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윤덕여 감독 신화

입력 2015-06-19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윤덕여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남자축구 출신이라 시기·질투 받기도
믿음의 축구로 한국 여자축구 새 역사

“해봐야죠. 아니, 할 수 있어요. 잘 될 겁니다.”

2015캐나다여자월드컵 출전을 앞둔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54) 감독의 자신감 넘치는 한마디였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월드컵 사상 첫 승, 첫 16강의 위업을 동시에 달성했다.

2012년 말 여자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윤 감독의 행보는 8할이 시련이었다. 여자실업축구 WK리그 일부 감독들이 제기한 박은선(로시얀카)의 성별 논란을 겪으면서 한동안 100% 전력의 대표팀을 꾸릴 수 없었다. 또 터무니없이 부족한 A매치 기회조차 감지덕지 여겨야 했다. 심지어 일부에선 그가 ‘정통’ 여자축구 지도자가 아니란 이유로 시기와 질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남자축구 지도자가 왜 여자선수들을 이끄느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윤 감독은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휘봉을 잡은 2년 반의 시간 동안 온갖 시련 속에서도 “즐겁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동안 머문 경기도 파주 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도, 집에서도 관련 자료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상대국 영상을 돌려보느라 숱한 밤을 커피 한 잔과 뜬눈으로 지새웠다. “오늘 흘린 땀이 환한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뚜렷한 믿음이 있었다.

0-1로 뒤진 채 맞은 스페인전 하프타임에 윤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마디를 했다. 비겨도, 져도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이런저런 전술지시보다 따스한 다독임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우리가 준비하고 노력한 모든 것들을 후회 없이 풀어내보자. 최선을 다하자!”

종료 휘슬이 울리자 두 팔을 번쩍 치켜든 윤 감독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지도자는 선수에게 믿음을 줘야 하고, 선수는 지도자의 믿음을 알고 있을 때 열정과 헌신을 쏟아낼 수 있다. 이게 한국여자축구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여자축구계에서 ‘이방인’ 대접을 받던 윤 감독은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달성한 한국축구의 또 다른 영웅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