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영웅마 ‘레클리스’, 문화공연으로 재탄생

입력 2015-09-11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군마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전까지 신설동 경마장에서 활동한 경주마였으나 미국 해병대 에릭 페더슨 중위를 통해 군마로 변신한 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탄약을 수송한 명마로 이름을 날렸다. 레클리스는 미국 라이프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사진은 미국 해병대원들과 함께 한 레클리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 17·18일 과천서 ‘영웅 레클리스’ 공연

연천전투 적군 총탄 뚫으며 탄약 운반
첫 군마 부사관…세계 100대 영웅 선정
김재성 연출·나소옥 극본…무료 공연


한국전쟁의 영웅 ‘레클리스’를 아시나요?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3월 26일. 경기도 연천에선 미국 해병대 1사단과 중공군 120사단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일명 네바다전투로 알려진 연천전투였다. 휴전을 넉 달 앞두고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대회전이었다. 적탄이 1분에 500발 정도가 쏟아졌다고 전사는 전했다.

전투는 닷새간 계속됐다. 이 전장에서 총탄을 뚫고 탄약보급소와 최전선의 고지까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탄약을 나르는 한 병사가 있었다. 전투 첫날부터 50여 차례나 탄약을 날랐다. 닷새간 386회나 왕복했다. 포탄 무게만도 4000kg이 넘었다. 탄약뿐만이 아니었다. 75미리 무반동총 등 무거운 전투 장비를 옮기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탄약을 나르다 두 번이나 눈과 다리에 총상을 입었어도 다시 일어나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다.


● 경마장을 누비던 ‘아침해’, 군마 ‘레클리스’가 되다

그 병사의 이름은 ‘레클리스(Reckless)’였다. 인간이 아니라 말이었다. 군마(軍馬) 레클리스는 이름 그대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병사였다. 본래 이름은 ‘아침해(Flame of the morning)’.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트랙을 누비던 경주마였다.

레클리스가 군마가 된 것은 1952년 10월 26일이었다. 산악이 많은 한국지형에서 탄약 운반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 해병대 1사단 에릭 페터슨 중위가 탄약과 총포를 운반하기 위해 구입했다. 몸값은 250달러였다. 마주였던 김학문 씨는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누이의 의족을 사주기 위해 팔았다.

군마가 된 레클리스는 곧바로 전쟁터에 투입됐다. 수많은 전쟁터에서 각종 탄약과 포탄을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레클리스는 다른 군마와는 달랐다. 포탄을 한두 번 정도 옮기면 알아서 길을 찾아갔고 적의 사격이 시작되면 엎드려 사격을 피했다. 위험한 지역에선 마부 없이 혼자 최전선을 오르내리며 탄약과 장비를 날랐다. 겁 많은 동물로 알려진 말의 본성과는 완전히 달랐다. 레클리스라는 이름은 무모하게 용감하다는 의미로 미 해병대원들이 붙여줬다.


● 미군 사상 첫 군마 부사관…세계 100대 영웅

휴전이 되자 레클리스는 병장 계급을 부여받고 미 해병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목숨을 걸고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 그의 이야기는 랜돌프 해병 1사단장에게 전해졌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9년엔 미군 역사상 최초로 군마를 부사관(하사)으로 진급했고 선행장도 수여받았다. 이어 미국 상이용사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퍼프하트 훈장을 받았다. 이뿐 아니다. 미국대통령 표창과 미 국방부 종군기장, 유엔종군기장, 한국대통령 표창장을 받는 등 각종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

1960년 레클리스는 성대한 전역식을 치르며 ‘군복’을 벗었다. 1968년 레클리스가 죽자 미 해병대는 참전 군인 대하듯 엄숙하게 장례식을 거행했다. 1997년 미국 잡지 ‘라이프’ 매거진 특별호에서는 링컨 대통령, 테레사 수녀 등과 함께 레클리스를 세계 100대 영웅으로 선정했다. 레클리스의 추모 열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3년 7월 18일엔 미국 버지니아주 미 해병대 박물관 야외공원에 군마 레클리스의 동상이 세워졌다. 미 국방부가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레클리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도 설립했다.



● 문화공연으로 다시 태어난 ‘레클리스’ 이야기

레클리스의 이야기는 국내에서 동화 ‘달려라 아침해’로 알려졌다. 이번엔 전쟁 영웅 레클리스의 실화가 무대에 올려진다. 한국마사회가 오는 17일(목)과 18일(금) 경기도 과천시 과천시민회관역 7번출구 앞 누리馬 야외공연장에서 오후 7시 30분부터 90분 간 공연을 펼치는 ‘영웅 레클리스’가 그것이다. 이번 공연은 동화 ‘달려라 아침해’를 각색해 ‘아침해’와 주인 ‘영길’과의 우정과 참혹한 전쟁의 단상을 그리고 있다. ‘아침해’의 화려한 마술(馬術)을 중심으로 다양한 무대 연출을 시도해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말문화공연 ‘영웅 레클리스’는 키즈 승마단, 포니쇼, 주니어 승마단, 장애물 마술 등 50여명의 배우가 50마리의 말과 호흡을 맞춘다.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과 ‘궁’ 등을 제작한 김재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극작가 겸 영화감독 나소옥 감독이 극본을 썼다. 사전 예약(02-543-0917)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한국마사회 안계명 승마진흥원장은 “이번 말문화공연 ‘영웅 레클리스’를 통해 말과 새로운 형태의 교감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며 “단순한 마술이 아닌 예술로 승화된 퍼포먼스를 통해 보다 많은 관객들이 쉽게 말과의 교감을 체험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족 하나. 전쟁이 나면 지금도 경주마가 군마로 활동할 수 있을까. 전문가에 따르면 “아니오”다. 작전에 의해 한국마사회의 말이 전시에 차출되지만 경주마 특성상 길들이기 힘들어 레클리스같은 말은 나오기 힘들다. 전쟁 중 먹이나 운송 등 힘든 부분이 많아 안락사시키는 경우가 현실적이라고 한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