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막장] 아이돌 사생팬보다 심각한 공연계의 비뚤어진 팬심

입력 2015-11-19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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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올해 초 개막한 뮤지컬 ‘아가사’ 연습 현장이 취재진에게 공개된 자리였다. 기자 명함을 내밀고 들어간 A기자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이미 해당 매체의 기자가 취재를 하기 위해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파악하니 기자를 사칭하고 들어간 배우의 팬이었던 것. Y배우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어디선가 발견한 기자 명함을 가지고 취재진들에게 허락된 현장에 들어갔다. 당시 제작사 측에서 유연하게 상황 정리를 했다.

사례 2. 19일(오늘) 서울 종로구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엘리펀트 송’ 프레스콜에 있었던 일이다. 취재기자 B가 극장에 있던 중에 자신의 매체 사진 기자를 호명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 여성이 극장으로 들어간 것을 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자신의 회사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기자는 없을뿐더러 이 일정에는 오지 않기로 돼 있었던 것이다. 이에 B 씨는 “우리 회사에 저런 사람은 없다”며 명함을 확인한 결과 자신의 회사 명함이 아니었다.

이런 사례는 공연 업계에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비뚤어진 팬문화는 아이돌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인들이 대부분인 공연계가 더 심각하다. 기자 사칭은 흔한 일이 돼버렸다. 이들의 정체는 극 소수의 뮤지컬 마니아들이다. 특히 이날 있었던 ‘엘리펀트 송’ 프레스콜은 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팬들을 공식적으로 프레스콜에 초대해 ‘기자’들의 보도 권한을 그들에게 넘기기도 했다. ‘프레스콜에 취재합니다’라는 초청장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기자를 사칭한 팬들과 이벤트에 초대된 팬들은 취재진의 자리를 점령했고 공연장은 배우들의 목소리 대신 셔터 소리만 연신 들렸을 뿐이다. 뒤늦게야 상황 파악을 한 홍보마케팅팀 관계자는 사과의 목소리를 냈다. 초대한 팬들에겐 10장 이상의 사진을 올리지 말아달라는 공지를 문자로 보내기도 했다.

많은 드라마 제작보고회, 영화 시사회 현장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팬들에게 벌벌 떠는 현장은 공연 업계밖에 없다. 취재 현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팬임을 알고도 눈을 감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모든 것들이 티켓 판매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와는 달리 공연은 관객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충성도가 강하다. 한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관객들이 많아 돌고 돌아온다는 의미에 ‘회전문 관객’이라는 용어도 있을 정도. 팬들의 관심이 티켓 판매로 이어지는 상황에 제작사나 홍보사 입장에서는 관객들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 역시 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매너는 지켜야 한다. 공연은 일부 열성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프레스콜’은 명백히 취재진들에게 공연을 공개하는 자리다. 취재진의 기사와 사진은 공연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길잡이가 된다. 또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멋진 공연은 제작진, 언론, 팬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에게도 미리 공연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있다. 요즘엔 ‘관객들과의 대화’나 ‘쇼케이스’가 있다.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이벤트들이다.

공연을 사랑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싶은 진짜 팬이라면 ‘관크’(온라인 커뮤니티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 다른 관객을 방해하는 방해요소가 되는 관객)가 되지는 말자.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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