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갑’ 방송사와 ‘을’ 톱스타 그리고 ‘병’ 제작자

입력 2014-12-11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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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에 치이고 돈에 울고… 제작자 고난의 시대

스타에 치이고 돈에 밀려 눈물짓는 제작자가 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의 구분도 없다. 공통된 고통이고 출구 없는 암흑이다. 제작자는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기획, 제작해 대중 앞에 내놓는 과정의 책임자. 하지만 갈수록 커지는 스타 파워와 팽창하는 한류시장 이면의 ‘기형적 시스템’ 탓에 제작자가 겪는 고통은 상당하다. 탄탄한 기획력을 지닌 제작자가 사라지면 제2의 ‘별에서 온 그대’나 ‘명량’ 같은 콘텐츠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 제작자들이 처한 위기, 그것은 콘텐츠의 위기이기도 하다.


방송사는 톱스타 캐스팅 우선시
톱스타는 이미지·출연료 우선시
한정적 예산 속 제작자만 ‘고생’


‘기획→제작→방송→손실?’

악 순환의 연속이다. 좀처럼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않는 시청률에 몸값 높은 스타를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잦은 마찰 등으로 드라마 제작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출라치면 어느새 제작비가 초과된다. 제작자가 겪는 삼중고다.

드 라마는 편성 권한을 쥔 방송사와 주인공을 맡을 톱스타, 그리고 실제 제작에 나서는 외주제작사의 협업으로 이뤄진다. 제작사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의 시간을 투자한다. 기획PD와 작가가 드라마 뼈대(시놉시스)를 만들고 캐릭터에 어울리는 주연 라인업을 구성해 방송사에 편성을 제의한다.

‘별에서 온 그대’ 제작사인 HB엔터테인먼트의 윤현보 본부장은 “지상파 방송 편성이라는 높은 벽을 넘는 것이 1차 목표”라면서 “하지만 기획력이나 작가 등이 좋다고 해도 무엇보다 시청률을 보장할 수 있는 스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드라마 편성의 1차 조건으로 방송사가 톱스타를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톱스타급 연기자는 콧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제작사는 방송사보다 더 까다로운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출연료를 기본으로 이미지와 파급력, 해외 진출 가능성 등을 고려해 출연을 결정하는 스타들에게 모든 조건을 맞춰줄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같은 요구를 들어주다보면 어느새 제작비는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외주제작사가 방송사로부터 받는 드라마 제작비는 회당 2∼3억원. 이를 포함한 회당 평균 3억∼4억원선에 달하는 총 제작비를 충당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연기자 출연료가 제작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탓에 제작사는 제작지원이나 간접광고, 해외 판권 판매 등을 통해 부족한 비용을 메울 수밖에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방송사의 입장과 흥행 요건 등을 따져보고 스타급 연기자를 확정해 편성을 받았다 해도 촬영 직전 캐스팅이 무산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 MBC ‘킬미힐미’가 현빈, 이승기 등이 출연을 고사하면서 제작 위기에 몰릴 뻔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작사는 결국 회당 수천만원의 적자를 내는 구조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관계자는 “방송사가 A급 작가와 배우를 원하니 어쩔 수 없다. 흥행 드라마를 만들고도 수익을 거둘 수 없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제작사는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갑’(방송사)과 ‘을’(톱스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병’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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