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욱이 꺾고 원톱 간다”…양동현, 서른에 부르는 부활의 노래

입력 2015-02-16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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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현. 스포츠동아DB

■ 부상 김신욱 공백 메울 양동현은 누구?

17세 프리메라리그 입단했던 축구 천재
어린나이 홀로 부상 견디다 울산행 귀국
베이징올림픽 앞두고 또 부상…방황…
지난해 울산 컴백 “이젠 팬들 위해 뛴다”

울산 현대는 리그 최고의 공격수 김신욱(27)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김신욱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오른쪽 종아리 비골 골절상을 당해 재활을 거쳤다. 현재로선 FC서울과의 시즌 개막전(3월 8일)까지 몸 상태를 완벽하게 맞출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초반엔 양동현(29·사진)에게 기회가 갈 것으로 보인다. 양동현은 태국 치앙마이(1월11일∼1월25일), 일본 미야자키(1월30일∼2월9일) 전지훈련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윤정환 감독을 미소 짓게 했다. 윤 감독은 “양동현을 지켜보라”며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 천재 스트라이커, 결정적 순간마다 3번의 부상과 시련기

양동현은 월드컵 4강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2002년 10월, 대한축구협회가 추진한 ‘유소년 프로젝트’ 대상자로 선발돼 프랑스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이어 만 17세이던 2003년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야돌리드에 입단하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치골 부위의 피로 골절 때문에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통역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부상과 재활의 시련을 홀로 감당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5년 울산 유니폼을 입으며 국내 무대로 돌아왔지만, 당시 울산엔 이천수(인천)와 마차도(브라질) 등 수준급 공격수들이 즐비했다. 주로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었다.

기회는 왔다. 2007년 소속팀에서 16경기 6골을 기록하며 서서히 입지를 다졌고, 2008베이징올림픽대표팀에 선발돼 지역 예선에도 출전했다. 하지만 2007년 7월 오른쪽 비골 골절로 시즌 아웃됐다. 지루한 재활을 견디며 2008년 그라운드로 돌아왔지만, 또 한번 불운이 엄습했다. 베이징올림픽 최종 엔트리 합류를 앞둔 2008년 7월 과테말라와의 평가전에서 왼쪽 발목 인대를 다쳤다. 결국 올림픽 출전도 무산됐다. 그는 “올림픽 이후 해외진출을 노리던 상황이었다.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여 방황도 했었다”고 토로했다.


● “김신욱과 선의의 경쟁 펼쳐, 팀에 긴장감과 활력 불어넣겠다!”

2009년 부산으로 이적한 양동현은 지난해 울산으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 나이로 서른. 어느덧 고참선수가 됐다. 5년 만에 복귀했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양동현은 “나를 응원해주는 팬들을 보며 뭉클함을 느낀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뛰고 싶다. 개인을 내세우기 보다는 선배로서 우승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187cm의 장신인 그는 이른바 타깃 형 스트라이커다. 돌파와 크로스가 좋은 김태환(26)의 영입으로 양동현의 활용도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윤정환 감독은 2일 미야자키에서 열린 후쿠오카대학과의 연습경기를 주목했다. 양동현은 무려 50∼60m를 돌진해 카사의 크로스를 헤딩 골로 연결했다. ‘크로스 사냥꾼’의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지속적으로 출전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선 김신욱이란 큰 산을 넘어야 한다. 그는 “(김)신욱이와 같은 포지션이라는 점은 솔직히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하지만 프로에겐 경쟁이 숙명과도 같다. 양동현은 “좁은 공간에서 원 터치 후 슈팅은 내게도 강점이 있다. 감독님께서 원 톱을 선호하신다면, 신욱이를 이기고 경기에 나가고 싶다. 그렇게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신욱이도 긴장감이 생기고, 팀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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