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 교체실패가 만든 박준혁 PK쇼

입력 2014-11-24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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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박준혁(노란 팬츠)을 비롯한 성남 선수들이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A컵 결승에서 서울을 꺾고 우승한 뒤 서포터스 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성남 선수들은 ‘지난달 22일 서울 선수들이 결승 상대로 성남이 확정된 뒤 쾌재를 불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더 분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성남 라커룸에는 ‘니네 접 때 버스서 비웃었다며? 오늘은 질질 짜게 해줄게 ㅋㅋㅋ’ 라는 글귀가 붙었다. 상암|임민환 기자 minani84@donga.com 트위터 @minana84

성남, 연장후반 ‘전담 PK’ 교체시기 놓쳐
독기 품은 박준혁 두차례 선방…FA컵 MVP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FC서울-성남FC의 ‘2014 하나은행 FA컵’ 결승에선 전·후반과 연장까지 120분간 골이 터지지 않았다. 연장 종료를 알리는 김종혁 주심의 휘슬이 울렸을 때만 해도 서울이 유리해 보였다. 서울 벤치는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연장 후반 13분 골키퍼를 김용대(35)에서 유상훈(25)으로 바꿨지만, 성남은 타이밍을 놓쳤다.

계획대로라면 성남 골문도 박준혁(27) 대신 전상욱(35)이 맡아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파울 때나 볼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갔을 때나 선수 교체가 가능한데, 서울은 성남의 골키퍼 교체를 막기 위해 영리하게 볼을 돌렸다. 연장전 도중 성남 응원석 한쪽에서 몸을 풀던 전상욱은 대기심과 함께 교체를 기다리다 벤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성남 코칭스태프가 할 수 있는 일은 박준혁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뿐이었다. 전상욱도 다가가 박준혁에게 상대 키커들의 버릇과 동작을 알려주는 원포인트 레슨을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은 박준혁에게 달려있었다.

성남은 지난달 22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전북현대와의 FA컵 4강전 때도 승부차기 5-4 승리를 거뒀는데, 당시에도 교체 타이밍을 힘겹게 잡아 연장 후반 14분에야 박준혁을 빼고 전상욱을 투입할 수 있었다. 어찌됐든 이 결정은 ‘신의 한수’가 돼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챔피언 전북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사상 초유의 골키퍼 교체 실패가 성남에 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로 나타났다. 박준혁은 침착하게 서울 용병 2명의 킥을 막아냈다. 첫 번째 키커 오스마르와 3번째 키커 몰리나가 찬 볼을 모두 걷어냈다. 반면 서울 골키퍼 유상훈은 단 1개도 막지 못했다. 성남은 정선호-제파로프-임채민-김동섭이 모두 성공시켜 4-2 승리로 통산 3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상금 300만 원이 주어진 대회 최우수선수(MVP)도 박준혁의 몫이었다.

이날 박준혁은 사실 롤러코스터를 탔다. 몇 차례 선방도 펼쳤지만 불안정한 볼 키핑과 부정확한 킥으로 동료들을 불안하게 했다. 특히 전반 22분 문전 한복판에서 수비수와 사인이 맞지 않아 서울 에스쿠데로에게 볼을 빼앗긴 뒤 간신히 태클로 저지한 장면은 성남 김학범 감독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간 박준혁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경기 리드도 제대로 못해 부담스러웠다”며 “어젯밤(22일) (전)상욱이 형이 서울 오스마르의 킥을 열심히 분석해 알려줬다. FA컵 우승이 우리가 클래식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암|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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