 김) : (우승이 조금씩 보이고 있는데) ‘아직 우리가 여기까지 왔구나’란 생각은 잘 들지 않네. 넌 느낌이 오냐?
이재성(이하 이) : 세리머니를 하고, 직접 우승 트로피를 봐야 실감날 것 같아요. 참, 만약 우리가 우승한다면 형은 축제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을까요?
김 : 나 없어도 기쁘게 트로피 품에 안아라.
김기희는 24일 기초 군사훈련을 위해 잠시 육군 훈련소에 입소해야 한다. 전북이 8일 제주 원정에서 승점 3을 따 우승을 조기 확정해도 10일부터 19일까지 A매치 기간이라 호주 수비수 윌킨슨 등이 불참하게 돼 우승 세리머니에 선수단 전부가 함께 하기 어렵다. 전북은 우승 세리머니 날짜를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진 상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원정 우승시, 구단과 협의를 거쳐 다음 홈경기 때 우승 행사를 연다’고 규정했다. 전북은 15일 포항, 30일 울산과 안방 경기를 펼친다.
이 : 많은 형님들이 우승은 정말 어렵다던데, 이 자리까지 온 전 굉장히 행운아죠.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김 : 나도 시민구단(대구)에 있었잖아. 정말 우승은 어려워. 과정과 노력에 운까지 더해져야 가능해. 물론 타이틀은 따는 것 못지않게 지키는 것도 어려울 테고.
● 전북 & 최강희
이 : 전북에 입단하며 많이 뛸 거란 기대는 안 했어요. 속으로 생각한 목표는 있었는데,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몰랐죠. 하다보니 여유와 자신감이 생겼고요. 하긴, 룸메이트가 잘 컨트롤해서 그래요(이재성은 스쿼드 두터운 전북에서 확실히 자리잡아 22경기에 나가 4골 3도움을 올렸다).
김 : 대체 내게 왜 그러냐. 우린 쉽게 흔들리지 않잖아. 고참부터 막내까지 정말 끈끈하고. 시즌 전반기에 약간의 위기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형님들이 붙잡아줬지.
이 : 전북이 좋은 선수도 많고, 경험도 풍부한데 이를 곁에서 듣고 느끼고 부딪히며 습득을 할 수 있었죠. 전북은 명실상부 K리그 최강이죠.
김 : 나도 흔들릴 때마다 형들이 위축되지 않게끔 해줬어. 전북에 맞는 선수가 되려고 정말 많은 노력도 했고. 그보단 감독님과 코치 선생님들이 툭 던진 한 마디에 큰 위안을 얻었지.
이 : (최강희) 감독님이 제가 데뷔를 앞두고 떨고 있을 때, “누구나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해주셨어요. 특별할 것도 없는 이 말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입단한지 몇 개월이 지나서야 따로 해주신 말이니까요.
김 : 나도 첫 미팅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거의 2개월 간 한 마디도 안 하시더라. 작년 7월 전북에서 첫 경기를 했을 때도 포지션도 달랐어. 수비형 미드필더였는데, 슬쩍 하신 말씀이 ‘무조건 편안하게 볼만 걷어내라’였다. 그래도 어떻게 볼만 걷어내겠니. 잘하려다 실수 연발하고 그랬지(최강희 감독은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지낼 때 김기희를 선발했고, A매치에 데뷔시켰다. 출전을 앞둔 그에게 스승은 딱 한 마디를 했다. ‘넌 행운의 남자가 아니다. 실력이 밑거름이 됐다. 책임감 있게 태극전사답게 뛰어라!’).
● 메달리스트
이 : 그나저나 형도, 저도 메달리스트네요. 어떤 것이 가치가 클까요? 당연히 28년 만의 금메달을 딴 2014인천아시안게임이겠죠?
김 :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역사에 길이 남을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이지. 딱 4분을 뛰고 병역 혜택을 받게 됐지만 그런 평가에 더욱 자극받는 것도 사실이야.
이 : 형이 저와 함께 아시안게임 엔트리 발표를 함께 지켜봐줬던 그날이 기억나요. 마치 자신의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좋아해주던.
김 : 그래서 아시안게임 금메달 따고 전화 한 통 안했냐? 문자메시지에 답도 안 하고. 네가 하긴 그렇지 뭘.
이 : 그 때 축하해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 확인이 좀 늦었죠. 또 그날 어깨를 다쳤잖아요.
김 : 우리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 병역 혜택을 입었잖아. 정말 하늘의 도움이 컸지.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마지막까지 제대로 뛰자고. 알았지?
완주|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