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캡처 | 대전 오월드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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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 장은지 기자] “늑구 밥 땅에 주지 마세요.”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했다가 열흘 만에 돌아온 늑대 ‘늑구’의 안위를 염려하는 이른바 ‘늑구맘’의 등장이다. 에버랜드 푸바오, 일본 원숭이 펀치에서 이번엔 늑구로 ‘셀럽 애니멀’(셀럽니멀)의 계보가 이어지며, 디지털 공간을 중심으로 새로운 ‘돌봄 문화’가 형성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늑구는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한국 늑대로, 푸바오가 떠난 빈자리를 대전의 ‘탈주 늑대’ 늑구가 채우는 인상이다. 단순한 동물 탈출 소동으로 끝날 뻔했던 사건이 열흘간의 극적인 생존기와 귀환 서사를 만나며, 전국적인 팬덤을 거느린 ‘셀럽 애니멀’ 신드롬으로 번지고 있다. 대전 오월드 인스타그램에서 공개한 늑구의 ‘생고기 먹방’ 영상은 조회수 150만 뷰를 기록하는 등 이례적인 폭등세를 연출했다. 해당 계정의 기존 쇼츠(짧은 영상) 조회수는 1만 회를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늑구의 랜선 이모, 삼촌을 자처하는 이른바 ‘늑구맘’의 ‘치맛바람’ 역시 이러한 신드롬을 방증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늑구 밥을 왜 땅바닥에 그냥 주느냐”, “사육장 환경을 더 쾌적하게 바꿔라” 등 구체적인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팬덤 형성의 전조는 수색 과정부터 감지됐다. 온라인에선 늑구의 이동 경로와 수색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늑구맵’이 등장했고, 그의 안위를 걱정하며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시민들의 제보가 속출했다. 늑구 사태를 모티브로 한 코인이 생성되는 기현상이 펼쳐지기도 했다. 기술적 가치보다 커뮤니티의 관심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이 ‘밈코인’의 등장은 늑구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IP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지역사회 역시 빠르게 반응 중이다. 21일 이장우 대전시장은 도시를 대표하는 마스코트 ‘꿈씨 패밀리’에 늑구를 신규 캐릭터로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전시의 한 빵집 또한 늑구 얼굴을 본뜬 빵을 판매 했고, 대형 전자제품 판매장 외벽 전광판에는 ‘늑구야 돌아와 줘서 고마워’라는 문구가 걸리기도 했다.

사진캡처 | 대전 오월드 SNS

사진캡처 | 대전 오월드 SNS

푸바오, 펀치, 늑구로 이어지는 셀럽 애니멀의 인기는 어느새 일상의 한 모습이 됐다. 대중이 동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높아진 동물권 인식과 SNS의 확장성이 만난 결과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들이 가진 ‘인간적 서사’에 있다. 사육사를 부모로 생각하는 푸바오, 어미한테 버림받고 인형에 의존하는 펀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떠난 늑구까지.

대중들은 흡사 인간과 다르지 않은 행동 양식을 보이는 이들을 향한 강한 정서적 공감과 연민을 발동시키기 마련이다. 이 감정들이 디지털 공간을 만나 ‘집단적인 유대감’으로 결속되고, 집단 단위의 영향력과 소속감을 지닌 ‘디지털 돌봄 문화’로 나타나게 된다. 보다 능동적으로는 실제 동물권 신장과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운동에 동참하는 등의 사회적 에너지로 번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 동물권 관계자는 “인간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은 배신하지 않는 동물의 무해한 서사에서 결핍된 정서적 위안을 찾는다”며 “디지털 돌봄 행위에는 각박한 현실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해소하고 사회적 효능감을 확인하려는 심리적 발현이 동반되기도 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SNS 중심으로 늑구의 근황이 연일 관심을 끄는 반면, 그 이면의 냉혹한 현실도 새삼 조명받는다. 늑구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론 역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늑구 탈주 사태 이후 행정적으로 대전 오월드는 ‘안전관리 의무 위반’ 대상으로 분류되어 정밀 점검과 처분 절차를 밟고 있으며, 재개장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는 방문객 수가 몇 배나 늘고 기부가 쇄도하는 등 경제적 효과 또한 끌어낸 앞선 푸바오와 펀치와는 대조적인 상황으로, 위기에 직면한 당사와 대전시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돌파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은지 기자 eun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