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현지 인터뷰] ‘엘리전스’ 마이클 리 “한국서 배운 열정과 情, 브로드웨이에 알려야죠”

입력 2015-10-06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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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acre Theater 220W. 48th St. New York, NY 10036 USA.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Michael K. Lee)가 공연하는 ‘엘리전스(Allegiance)’의 극장이다. 한국 활동을 잠시 접고 브로드웨이로 돌아간 그를 만나러 뉴욕으로 향했다. 브로드웨이에서 만난 그는 변함없는 미소로 맞이했다. 프리뷰 전주라 한참 막바지 연습을 하고 있던 마이클 리와 저녁 식사시간을 이용해 근처 음식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함께 팟타이를 먹으며 근황을 물었다. 미국에 온 지 약 한 달이 된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지친 기색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오늘은 자정까지 연습이다”라며 잠깐 한숨을 쉬다가도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그 다음날 바로 연습에 들어갔어요. 뭐라고 해야 하나?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피곤함마저 느낄 여력이 없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이제 한국에서 온 지 한 달쯤 됐는데 3주가 지나니 시차적응이 됐어요. 3주 동안 정말 힘들었어요.(웃음)”

그가 참여하는 뮤지컬 ‘엘리전스’는 조지 타케이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편견과 억압을 그려나간 작품이다. 일본계 미국인인 샘 키무라와 그의 여동생 케이가 그들의 인권과 권익을 위해 싸우는 내용과 깊은 가족애와 사랑, 인권을 다뤘다. 또한 그 사이에 일어난 ‘시민 혁명’ 속에서 일본계 미국인들의 세대 간의 갈등 역시 드러나는 작품이다. 3년 만에 미국 무대에 다시 서게 되는 마이클 리는 이 작품에서 뛰어난 머리와 리더십, 타고난 정의감으로 자유를 위한 반란을 이끄는 리더 프랭키 역을 연기한다. 프랭키는 케이의 남자친구이자 샘 키무라와 대립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2009년 LA에서 리딩 공연을 한 적이 있는 마이클 리는 레아 살롱가, 조지 타케이 등과 함께 ‘엘리전스’의 초연 멤버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에서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했기에 브로드웨이행을 망설였지만, 미국 프로덕션의 강력한 요청과 초연 멤버로서의 애정이 있었기에 미국 활동을 다시 결정하게 됐다. 그는 “한국에서 초연 작품을 한다는 것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처럼 미국 배우들도 초연 공연의 멤버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나 역시 ‘엘리전스’의 시작 멤버이기 때문에 애착이 있는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활동할 당시 “어린 시절 동양계 미국인으로 ‘미국인’이지만 그들과 함께 있을 땐 항상 ‘외국인’이라 느꼈다. 그래서 ‘엘리전스’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번에도 “작품도 작품이지만 인종과 세대 간의 갈등에 서 있는 ‘프랭키’ 캐릭터가 끌렸다”라고 말했다.

“대본도 많이 바뀌고 춤이랑 넘버도 많아요. 다른 공연을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연습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연기에 대한 정직함’이었어요. 극이 실화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연기가 더 중요했어요. 실제로 과거에 미국에서 핍박을 받았던 사람들 이야기예요. 미국인들이 들이대는 총구 앞에도 서 봤고 돈도 뺏기고 집도 빼앗기죠. 수용소와 같은 곳에 모여 살았어요.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그 사람들을 최대한 이해하고 연기해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선사하는 것이 관건이죠. 그래서 최대한 핍박 받은 사람들의 감정을 갖고 있으려 해요.”

이어 “연기를 하면서 관객과의 소통, 그러니까 감정전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단어가 여러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Really?(정말?)’이라는 것도 음의 높낮이, 강약 등에 따라 듣는 사람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감정 연기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배우는 데 평생이 걸릴 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역할을 위해 그 당시 있었던 일들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 혹은 책 등을 찾아봤지만 관련 기록은 많지 않았다. 그는 “이유를 알아보니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어려웠던 시절, 마음이 아픈 기억들은 잊어버리고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며 “하지만 3세대, 4세대 재미일본인들이 현재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미국계 일본인들도 그렇고 심지어 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잖아요. 작품을 통해서 이런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가 크고요. 여전히 미국에 남아있는 인종차별적인 모습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레아 살롱가, 조지 타케이 등 오랜 동료배우들과 함께 하게 돼서 좋다. 마이클 리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니까 연습 시간이 많이 필요 없다. 금세 호흡을 맞춘다. 게다가 금방 배우지 않으면 가차 없이 해고를 당한다. 나도 잘하지 못하면 잘릴 지도 모른다”며 농을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그가 가장 그리운 것은 ‘텐 투 텐(10am to 10pm,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습하는 기간)’이다.

