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의 거장이자 거목인 김응룡 전 감독이 경기도 용인에 마련한 밭에서 직접 심은 토마토를 따며 환하게 웃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후배 감독들 초청으로 18일 프로야구 올스타전 ‘화려한 외출’
요즘 토마토·참외 따먹고 이렇게 살고 있수다
옥수수·상추·양배추·고추…다 내가 심었어
욕심 버리니 세상이 아름답더군, 처음으로
야구? 잘 안봐…내가 현역 감독 같아지거든
후배 감독들이 주는 공로패…나야 감사하지
다신 감독 하지 말라고 못박으려고 그러나? 허허
“아니, 여기까지 뭐 하러 와. 그냥 조용히 살고 있는데.” 늘 그랬지만, 그의 첫 인사는 여전히 퉁명스럽다. 그러면서도 이내 “오랜만이요”라며 악수를 청한다. 그 내민 손이 따뜻한 걸 보니 그래도 모처럼 찾아준 기자가 반가운 모양이다.
김응룡(74).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국야구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거장이다. 그런 그가 이제 농사꾼으로 변신했다. 치열했던 승부사의 옷을 벗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야인 김응룡’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용인으로 차를 몰았다. 때마침 1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리는 ‘2015 타이어뱅크 KBO 올스타전’ 때 후배 감독들이 초대해 공로패까지 준다고 하니, 더더욱 그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한국시리즈에서 9차례 정상에 올랐던 해태 시절에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그라운드를 압도했다. 2002년에는 삼성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13~2014년 한화 유니폼을 끝으로 ‘야인 김응룡’으로 돌아갔다(위부터). 스포츠동아DB
● 승부를 떠나니 꽃이 보이더라!
“요즘 토마토하고 참외 따먹고, 이렇게 살고 있수다. 옥수수, 상추, 양배추, 고추, 오이, …. 이거 내가 다 심었어. 감자는 이미 다 캤고, 고구마는 가을에 캘 거야. 그런데 얼마 전에 노루가 나타나서 상추하고 고구마 순을 다 뜯어먹었지 뭐야. 약을 안 치고 유기농으로 키우는 걸 그놈들도 아는가봐. 허허.”
마치 오랫동안 전원생활을 해온 촌로(村老)처럼 텃밭을 돌보는 솜씨가 익숙하다. 묻지도 않았는데 “저 산 위에는 더덕하고 도라지도 심어놨다”고 친절하게 자랑한다. 그런 품새를 보니 그동안 얘기가 고팠던 모양이다.
-언제 이런 밭을 마련했습니까?
“해태 시절 사놨던 거야. 한 30년 됐지. 요즘 시간 날 때 여기 와서 하루 2시간씩 일하고 들어가. 그러면 그렇게 잠이 잘 와. 잡념도 없어지고 말이야.”
-농사를 지어보셨습니까?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내가 어릴 때 이북에서 피란을 왔잖아. 이북에서 살 때 어른들이 농사를 지었으니까.”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그렇지? 운동 많이 하니까. 산에도 다니고, 골프도 치고, 그렇게 살고 있어. 내가 심은 이 채소들로 식단조절도 하고…. 다들 그래. 얼굴 좋아졌다고.”
-매일 매일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살다가 쉬고 있으니 어떠세요?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새로 사는 기분이야. 그동안 난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 올 봄에 마성IC에서 차를 몰고 여기로 내려오는데 말이야. 개나리, 진달래, 벚꽃 세 종류의 꽃이 한꺼번에 피었더라고. 예전엔 3월, 4월에 야구하느라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그런 꽃이 내 눈에 안 들어왔어. 그런데 지금 보여. 욕심을 버리니까 세상이 아름답다는 게 보이더라고. 처음으로.”
김응룡 전 감독은 은퇴생활을 즐기며 정성을 다해 농작물을 가꾸고 있었다. 직접 심고 키운 커다란 수박에서 그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스포츠동아DB
● 야구 안 보려는데 꿈엔 왜 나타날까?
그와 인터뷰를 하려고 인근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솥뚜껑 같은 손으로 막걸리 잔을 잡듯 투박하게 커피잔을 쥐더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냉수처럼 들이켰다. 세련미는 없지만, 오히려 그런 게 그답다.
-여기 종종 오시나 봐요.
“지금처럼 더운 날, 사람들이 날 찾아오면 여기서 만나서 커피 한잔 하고 그래. 인생을 즐기고 있지. 요즘 선동열이 종종 날 불러내. 골프 약속 잡혔다고. 그래서 내가 살이 많이 빠졌어. 허허.”
