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DA:다] 사람, 사랑 그리고 ‘프라이드’

입력 2015-09-03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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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영국, 사회적 관습과 체면을 중시하는 필립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며 감정 표현에 솔직한 동화 작가 올리버가 서로에게 호감을 넘어간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억압적인 시대에 살던 필립은 올리버에게 “우리의 사랑에 관해 침묵해달라”고 말한다. 2015년 영국에서는 각자의 개성과 자유가 존중받는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필립과 올리버는 과거와는 다르게 당당한 사랑을 하는 동성 연인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길 바라는 올리버의 모습을 보며 연인 필립은 대립하며 결별을 선언한다.

2008년 영국 로열 코트 씨어터(Royal Court Theatre)에서의 초연 이후 현지에서 끊임없이 재 공연되며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연극 ‘프라이드’가 돌아왔다. 1958년과 2015년, 전혀 다른 두 시대가 한 무대에서 만나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라 변화되는 가치관을 보여주며 편견과 소통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세밀한 과정을 그려나간다.


● 사랑, 시대를 통한 자아 찾기

‘프라이드(Pride)’는 제목처럼 자존심 혹은 자긍심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일종의 ‘자아 찾기’를 전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간다. 그로 인해 성숙해지기도 한다. 성장하는 과정 속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프라이드’는 ‘사랑’이라는 요소에 집중했다.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프라이드’는 모순적이게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진 않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필립과 올리버 사이의 사랑의 감정 그리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시대의 편견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통한 ‘자아 찾기’와 ‘성숙’을 말하고 있다.

이 극에서 중요한 것은 ‘동성애’가 아니다. 과거든, 현재든 우리가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 편견 그리고 변화다. 극작가인 알렉시 캠벨은 “성소수자의 문제에 있어 이 상황이 적절하다고 여겨졌다”고 밝혔다. 무대에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었던 극의 장치가 ‘성소수자’였을 뿐, 우리 모두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른 시대, 다른 가치관으로 자아를 찾는 방식이 달라졌다. 그것이 소수자들을 향한 폭력적인 환경이든, 지극히 개인적인 연인과의 결별이든 각자 시대에 살아가며 부딪히는 수많은 현실의 벽과 편견에 마주쳐야 우리의 프라이드, 곧 정체성을 깨닫고 찾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사랑’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 사람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서로의 존재 혹은 부재로 느껴지는 나의 존재가 곧 내 정체성을 결정짓기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성소수자들을 통해 전해지지만 이 시대의 정체성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내 스스로를 찾기 바라는 작가의 희망이다.


● ‘연기’라 쓰고 ‘섬세함’이라 읽는다


1958년 사회적인 통념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 ‘필립’과 2015년 연인 올리버의 자유분방한 성 생활로 고민하는 ‘필립’을 연기하는 강필석은 캐릭터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한 땀, 한 땀 수라도 놓을 듯한 강필석은 상대배역인 올리버를 만나며 벌어지는 내면의 갈등을 누적시키며 감정을 극대화 시킨다. 촘촘히 쌓아두고 결국엔 폭발시켜버리는 필립의 감정으로 인해 극의 기승전결이 확실해진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을 지닌 과거의 ‘올리버’와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좋아하는 현대 ‘올리버’를 연기하는 박성훈은 시대별 ‘올리버’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두 시대의 ‘올리버’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캐릭터지만 박성훈은 캐릭터의 색을 다르게 두며 시대의 변화를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필립과 올리버 사이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실비아’ 역은 임강희가 맡았다. 과거에는 필립의 아내이자 현대에서는 필립의 절친 역인 임강희는 극의 섬세함을 극대화 시켜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특히 시대가 교차되는 시점에 그가 외치는 메시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소수자들을 향한 위로 그리고 양 시대의 필립과 올리버에게 주는 격려다. 양승리는 의사, 남자, 피터 역을 소화하며 관객들이 작품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각 인물들이 쏟아내는 아름다운 대사에 흠뻑 취해볼 것. 시 같기도 하고 세레나데와도 같은 대사가 한없는 매력에 늪으로 빠지게 해줄 테니. 11월 1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문의 02-766-6007.

총평. 묵직한 메시지, 매력적인 배우, 아름다운 대사의 부딪힘 ★★★☆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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