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kt는 마지막 기회의 땅”

입력 2014-12-04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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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스포츠동아DB

특별지명 kt행…조범현 감독과 재회
“무서운 신생팀 되도록 열심히 뛸 것”

2009년 4월 20일. LG에서 트레이드된 김상현(사진)이 KIA 홈구장인 무등경기장에 도착했다. 그는 무려 9년 동안 1∼2군을 오갔던 타자였다. 서른의 나이. 장타력은 뛰어나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평가와 수비에 물음표가 따라다녔던 타자. 조범현 감독은 그에게 “삼진 100개를 당해도 좋다. 마음대로 휘둘러라”고 딱 한마디만 했다. 수비파트 코칭스태프에게는 실책을 해도 절대 야단치지 말라는 지시도 했다. 황병일 타격코치는 단점보다 장점을 더 칭찬했다. 프로에서 처음 느낀 ‘누군가 날 믿고 있다’는 마음. 그해 김상현은 홈런 36개에 127타점을 올렸다. 믿음의 힘이 컸다.

그리고 5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4년 11월 28일. 제10구단 kt가 9명의 특별지명 선수를 발표했다. SK는 한 해 전 송은범까지 내주고 영입한 김상현을 20인 보호선수에서 제외했다.

외국인타자시대가 다시 시작되며 작아진 역할, 그리고 긴 슬럼프. 그러나 kt는 김상현의 투혼을 기대하며 특별지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한번의 믿음. 그 믿음 뒤엔 조범현 감독이 있었다.

김상현은 휴대전화를 들어 조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길게 울리고 받지 않았다. 5분후 조 감독이 전화를 걸어왔다. “감독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예상 밖이었다. “왜 전화했어?”, “아, 그게 kt에 지명이 됐다고 연락받았습니다. 당연히 먼저 인사드려야죠!” ‘그래 잘 해보자’는 덕담을 기대했지만 조 감독의 이어진 답은 충격적이었다. “어, 연락 안 받았어? 취소했어. SK에서 다른 선수를 지명하기로 했어. 그래서 취소했는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취소될 수도 있는 거였나?’라는 생각 뿐. 잠시 후 수화기 넘어 조 감독은 “농담이다. 상현아 아픈데 없지?”라며 웃었다. 그제야 김상현도 함께 웃으며 자세한 안부를 물었다.

김상현은 “원래 농담으로 긴장을 잘 풀어주시는 분인데 잠시 정말 믿었다. 머리가 멍해졌다”고 웃으며 “SK에서 기대만큼 하지 못해 많은 분들께 죄송했다. 선수로 20인 보호선수에 들지 못했다는 것은 스스로 반성해야 할 점이 많은 것 같다. kt는 마지막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한다”며 “2009년에 좋은 성적을 올린 후 가장 기뻤던 점은 2군에서 오랜 시간 머문 선수도 언젠가 할 수 있다는 것, 그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야구는 공도 둥글고 배트도 둥글다. 그동안 느꼈던 많은 것을 kt의 젊은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상현은 2010년 무릎수술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011년에는 팀을 위해 포지션을 3루수에서 외야수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올해 단 42경기에 출장했지만 홈런 5개에 20타점을 올렸다. 아직 장타력은 녹슬지 않았다. 강한 어깨도 그대로다. kt가 기대하는 것은 30대 후반에 다시 부활한 이승엽(삼성) 같은 투혼이다. 그 바탕에는 평범했던 2군 선수를 리그 최고의 타자로 변신시켰던 믿음이라는 힘이 있다. 김상현은 “부상과 부진으로 그동안 너무 많이 쉬었다. 쉰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겠다. 무서운 신생팀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뛰겠다”고 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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