-신발이 예쁘네요. 젊은 사람들 신는 구두인데요.
“올초에 (양)준혁이가 와서 선물이라고 주고 간 거야. 준혁이가 밭에서 농사도 도와주고 갔어. 경운기도 잘 몰더라고.”
-요즘 야구는 보세요?
“잘 안 봐. 1년 동안은 아예 안 보려고. 뉴스 끝나고 스포츠뉴스하면 TV 꺼버려. 야구 하이라이트 나오면 다른 채널로 틀어버리고. 야구를 보면 또 내가 현역 감독 같아지거든. 나도 모르게 승부 속으로 들어가게 되더라고. 긴장도 되고, 작전도 내고 싶고, ….”
-한 평생 야구만 하셨는데 야구가 그렇게 쉽게 잊혀지겠습니까?
“그렇지. 10대 때 야구를 시작해 70이 넘도록 야구만 하고 살았으니까. 묘한 게 말이야. 현실에선 야구 생각 안하고 야구를 안 보고 있는데, 꿈에 야구가 나타나더라고. 꿈속에서 경기를 해. 욕하고, 기자들하고 막 싸우고 그래. 혼자 잠꼬대하는 거지. 마누라는 밤에 내가 전화기로 누구하고 싸우는 줄 알고 잠을 깰 때가 많아. 허허허.”
● 다시 야구장으로! 거장의 화려한 외출!
그는 부산 개성중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뒤 선수로, 감독으로 늘 우승과 함께 했다. 국가대표 4번타자로 활약하며 1963년 아시아선수권대회때 결정적 홈런을 치면서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국가대표 감독을 처음 맡은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에선 사상 첫 국제대회 우승을 지휘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이끌었다. 1983년 해태 감독을 맡자마자 우승을 일구더니 총 10차례(해태 9회·삼성 1회) 우승신화를 만들었다. 프로 감독으로 3000경기 가까이(2935경기)를 싸우면서 1567승1300패68무(승률0.547)를 기록했다.
-야구가 힘드셨나요? 진 날보다는 이긴 날이 더 많았잖아요.
“이긴 건 생각 잘 안 나. 한화에서 2년간(2013∼2014년) 많이 져 가지고. 우승할 땐 진 사람들의 심정을 몰랐어. 한화 가서 많이 지다보니까 그걸 알았지. 쉽게 생각했지. 한화에서 야구가 어렵다는걸 새삼 깨달았어. 인생이란 게 만만찮다는 걸 나이 팔십 가까이 돼서야 알았어.”
-이번 올스타전에 후배 감독들이 선물을 해준다고 하네요.
“김성근(한화 감독)이 전화로 ‘운동장 한번 오겠냐’고 묻더라고. ‘뭔데?’ 그랬더니 공로패를 준다고 하더라고. 글쎄, 감독 은퇴식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다시 감독 자리 앉지 말라고 못 박으려고 그러나? 허허. 나야 고맙지 뭐.”
-NC 김경문 감독이 애리조나 전지훈련 때 거기 모인 다른 감독들에게 제의를 해서 의기투합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프로야구 역사상 감독 은퇴식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기분 좋고 감사하지. 후배들이 나이 먹어가지고 감독 욕심냈다고 내 욕이나 안 하는가 싶었는데. 삼성 사장하고 점잖게 그만둬야 하는데 말이야.”
-다시 다른 팀에서 감독 제의가 들어오면 어떡하겠습니까?
“당신 왜 그래? 허허. 이제 안 해.”
그는 한화 감독이던 지난해 10월 17일 광주 KIA전에서 4-5로 패했다. 그게 야구장에서의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많이 이기고, 누구보다 많이 우승한 거장이었지만, 패장의 모습으로 쓸쓸하게 이 무대를 떠났다. 그런데 이번에 후배 감독들이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며 그를 올스타전에 초대했다.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무대가 마련됐다. ‘설레십니까’라는 질문에 “나이 팔십 다 돼 가지고 그런 게 어디 있겠냐”며 겸연쩍게 웃었지만, 그의 마음은 ‘화려한 외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거 하나 가지고 가. 이거 이래봬도 유기농이야. 잘 익은 것 같아.” 코끼리 같은 손으로 수박을 ‘통통’ 두들겨보더니 “틀림없다”며 확신한다. 차를 타고 떠나는 기자 등 뒤로 “올스타전 때 보자”면서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이젠 승부사라기보다는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겉은 퉁명스럽지만 내면의 정이 깊은 시골 아버지 같은….
용인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