“약간 뭐랄까. 이건 문화차이일 수 있는데 한국은 ‘같이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국은 ‘내가 잘 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노동시간이 엄격해서 자기 시간을 다 채우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요.(웃음)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텐 투 텐’이었어요. 배우들이랑 연습하다가 밥 먹고 또 연습하고…. 그러면서 같이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거든요. 그리고 한국만의 정(情) 문화가 있잖아요. ‘형, 수고했어요’라는 그 한 마디라도 하는 것. 그게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여기서도 가끔 제 연습이 끝나도 동료들이 하는 걸 지켜봐요. 끝나면 ‘수고했어’라고 하고요. 그런데 여기 배우들은 그런 제 모습에 갸우뚱해요. 그러고선 묻죠. ‘마이클, 네 연습 끝났는데 왜 아직 안 가고 있어?’라고요. 그런 차이점이 있어요.”


3년간 한국 활동을 되돌아보면 참 많은 작품들과 인연을 맺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부터 ‘벽을 뚫는 남자’, ‘서편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장르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연기해왔기에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어색한 한국 발음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의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는 관객들의 아쉬운 평도 많았다. 마이클 리 역시 “아쉽고 어려웠던 점은 ‘한국어 발음’이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연기를 완벽하게 할 때는 저절로 떠오르는 대사에 감정을 실어 집중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한국 공연은 ‘발음’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 ‘발음’을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아쉬운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3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 최고의 배우, 감독, 그리고 스태프들을 만났어요. 덕분에 3년 간 제 감정이 많이 변했죠. 처음에는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이 참 어색했어요. 미국은 원캐스팅이니까. 그런데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다 있더라고요. 원캐스팅은 혼자서 더 깊게 캐릭터를 만들 수 있지만 더블 캐스팅은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을 다른 배우들이 찾아낼 수 있으니 연기적인 면에서 더 발전할 수 있고요. 또 여기(미국)서는 캐릭터가 내 ‘자녀’와도 같아서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다 제가 될 수밖에 없어요.(웃음) 물론 한국 역시 한 배역에 여러 배우가 공연하니 나름 경쟁심도 갖게 되죠. 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한국 배우들은 정말 열심히 해요. 연습 시간이 끝나도 연습하고 그 열정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해요. 그 열정을 배운 저로선 이젠 한국 배우로 미국 무대에 서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3년 전 미국 배우로 한국에 왔지만 이젠 한국 배우로 미국 무대에 서는 만큼 한국에서 배운 좋은 점들을 브로드웨이에 알릴 생각이에요.”

이제 막 미국으로 컴백한 그에게 이른 질문일 수도 있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날은 언제가 될까. 마이클 리는 “‘엘리전스’가 망하면(?) 생각보다 빨리 돌아갈지도”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다가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10개 중 1개 정도만 잘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90%는 거의 잘 안 된다. 그래서 어느 곳보다 언론의 리뷰에 민감한 곳이고 배우들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라고 신랄한 현실을 말해주기도 했다.

일단, 그는 내년 7월까지는 미국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언젠간 연출이나 극작으로도 참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마이클 리는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배우로 20년 정도 활동했는데 이제는 내 캐릭터 말고도 작품 전체를 생각하고픈 마음이 있다”며 “무대, 동선 등도 생각하고 싶고 내가 직접 이야기를 쓰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엘리전스’ 프리뷰에 신경을 쓰고 싶어요. 한국과는 달리 프리뷰 기간에는 작품 수정이 가능해서 그 기간 동안 부족한 점이나 채워야 할 것들을 고치면서 완벽한 공연을 만들도록 노력해야죠. 각오라면 열심히 해야죠! 한국 팬들이 왔으면 좋겠냐고요? 오면 정말 반갑겠지만 무리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긴 너무 머니까. 곧 한국에서 만나요.”

뉴욕(미국)|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Gettyimages멀티비츠·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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