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층 규모에도 하나 뿐인 직통계단
세대 대피공간은 창고 형태로 방치
피난기구 의무 설치 전층 확대 필요
마천루(摩天樓). 하늘을 찌를 듯이 지은 고층건물을 말한다. 아파트에도 마천루 바람이 분 지 오래다. 2000년 이후 신규 건설된 아파트의 경우 높이는 프리미엄과 등식이었다. 효율성과 조망권을 앞세워 20∼30층으로 고층화, 대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 국민의 60%가 거주하고 있다는 아파트. 그러나 ‘마천루 아파트’의 안전도 마천루처럼 높을까.
먼저 안전의식을 보자. 최근 전미희 교수(원광대 소방행정과)가 대원리서치에 의뢰해 서울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절반(49.4%)이 ‘현재 아파트에서 불이 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 대피시설에 대해서는 32.4%가 ‘있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29.8%는 ‘대피시설이 아예 없다’고 답해 화재 불감증이 심각한 것으로 분석됐다.
● 고층아파트 화재 시 안전 사각지대
안전의식뿐만 아니라 법규에도 구멍이 뚫렸다.
아파트 안전을 관장하는 현행법은 크게 건축법과 소방법. 두 법에는 빌딩이나 아파트처럼 일정 규모, 일정 층수 이상의 모든 건축물은 방재 안전을 위하여 지상 층 또는 피난 층까지 통하는 2개소 이상의 직통 계단을 설치하도록 의무화 돼 있다.
하지만 아파트는 현행법상으로 이 ‘양방향 피난로’라는 필수 안전 기준에서 비껴나 있다. 현행 건축법은 아파트에 대하여 4층 이상인 층의 각 세대가 2개 이상의 직통 계단을 사용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발코니에 인접세대와 공동으로 또는 각 세대별로 대피 공간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즉 아파트는 아무리 크고 높게 지어지더라도 각 세대에서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 계단은 단 하나만 있으면 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의 아파트들이 대부분 20∼30층 이상으로 급속히 고층화, 대형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있다.
현행법상 양방향 피난 계단을 대신하는 이 ‘세대 별 대피 공간’ 방식은 1시간 이내의 구조 또는 진화를 전제로 하는 일종의 ‘임시 대피 설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소방고가사다리(43∼52m)는 15층 이상의 고층은 사실상 구조가 어려운 데다 아파트 대피 공간 대부분이 화재 발생 후 채 30분도 견디지 못하고 실내 온도가 100도 이상이 되거나 유독 가스로 가득 차 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대부분의 아파트 대피 공간이 시공 단계에서 창고나 다용도실처럼 꾸미다 보니 화재가 나도 대피 공간 역할에는 무용지물인 게 현실이다. 2013년 이후부터는 전체 아파트의 80% 이상, 30층 이상 고층 아파트 대부분이 방재 피난 설비로 이 ‘세대 별 (임시) 대피 공간’을 선택하고 있다.
● 피난기구 설치 의무, 전층으로 확대해야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당국과 건설업체 모두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아파트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국토교통부와 건설업체들이 눈앞의 경제적 이익과 효율성 앞에서,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안전의 가치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안전의 주무부서인 국민안전처는 건축법이 주도하고 있는 불완전한 ‘아파트 대피 공간’ 정책에 대하여 ‘피난기구(설비)는 특정소방대상물의 모든 층에 화재안전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설치하여야 한다’면서 ‘이의 (의무)설치를 10층 이하’로 한정해 놓음으로써 위험이 더 높은 고층일수록 피난 기구가 없어지는 형태로 방치하고 있다.
안전설비전문가 비투텍 이봉운 대표는 “고층아파트의 경우 유일한 피난 설비인 대피공간이 창고로 둔갑해 화재 시 비상계단이나 엘리베이터가 막히면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라며 “앞으로 신축하는 아파트엔 피난기구 설치를 의무화를 전층으로 확대해야한다”고 말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