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배우’ 이문식 “‘구타유발자’ 카타르시스 다시 느끼고 싶다” [인터뷰]

입력 2014-12-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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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고전 연극 ‘유리동물원’의 주인공 톰의 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가볍게 예를 들기 위해 시작한 갑작스러운 연기였음에도 그의 표정과 대사에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박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린 이문식이란 배우를 아직 너무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연기는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다. 나만의 연기를 보여주면 저절로 필요로 하고 찾게 돼 있다”

이문식, 사진|DB


드라마를 꾸준히 봐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근 2년 동안 이문식은 말 그대로 숨 가쁘게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가장 최근 종영한 MBC ‘미스터백’은 물론이고 이에 앞서 JTBC ‘유나의 거리’에 출연했으며, MBC ‘기황후’, SBS ‘대풍수’ 등에 연속적으로 출연했고, 더욱이 ‘유나의 거리’와 ‘기황후’는 50부작이었다.

이문식 본인 역시 “작품 4개에 2년이 그냥 지나갔다”라며 “작품이 끝나고 한두 달 쉬다가 다음 작품 들어가고 하면 좋겠지만 스케줄 그렇게 딱 맞지가 않는다. 작품이 있을 때 하다 보니 그렇다”라고 특유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쉴 틈 없는 작품 활동에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미스터백’하는 동안에는 (신)하균이 앞에서는 힘들다는 말도 못한다”라며 “사실 5일 동안 드라마 140분 분량을 촬영한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다. 특히 주인공은 거의 잠을 못자니 촬영하는 동안 늙어 가는 게 보일 정도다. 하균이 뿐만 아니라 장나라도 마찬가지”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이문식은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촬영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라며 “카메라가 돌 때 춥거나 힘든지도 모르겠고, 존재감과 살아있음을 느낀다”라고 천생 배우임을 알렸다.

올해 그가 출연한 ‘기황후’와 ‘유나의 거리’, ‘미스터백’ 모두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이중 ‘미스터백’은 영화 ‘간첩 리철진’ 이후 신하균과 무려 15년 만에 만난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신하균과의 호흡에 대해서 이문식은 “예전에 같이 연극을 해봐서 호흡이 잘 맞았다”라며 “상황에 대해서 같이 공유하고 만들어 갈 수가 있다.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볼거리가 풍성해진다”라고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움을 드러냈다.

이문식이 밝힌 ‘미스터백’ 촬영 에피소드 중 또 한 가지 눈길을 끈 일은 함께 촬영하기 전까지 최대한 역으로 출연한 이준이 아이돌이란 걸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실제 TV를 보지 않는 이문식은 “처음에는 그냥 신인 배우인줄 알았다”라며 “그렇게 유명한 가수인지 나중에서야 알았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이문식이 본 이준의 연기는 어땠을까. 그의 대답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준뿐 만이 아니라 최근 아이돌이 곧잘 연기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이문식은 “요즘 아이들이 연기를 시켜놓으면 금방 금방 잘하는 편이다”라며 “예전에는 어려서부터 ‘이래야 해’라고 강요당하는 부분이 많아 연기를 하기 전에 이를 깨트려야 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처음 하는 연기도 거침없이 잘 한다.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그런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그는 “대신에 한(恨)이 없으니까 깊이가 떨어진다. 그렇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 한을 키워나가면 좋은 연기자가 될 재능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다”라고 이들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여기서 드는 또 한 가지 궁금증은 ‘연기돌’이 늘어나면서 연기자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비판에 대한 것으로 이문식은 “배우는 연기를 잘하면 된다”였다.

이문식은 “가수가 와서 연기를 하더라도 잘하면 되는 거다. 단순히 영역이 줄어든다고 하는 건 근시안적인 태도고, 연기자는 모든 사람이 경쟁상대고 모든 사람이 조력자이다”라며 “연기는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다. 나만의 연기를 보여주면 저절로 필요로 하고 찾게 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물론 와서 못하면 문제다. 그런데 또 요즘 시청자들 눈이 높아져서 못하면 쓸 수도 없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용감한 가족’ 합류…‘가족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이문식, 사진|CJ E&M


‘미스터백’이 끝나고 연기활동은 잠시 휴식에 들어가지만 그사이 이문식은 새로운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용감한 가족’이 그것으로, 이문식이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용감한 가족’에 대해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낸 이문식은 “가상의 가족을 이룬 6명이 캄보디아의 빈집을 찾아가 사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가족’이라는 게 의미가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나름대로 화려하게 살던 6명이 전기가 들어올지도 알 수 없는 환경과 문화적 차이에서 겪는 힘든 점이 있을 것이다”라며 “거기서 가족이라는 의미와 재미를 찾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이문식은 “내가 합류한 이유도 가족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는데, 결과물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라며 “아무래도 예능이다 보니 제작진은 재미도 찾아야한다. 그렇다고 차별성이 없으면 식상할 수 있다. 가족의 의미라는 부분이 (차별성의)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예측했다.

현재 ‘용감한 가족’에 출연이 확정된 멤버는 이문식을 비롯해 심혜진, 박명수, 최정원, 강민혁, 설현 등으로, 이문식은 심혜진과 부부사이로 출연하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이문식과 심혜진이 과거 단 한번 같은 작품에 출연한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이문식은 “사실 같이 출연했다라고 하기도 힘든 수준”이라며 “한석규, 심혜진이 주연을 맡은 영화 ‘초록물고기(1997년作)’에서 한석규에게 시비를 거는 불량배 3인방이 있는데 그중 한명이 나다”라고 밝혔다.

특히 이문식은 “(심혜진을)부인이라고 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연기라면 괜찮겠지만 이건 연기도 아니고 쭈뼛쭈뼛하고 어색한 게 있다”라며 “리얼이다 보니 이게 어렵다. 하지만 빨리 극복해야한다”라고 첫 예능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구타유발자’의 카타르시스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이문식, 사진|김종학프로덕션


배우 이문식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코믹’ 이미지이다.

이는 ‘이문식’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영화 ‘공공의 적’의 임팩트가 워낙에 컸기 때문으로, 이후 대중들은 무조건반사식으로 그에게 코믹연기를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이문식이 즐겨보는 작품들은 대부분이 스릴러로, 막상 코미디는 잘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배우다보니까 사실은 아쉽다. 사람들이 ‘이문식이 나오면 재밌겠다’라는 기대를 하고 본다. 변신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조연으로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면 실망을 하게된다”라며 “이문식이 나와서 폼 잡고 있는데, 주연이 아니면 그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문식이 나왔으니 재밌어질 거야’ 하다가 영화가 끝나면 보는 사람 입장에선 실망을 할 수도 있다”라고 코믹이미지로 인한 고충을 밝혔다.

이어 “‘구타유발자’가 흥행적으로는 잘 안됐지만 재미있었다. 그때 카타르시스는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라며 “사기꾼은 사기꾼처럼 안 생겼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인데 살인범이라든가 반전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맡는다면 의미 있을 것 같다”라고 연기 욕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문식은 곧 “근데 잘 안 시켜준다”라고 덧붙여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이것이 ‘공공의 적’으로 인한 이미지가 싫거나 폐가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문식은 “(배우로서)한 작품이라도 어떤 사람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의미있는 일이다”라며 “그것이 피해가 됐다고 하면 행복에 겨운 비명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또 다른 강렬한 모습으로 극복해내야 하는 거다”라고 배우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인터뷰 말미 2015년을 소원에 대해 묻자 그는 곧 “배우로서는 가보지 않은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내적으로 충실할 수 있는 해가 됐으면 한다”라며 “움켜쥐고 가져오려고 했던 것을 밖으로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회에 환원을 시켜야겠다. 더불어 같이 살 수 있는 것을 다짐하는데 잘 안 된다”라고 멋쩍게 웃었다.

이야기가 좀 더 길어지자 이문식은 배우가 아닌 한 명의 국민으로서의 소원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되새겨 볼만큼 충분이 의미심장하고 또 강렬했다.

“한 외국 잡지에서 서울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를 이뤄냈지만 그 안에 사람들은 어디로 갈지 모르고 움직이고만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고 하더라. 정말 바쁘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사회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 같다. 점점 멋있는 사람이 없어지고, 옛날에는 저러지 말아야 한다고 하던 말이나 행동이 지금은 통용되고 있다. 사회가 건강해 졌으면 좋겠다”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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